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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Nov 15. 2021

나도 별 수 없구나

좋은 아빠되기 정말 힘들다.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주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요리들을 만들어주는 다정한 아빠.  끊임없이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도 일일이 답변해주고 쉽게 이해하도록 적절한 예를 들어주며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배울 수 있는 아빠.  가끔은 엄마 몰래 비밀을 공유하기도 하고, 온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아이들과 함께 엄마의 잔소리를 듣는 친구 같은 아빠.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면서 모두의 편이 되어 힘이 되어주는 든든한 아빠.  최고가 되라는 말 대신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고 말하며 함께 찾아가는 동반자 아빠.  이런 모습들이 참 멋있는 아빠의 모습이라 여기며 그런 아빠가 되어 보려고 무척이나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런 내가 스스로도  꽤나 좋은 아빠라 믿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운동신경이 남다른 작은 녀석에게 테니스를 가르쳐준 게 10번 남짓이다.  큰 녀석은 한국 나이로 딱 중 2.  가까이 하기엔 너무나도 위험한 상태라 가정의 평화를 위해 잠시 거리를 두고 있다.  가자고 해도 안가고, 안 데리고 갔다고 혼지 삐져 씩씩대는 녀석을 내 어이할꼬.


  미술에 재능이 있고 무척이나 좋아해서 하루 종일 방에서 나오지 않고 –공룡이나 로봇 따위이긴 하지만– 그림을 그린다거나 클레이로 무언가를 만들면서 보내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활동적인 것이 필요하겠기에 함께 테니스라도 치려고 했는데 의외로 무척이나 재미있어 한다.  아직은 손에 힘이 부족한 탓에 라켓을 제대로 쥐기도 힘들고 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긴 하지만 분명 녀석의 운동신경은 남다르다.  물론 천재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투자한 만큼은 회수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  아무튼 테니스를 가르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도 녀석은 네트 너머로 공을 제법 넘겨준다.  어른들도 한동안은 라켓의 중심부에 공을 맞추기도 쉽지 않건 만은 녀석에게는 그게 그리 어렵지 않나보다.     


  그런데도 아빠란 사람은 손목 힘이 아직도 약한 12살짜리 아이를, 그나마도 이제 겨우 10번 남짓 쳐본 아이를 마치 선수라도 만들려는 듯 “자세를 똑바로 잡아라”, “팔꿈치 굽히지 마라”, “무릎을 굽혀라”, “밀어서 쳐라” 등등 수많은 잔소리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테니스라는 것을 가르쳐주려고 그랬다.  이건 정말이다.  그런데 녀석이 공을 한 번 칠 때마다 잔소리를 두어 가지씩 쏟아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문득 그 많은 잔소리를 듣고도 웃으면서 뻔뻔하게 여전히 그릇된 자세로 여전히 엉뚱한 방향으로 공을 보내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괜시리 미안한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길에 거금을 들여 햄버거를 사주며 테니스를 배우는 속도가 무척이나 빠르다고 칭찬을 해주었다.  칭찬을 들은 녀석은 더욱 뻔뻔해져서 햄버거를 하나 더 주문한다.  뭔가 실수한 것 같은 느낌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늦은 시간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이 되었을 때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혹여 잘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부담감만 안겨주었던 것은 아니었나, 압박감을 느끼게 했던 것은 아니었나 돌이켜보니 그런 기억이 쉬이 찾아지지 않았다.  아마도 내 잘못을 잘못으로 기록해 놓기 보다는 상대 탓으로 기록해 놓는 못된 기억 저장 방식이 작동해버렸나 보다.  그래도 몇 가지는 찾아내었다.  하지만 찾을수록 참담해졌다.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들이 밀었구나.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재미있게 하라고 말하면서도 잘하는 것을 원했구나.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준다고 하면서도 크고 힘센 아이가 되어 대장 노릇을 하고 있었구나.  나도 별 수 없는 꼰대 아빠였구나.  나는 다른 아빠들과는 다르다는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었구나.     


  미안하다, 아들아!  미안하기는 무척이나 미안하데 차마 입으로는 꺼내지 못하겠다.  힘 없는 니가 이해해라.  그래도 앞으로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음...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장담은 못하겠고 노력은 할게.  아빠 노릇이 이리 어려운 줄 나도 몰랐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잖니.  아빠만 잘 하겠다고 하자니 조금은 억울하니 같이 잘하자꾸나.  아자, 아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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