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프맨작가 Nov 24. 2024

시를 버린 불멸의 시인, 랭보와 에티오피아의 하라르

호프맨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에티오피아 무대 


나는 지독한 한 모금의 독을 꿀꺽 삼켰다.



나에게 다다른 충고여 세 번 축복받으라!



-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랭보》 중에서



 이 시를 쓴 주인공은 방랑벽을 온몸으로 달고 다니던 시인, ‘바람구두를 신은 사나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천재 시인 아르튀르 랭보이다. 기인 아르튀르 랭보는 스무 살에 시를 절필하고 평생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그가 가장 오래 머물렀던 도시는 어디였을까? 하라르와 랭보의 인연은 시어와 시인의 관계로 표현하고 싶다. 



  


    랭보는 왜 그렇게 젊디젊은 나이에 시를 버리고 문학을 저버리게 되었을까? 그는 왜 그토록 비판하던 부르주아의 길을 걸었을까? 


초현실주의자였던 정말 현실을 벗어나는 인생 중후반부에서 상인의 랭보가 되었다. 그런 그의 발길을 머물게 한 곳이 바로 에티오피아의 하라르이다. 아르튀르 랭보는 당시 유럽인으로는 드물게 에티오피아 현지 주민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하라르 커피를 유럽에 수출할 만큼 장사 수완이 좋았다고 한다. 늘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녔지만 하라르에서는 8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며 이 지역에 깊은 애정을 보였다. 아르튀르 랭보는 후에 무기 거래상으로도 일했는데 그가 판매한 소총과 무기가 1986년 에티오피아 아드와전투에서 요긴하게 쓰였다는 후문도 있다.







랭보가 11년간 머물렀던 하라르의 커피나무 앞에서 랭보






  랭보의 말년은 비극적 시의 엔딩 같다. 오른쪽 다리에 난 종양을 치료하기 위해 프랑스로 돌아왔지만 결국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서른일곱 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그는 하라르를 그리워했다. 하라르에 가면 그가 머물렀던 2층짜리 목조 주택인 랭보 하우스를 둘러볼 수 있다. 하라르의 전경이 펼쳐진 창가에서 아르튀르 랭보는 어떤 사유를 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말도 않고, 생각도 않으리.


그러나 한없는 사랑은 내 넋 속에 피어오르리니,


나는 가리라, 멀리, 저 멀리, 보헤미안처럼.


랭보의 시  <감각>중에서 






그토록 처절하게 시를 창작하였던 랭보는 절필하고 시와 문학과 결별하였다. 시인으로서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을 갖게 되고 그를 원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 랭보로서 그가 정착하였던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하라르의 랭보는 이해한다. 랭보는 하르르의 커피를 사랑하였고 커피 무역상으로 성공한다. 그의 삶은 보헤미안의 그것처럼 하라르에 머무르면서 절정의 한 인간의 삶을 꽃피우다가 사라진다. 시인의 삶에 어떠한 집착도 미련도 없이 커피의 향기처럼 사라지고 만 것이다.    




  스무 살의 나이에 불꽃같은 시를 이 세상에 남긴 것으로 불멸의 시인이 되었다. 랭보는 영원한 젊은 시인으로 시인의 삶은 그렇게 마감되었다. 하지만 인간 랭보의 삶은 겨우 37세까지 이어진다. 장편소설은커녕 단편 소설도 안되고 한 편의 시 같은 짧은 인생이었다. 그 삶에서 커피의 전문가가 되었고 커피를 산지에서 유럽으로 보내는 그의 삶에서 행복을 얻었다. 너무도 커피 냄새가 여운으로 남는 인간이었다. 그곳에 하라르가 있다. 랭보가 사랑하였던 하라르는 수많은 모스크가 있는 이슬람문화의 도시다. 에티오피아의 한 도시지만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분위기가 아닌 범세계적인 유럽 문화, 이슬람문화들이 혼재되어 있는 신비롭고 기인한 도시다. 그 도시에 남아있는 랭보의 흔적에서 이 도시는 한 위대한 불멸의 시인을 가진 것으로 시의 언어 같은 도시가 되었다. 랭보가 그의 시어로 썼던 '카라반'이 어울리는 하라르에 끌리는 것은 마땅하다. 







랭보의 집, 하라르의 그의 거주지는 그를 추억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커피와 동물 가죽 무역상으로 왔던 랭보는 무기 거래상으로 변모하며 11년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당시 메넬리크 2세 황제와 그의 사촌이자 하라르의 총독이며,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아버지인 라스 마콘넨과 두터운 친분을 가졌던 그는 유럽제 소총과 무기 등을 그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랭보가 판 무기는 1896년 에티오피아가 아드와 전투에서 이탈리아 침략군을 물리치는 데 기여하게 된다.



랭보가 다리를 절단하고 프랑스 마르세이유에서 죽음을 기다리며 요양하고 있을 때인 1891년 7월 12일 라스 마콘넨은 랭보에게 편지를 보내 "건강을 되찾아 다시 하라르로 돌아와 사업을 재개하기를 바란다"라고 각별한 우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열두 살 때 틀어박혀 있던 다락방에서 난 세상을 알았고, 


인간희극을 그림으로 그렸다. 


지하 저장실에서 난 역사를 배웠다. 


랭보의 <일뤼미나시옹,일루미네이션> 중에서






랭보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랭보는 그의 문학에서조차 19세기의 생각들을 뛰어넘었다. 그가 천재적인 광기의 시들로 혜성처럼 문학계에 등장한 것도 너무 어렸다. 모차르트 같은 천재는 어린 시절에 신동으로 이름을 얻어도 어른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지 못하였으니까, 랭보는 18세에 천재 시인으로 등극하고 20대 초반에 절필을 하였으니 너무 앞질렀다. 우리들 범부들은 천재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절대 없다는 반증이다. 




그의 삶 후반부에 방랑 끝 에티오피아의 하라르를 만나고 정착한 것은 카라반이 되고 싶었던 그의 시적인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국적이지만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휘어잡는 이 하라르에서 랭보는 클라이막스의 인생을 펼쳤다. 상인으로서 성공한 랭보는 에티오피아 제국의 황제에게도 신임을 받게 된 것이다.   


그는 시를 버렸을지 몰라도, 하라르는 절대 랭보를 버리지 않았다. 랭보는 죽는날까지 하라르를 그리워하였고 하라르는 랭보의 삶을 극적으로 마무리하였다. 


















에티오피아 하라르의 풍경들





2025년도 내년 출간 목표로 퇴고하고 있는 호프맨작가의 <에티오피아 배경의 소설>에 하라르 도시가 등장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