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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프맨작가 Aug 18. 2024

19세기 미국의 정신을 위한 시인, 월트 휘트먼

호프맨작가 창작시 <잔디> 

<죽은 시인의 사회> 로빈 윌리암스의 대사 중에서 

"자신을 캡틴이라고 불러도 좋다"라고 학생들에게 소개하면서

"시를 사랑하는 삶을"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때 나도 청년이었고 그때 만난 월트 휘트먼의  '오 나의 캡틴'을 잊지 못한다. 


그로부터 먹고살기에..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 이 사회의 존재로 가장으로 열심히 살았다.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가슴속에 파묻고 중년이 되어서야 월트 휘트먼을 다시 만났다. 

아니, 월트 휘트먼의 풀잎을 이해할 수 없었던 지난 30여 년의 세월이 이제는 공감할 수 있고 받아들이고 싶은 나이가 되었다. 풀잎의 의미를 몰랐을 때, 잔디밭에 엉덩이를 깔로 마음껏 밟고 걸었던 청년이 아니다. 월트 휘트먼의 <풀잎>을 이해하면 이 세상에 모든 평범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풀잎일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기에 지나는 길의 풀잎들을 허투루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월트 휘트먼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미국의 문학을 새로운 지평 위에 올려놓았다. 

첫 번째는 신중심의 문학에서 인류애 사람중심의 문학적 사유를 표현한 시를 통해서 19세기의 미국에 화두를 던지게 된다. 



물론 그는 기독교적인 신 –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었지만 그 모습이 초월적인 것으로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사람들과 접목하려는 문학적 표현을 쓴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시구들을 대담하다. 신을 노래하는 것처럼 화자가 되지만 그 모두는 인류애에 따른 것이다.  



두 번째, 만민이 평등하다는 미국적인 사상을 펼쳤다. 흑인 노예들의 참혹한 상황을 보고 그는 비평하는 글을 투고하였다. 심지어 그의 시에는 혼혈, 인디언, 매춘부까지 모두가 평등하다. 그가 40년의 심혈을 기울여서 수정 개정한 <풀잎>이 그런 보통 사람들이 모두 평등한 풀잎이라는 정의가 담겨 있다.  



세 번째, 그는 미국의 정신 중에서 링컨을 선장으로 하는 리더십을 찬양하였다. 미합중국은 건국 이래 100년 만에 남북으로 쪼개졌고, 흑인노예 제도에 의한 분열을 링컨이 통합시킨 것이고 미국의 정신을 확산시킨 것이다. 



그 밖에도 많은 혁신적인 문장들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시에 의해서 미국적인 시의 창시자가 되었다. 미국의 가장 큰 격동기와 발전기에서 미국적인 시와 글을 창작한 그는 미국의 대표적인 19세기 문학가이며 오늘날에도 존경받는 시인이다.   


가장 미국적인 개척정신과 가장 첨예한 노예착취를 역사에서 제거하게 된 남북전쟁의 시대, 링컨을 존경하던 시인, 월트 휘트먼의 시를 감상하면서 일요일 새벽을 맞이한다. 


"탄생은 우리에게 풍요로움과 다양함을 가져왔다.

그리고 다른 탄생들이 우리에게 풍요로움과 다양함을 

가져올 것이다. 


나는 어느 것이 더 크다고도 어느 것이 더 작다고도 하지 않는다.

그때와 장소를 채우는 것은 어느 것과도 동등하다. 

나의 형제, 나의 자매여, 

사람들이 당신에게 잔혹했나? 당신을 시기했나? 

나는 당신에게 미안하다.... 그들은 내게 잔혹하지도

나를 시기하지도 않는다. 


자전거가 내 요람을 실어 날랐다. 

마치 쾌활한 선원처럼 페달을 밟고 또 밟으며.

나에게 여유를 주기 위해

별들은 그들 각자의 원을 그리며 곁을 지켰고, 

나를 붙들고 있는 것을 보살피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성운이 그것을 위해 구체로 응집했고..

길고 느린 기층이 그 위에 쌓여 계속 지지했고...

거대한 식물들이 그것에 지속성을 부여했다. "

<월트 휘트먼의 '풀잎'중에서 >


월트 휘트먼의 파격적이고 인간적인 문장들 싯귀는 모든 사람들에게 시인의 마음을 일깨우게 된다. 


이전에 올린 나의 시를 함께 올려본다. 



잔디 위 앉으면 안 된다


잔디 위 걸으면 안 된다


뭐 그런 경고 마구 무시한 적 있지요


대신 잔디를 손으로 만져보세요


촉촉하게 젖은 잔디가 온몸으로


부르짖음을 만져보세요


이렇게 욕심 바람없이 살아요 이슬만 먹고 살아가요


밟아도 뭉개어도


무너지지 않아요


새벽까지 견뎌내고 물먹은 초록빛으로


다시 반짝이면 되지요


그거면 족해요


더 이상 바라는 것 없어요


모두에게 푹신하다는 것


빗질 안 해도 위로 뻗어있으려 한다는 것


새들도 곤충들도 반기는 잔디로 살아갈 수 있어서 행복한 것을


그런 잔디 만져주세요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셔요









잔디는 기울어질 뿐이지 절대 쓰러지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잔디는 밟아도 짓눌려도 다시 굳세게 살아냅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서있기 때문입니다.


잔디는 부르르 떨지라도 서로를 의지하고 있었기에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잔디를 손으로 매만져 주지 못한 것이 오만하였습니다. 




잔디는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메말러가도 견뎌냅니다. 


가장 낮은 식물이기에 속상해도 버텨냅니다. 


오로지 새벽이슬 먹고 자랍니다. 


어쩌다 오는 빗물에 감사할 줄 알기에 반짝이는 윤슬을 머금어 봅니다.




겨울에 잠시 노랗게 물들이지만, 봄을 준비하였던 겁니다.


봄부터 초록빛 머금어 이슬 한 모금이면 생명력을 뽐내어 봅니다. 


잔디는 그렇게 공원의 주인공 자리 사람들에게 내어주었어요. 


푸른 공원에 사람들에게 무대 내어주는 조연으로 만족합니다. 


잔디는 신발 발자국에 뜯겨나가도 움켜쥘 욕심이 없습니다.   








잔디에 앉아서 푸른 내음 맡고 명상 호흡 해봅니다


명상 속에 흘러들어 가는 잔디의 초록향기 


가슴을 물들입니다


들숨과 날숨에 잔디의 입김 묻어납니다


잔디의 인내심, 잔디의 너그러움 선잠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곳에 묻혀서 잔디의 꿈 꾸게 됩니다


그 꿈은 세상 모든 영양분 끌어안는 땅의 피부가 됩니다


지구촌 모두 잔디의 피부로 물광 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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