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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마이 Feb 08. 2022

몇 개의 행복

1.

얘는 브런치 브라더의 파우치인데 수개월 전부터 탐이 났었다. 이 귀엽고 쓸데없어 보이는 것에 돈을 쓸까 말까 고민하며 위시리스트에서 썩히던 중, 품절 사실을 알아버렸다. 언제든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할 땐 없었던 간절함이 생겼다. 문의글도 쓰고 오매불망 재입고를 기다려봤지만 무소용. 반포기 상태로 잊고 살다가 시간 때우러 들어간 홍대 1300k에서 운명처럼 만남. 말을 잇지 못하는 (...) 딱 2개 있길래 친구랑 하나씩 사고 엄청 행복했다. 얘는 먼지 파우치다. 먼지를 꼭 닮아서 주로 먼지라고 부른다. 먼지의 매력을 말하자면 정말 끝도 없지만, 제일 미치겠는 건 볼에 주근깨 6개.



2.

12  열흘이나 흘렀는데도 그리 춥지 않은 겨울 날씨였다. " 날씨 좋아라. 춥지도 않고. 그치?"정도의 대화를 주고받으며 엄마와 홍대 데이트, 작은 액세서리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엄마는 가판대에 있는 핀을 들어  머리에  꽂아보기도 하고 방울  개가 달린 머리끈을  묶은 머리에 덧대며 '예쁘네' 하며 웃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장면을 애인이 아닌 엄마와 흉내 내고 있다니 웃음이 나왔다. 엄마가 5 원을 지불한 끈을 머리에 달고,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잊지 않으려고   없이 떠들었다. "아니 드라마에선 그런 장면 진짜 이해  갔거든. 연인이 가판대에서 갑자기  사고 예쁘다 하고 저게 뭐가 좋나 싶었는데 좋네 엄마. 이거 좋다." 그날  엄마의 손을 타고 무심코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왔던 차가운 핀의 촉감을 나는 잊지 못할  같다.



3.

<라라랜드>의 ost. '나중엔 정말 좋은 오디오를 사서 내 cd들을 끝내주게 들을 거야' 싶다가도 이내 '꾸진 오디오라도 음악이 끝내주니 괜찮잖아. 그리고 조금 정들었잖아' 하며 웃어넘기는 일. 멋진 음악을 만나면 최소 몇 달 간은 행복하다.



4. 애정표현과는 거리가 먼 내가, 아빠에게 군것질 사다 달라고 말하기가 미안해서, 고작 그런 이유로 이것저것 주문하는 카톡과 함께 사랑한다는 말을 덧붙여 보냈다. 첫 번째로는 이렇게 쉬운 걸 난 왜 못하나 하는 생각. 오늘처럼 가볍게 툭 쉽잖아. 두 번째로는 아빠가 카톡을 받고 나서 지었을 표정에 대해서 생각했다. 입술 끝이 살짝 뾰족해지면서 어이없음+웃음+절제된 얼굴 근육이었으리라. 그리고 이토록 자세히 표정을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좋았다. 자연스레 얼굴 근육을 관찰할 수 있는 거리, 그 거리의 끝에 있는 사람이 아빠라는 사실이 날 행복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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