처음 느껴본 실적 압박
"골라, 골라~ 골라, 골라~" 지난 6월 인기리에 종영한 tvN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이병헌의 찰진 박수 소리와 발 탬버린 장면은 나의 20대 초반 가장 짧고 힘들었던 아르바이트를 떠올리게 했다.
Queen Victoria Market(퀸 빅토리아 마켓)의 야외 매대에서 장난감을 판매하는 일이었다.
멜버른의 가장 큰 재래시장인 퀸 빅토리아 마켓은 1859년부터 현재까지 왕성하게 운영되고 있다. 식료품부터 의류, 기념품 등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고 있으며 건물 내외로 수십 개의 점포들이 늘어져있다. 건물 안의 가게들보다, 공장 창고처럼 철조물 뼈대와 철판 지붕 아래 간이 테이블을 설치해서 판매하는 공간이 훨씬 크다.
대학 입학 후, 카페에서 비교적 편하고 재밌게 일했었지만 카페 사정이 안 좋아지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고 급하게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했다. 한인 사이트 구인 구직란을 수시로 새로고침하며 학교 수업을 방해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 용돈벌이가 되는 일을 열심히 찾았다. 그리고 카페에서 벌레들과 사투를 벌였기에 되도록 음식과 상관이 없는 판매직을 원했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 번, 오전 시간에만 장난감을 판매할 직원을 구한다는 구인 글을 발견하고 바로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xx보고 연락드립니다.
현재 ㅇㅇ대학생으로 학생비자 소지 중입니다.
레스토랑 서빙, 카페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 서비스 정신을 기본적으로 갖췄으며,
외향적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세일즈에도 자신 있습니다.
주중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주말 모두 근무 가능합니다.
연락 주시면 이력서 들고 사장님 편한 시간에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옛날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충 이렇게 썼던 것 같다.
여담이지만 회사 생활할 때 대학생들의 문의 메일을 많이 받았었다. 공식적인 메일임에도 불구하고 인사말 하나 없거나, 그 유명한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가 생각보다 많아서 안타까웠다. 그래서 메일을 작성할 때 당연한 예의인 인사말과 깔끔한 줄 바꿈, 그리고 오타 없이 보내는 학생들이 더 돋보였고, 함께 일해보면 대체적으로 일도 인성도 더 낫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 때는 말이야 이렇게 잘 썼어~'를 주장하는 지금 내 모습이 영락없는 '젊꼰'으로 비친대도 반박할 생각은 없다.
아무튼, 아르바이트 문의 메일을 보내고 곧바로 답장을 받았고 바로 다음 날 낮에 면접을 보러 갔다.
문자로 알려준 장소에 도착하니 가판대에 장난감 박스들이 쌓여있었고 바닥에는 1.5평 남짓 주차공간처럼 흰색 선이 둘러져있었다. 굉장히 협소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시선을 끄는 롤러코스터, 바닥에 설치된 레일을 무한 주행하는 미니카, 두꺼운 카드보드로 만들어진 전 세계 랜드마크 모형, 공룡 피규어 등 어린이들이 신기해하고 좋아할 만한 장난감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한참을 구경하고 있는데 사장님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 다가왔다.
어디 따로 앉을자리도 없어서 시장 손님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을 살짝 피해서 면접이 시작되었고, 출력해 온 이력서를 건네드렸다. 이력서를 훑어보면서 내뱉은 사장님의 첫마디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솔직히 명문대생이면 더 잘 안 써요. 이런 일 잘할 수 있겠어요? 이게 공부머리랑 다른데"
기분 나빠야 할 만한 선입견이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학창 시절 내내 공부를 너무 잘했던 친오빠의 그림자에 가려져 학교 선생님들께 내 이름보다 'ㅇㅇ이 동생'으로 더 많이 불렸을 때를 떠올리며 '이런 일' 못할 거라는 편견보다 공부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거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영어 되고, 성격 좋고, 열정도 있는데 공부머리까지 있어서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당찬 모습을 좋게 봐주셨는지 바로 다음 주부터 함께 일하기로 했다. 물론 이외에도 더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지만 대부분 '지금까지 똑똑한 학생들 많이 써봤는데 다들 얼마 못 버티고 나가더라'라는 내용의 험담이었고 그냥 조용히 듣다가 인사드리고 헤어졌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도 한 달 정도만 짧게 일하고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첫 출근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세일즈 업무니까 깔끔한 용모를 갖춰야 한다 생각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풀메이크업을 하고 옷도 단정하게 차려입고 근무시간 30분 전에 도착했다. 사장님은 내게 장난감 가격들을 알려주셨고 잔돈 넣어둘 작은 가방을 바로 앞 가게에서 구매해서 건네주셨다. 현금결제로 유도할 것을 신신당부하셨고 자잘한 장난감보단 주력상품인 50불짜리 롤러코스터를 팔아야 이득임을 강조하셨다. 장소 특성상 저렴한, 10불 미만의 장난감들이 많았지만 모두 미끼 상품이었나 보다. 마침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던 이스터 홀리데이로 사장님은 엄청난 매출을 기대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반년도 넘게 남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사도록 잘 구슬려보라고 했다.
첫날은 사장님과 함께 장사를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유도하고, 구경하고 있는 손님들에게 다가가 장난감을 열심히 설명해주었지만 사장님의 기대에는 못 미쳤던 것 같다. 값싼 퍼즐과 작은 장난감들만 팔렸고 이스터 선물을 많이 구매할 줄 알았던 기대와 달리 부모님들은 이미 일찍이 선물을 사뒀기에 아이들은 아쉬운 눈빛으로 진열해둔 장난감들을 만지작거렸다. 장사하는 법을 잘 몰랐던 건지, 아니면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건지 아이들에게만 사용법을 열심히 알려주며 구매욕을 올렸지만 이미 앞서 걸어가고 있는 엄마의 단호한 부름에 아이들은 자석에 이끌리듯 곧바로 엄마 뒤를 쫓아갔다.
그렇게 첫 장사는 긴장감과 물건이 너무 안 팔려서 눈치만 보며 끝났다.
두 번째 출근날에는 첫날 입었던 옷과 180도 다른 느낌이었다. 첫날 장사하면서 너무 추웠던 것을 기억하며, 재킷 두 개 겹쳐 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크로스 미니백을 앞으로 맨, 완벽한 시장 상인 룩으로 소위 호객행위를 시작했다. 부끄럽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두 번째 하는 거라고 조금은 덜 어색했다. 사장님은 그렇게 장난감 세팅을 모두 끝내시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이른 아침 식재료 장 보러 온 손님들이 대부분이었기에 나는 투명인간 취급당했다. 그때 중년의 남성이 롤러코스터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길래 열심히 영업했다. 하지만 여느 어린이들이 엄마 손에 이끌려 잡혀가듯, 어디선가 나타난 아내가 무표정으로 본인 이름을 부르자 조금의 저항도 없이 아내에게로 갔다. 아내가 남편 장난감 구매 제어시키는 건 만국 공통인 것 같다.
다행히 점심시간이 지나고 사람들도 많아졌고 롤러코스터 장난감을 무려 3개나 팔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그렇게 팔리더라. 중간 정산하러 온 사장님은 굉장히 놀란 눈치였지만 딱히 내색하진 않으셨다. 그저 "다음 주에는 더 잘할 수 있겠네요"라는 애매한 칭찬 한마디만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롤러코스터 장난감을 하루에 3개 이상 팔았던 적이 없었다. 많아봐야 2개가 최대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장님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고 근무시간 내내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장사 매출이 좋지 않을 때마다 사장님은 내게 더 적극적으로 세일즈 할 것을 요구하셨다. 그때의 나는 소리치지만 않았을 뿐, 지나다니는 모든 손님들에게 말을 걸며 최대한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협소한 공간에서 딱히 차별점도 없는 무난한 장난감들을 팔려고 하니 안 팔리는 거라고 생각하며 점점 의지도 열정도 줄어들었다. 때마침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었고 그렇게 사장님께 말씀드리고 한 달여간의 퀸 빅토리아 마켓으로의 출근은 끝이 났다. 딱히 사장님도 미련 없없었는지, "그래요 그동안 고생했어요. 본인도 세일즈보다 더 잘 맞는 게 있을 거예요."라고 하셨다. 솔직히 억울한 마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이다. 추운 겨울 온몸을 꽁꽁 싸매고 빠르게 지나치는 손님들에게 얼은 손으로 장난감들을 시연하고 한 개라도 더 팔려고 했던 지난날들의 노력이 폄하되는 기분이었다. 분명 하루에 롤러코스터 1-2개만 팔아도 잘 판 거라고 하셨고, 난 분명 평균 이상은 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현재 8년 정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땠을까. 이왕 하게 된 업무라면 SNS 계정을 만들어서 홍보도 하고 장난감 종류들도 더 다양하게 들여오고, 가판대 전시도 요리조리 바꿔가며 상품을 더 많이 팔 수 있게 좀 더 주인의식을 갖고 임하지 않을까 싶다. 그때의 나는 요즘에서야 유행하는 시키는 일만 하고 그 이상의 열정은 갖지 않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을 이미 실행하고 있던 게 아닐까 한다.
그런데 이미 그렇게 일해봤던 입장으로서 '조용한 사직'이라는 건 사측이나 본인에게나 좋은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주변에서 직장에 의미를 두지 말고 그저 받는 월급으로 내 삶 자체를 풍족하게 하라고 하는 조언은 절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개인차겠지만 나는 내가 관심 있고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저 돈벌이로만 보는 것이 아닌, 업무 관련해서 늘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며 하나씩 성취해나가고 싶다. 그래서 계속해서 하고 싶은 업무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고 지인들의 답답함을 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나도 현실과 타협해야 할 순간이 정말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일단은 조금만 더 욕심 내보자.
아무튼 훗날 뮤직 페스티벌이라던가 야외행사 이벤트 부스에서 일할 때 술 취한 할아버지가 찾아와도 능숙하고 능글맞게 잘 방어했던 능력치를 키워준 나름 도움이 꽤 되었던 아르바이트다. 사회생활하는 나의 모습은 생각보다 뻔뻔하고 친화력 만랩에 색다른 자아가 나온다. 이런 제2의 자아실현이 대학생 때 빨리 실현되었다면 퀸 빅토리아 마켓의 판매왕이라는 타이틀 하나는 거머쥐었지 않았을까(아니라면 유감이다).
<Image Source>
퀸 빅토리아 마켓 내부 1: By User: Stefano at 위키여행 shared,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3061537
퀸 빅토리아 마켓 내부 2: By Wpcpey - 자작,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62318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