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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May 11. 2024

나에게는 거울이 하나 있다.

나두 초콜릿 복근 있어.

    나에게는 무척이나 평범하고 오래된 거울이 하나 있다. 화려하거나 멋진 장식도 없고, 보호해 주는 틀조차 없는 싸구려 거울이지만 나에게만큼은 너무나도 친숙하고 소중한 존재이다.

    어디에고 세울 수 있는 받침대도 없어 벽에 붙여둔 볼품없이 덩치만 커다란 전신 거울이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비추어 본다.  잠이 덜 깬 탓에 눈이 반쯤 감긴 상태로 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에 덕지덕지 붙은 눈곱들이 영 마음에 안 든다. 보기 싫은 눈곱들을 떼어내 익숙한 손가락 신공으로 날려버린다. 어디로 갔는지는 내 알바 아니지만 가끔은 알아야 할 때도 있다. 노트북 화면이나 검정 양복 상의 같은 곳에 달라붙을 때면 그렇다. 그럴 때면 방금 전까지 손으로 만지고 튕기기까지 했으면서도 굳이 휴지 한 칸을 떼어내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내가 보낸 눈곱들을 떼어내 휴지통에 넣는다.

    그런데 허리가 잘 숙여지지 않는 탓에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거울에 얼굴을 들이밀고는 세밀하게 관찰한다. 혹시라도 내 몸에 이상이 생겼나 하고 말이다. 다행히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 같다. 밤새 올라온 기름기가 얼굴을 반질반질하게 만든 덕분에 아주 건강해 보인다. 얼굴을 확인하고는 자연스레 내 시선은 허리 부근으로 향한다.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부분이라도 있나 살피려던 찰나 볼록 튀어나온 배가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내와 아이들이 더 사랑하고 예뻐하는 귀여운 똥배. 하루에도 몇 번이고 내 배를 만지려는 세 껌딱지들의 손길을 애써 거부하면서도 내 입가에 피는 흐뭇한 미소를 선물해 준 소중한 내 똥배. 두 손으로 정성스레 쓰다듬으면서 한 마디 건넨다.

    '거 참 귀엽게도 튀어나왔군.'


    오늘은 오랜만에 해묵은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다. 오래된 친구들과의 만남은 잘 익은 갓김치를 먹을 때처럼 깊은 맛과 입맛 도는 향기처럼 좋은 기분과 만족스러움을 안겨 준다.

근데 한 친구가 그간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떡 벌어진 어깨와 단단한 복근, 검게 그을린 건강한 구릿빛 피부를 자랑하는 것이 아닌가. 친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나이가 벌써 5 땡이니 근육이랑은 점점 사이가 소원해지는 시기가 아니던가. 그런데도 마치 20대처럼 근육질 몸매를 갖고 나타났으니 남자들은 부러움과 질투 가득한 눈빛으로, 여자들은 놀라움과 결코 언급할 수 없는 그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수영과 헬스를 통해 건강을 챙기다 보니 근육도 생겼다며 쑥스러워하는 그 친구의 모습이 왠지 얄밉다. 마치 자랑하는 것 같아 은근 샘이 났다.  그래서 나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한 마디 던졌다.

    "나두 초콜릿 복근 있어."

    그러자 옆에 있는 나를 남자가 아닌 여자로 인식하는 여자 사람 친구가 내 배를 쿡쿡 찌르며 말한다.

    "초콜릿은 무슨. 똥배구만."

    그 소리에 다들 빵 터져 난리가 났다. 빌어먹을 친구 같으니라구. 하지만 나도 지고 싶지 않아 배를 내밀었다. 마음 같아서야 웃통을 훌렁 까고 싶었지만 남자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장소가 카페인지라 다른 손님들도 있어 참아야만 했다. 그래도 나는 몸매가 최대한 잘 보이도록 옷을 뒤로 당기며 배를 내밀었다.

    "봐라. 내 초콜릿 복근. 안 보이나?"

    다들 이구동성으로 나를 공격한다.

    "야, 그게 무슨 초콜릿 복근이냐. 볼록 튀어나온 게 영락없는 똥배구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결코 지고 싶지 않아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킨더 초콜릿은 초콜릿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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