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장
대학교 신입생이 되던 해 처음으로 화장품을 구입했다. 푸른 아이섀도에 붉은 립스틱을 발라봤다. 어색했다. 마흔 일곱이 된 지금도 그때 화장술에서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메이크업에 관심을 가져보려 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나에게 화장은 사회생활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여전히 귀찮고 불편한 것이다. 외출을 위해 화장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0분도 되지 않는다.
#2. 세수
집에 있는 날엔 세수도 안 하고 지낼 때가 많다. 연휴가 지속되면 마지막 세수했던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다. 아침 세수는 안 해도 저녁 세안은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건너뛰는 날도 많다. 하루 종일 현관문을 나서는 일이 없는 요즘은 좀 더 심해진 듯하다. 그래도 양치는 수시로 한다. 전생에 고양이었나? 샤워는 해도 세수는 잘 하지 않는다. 세수를 하지 않으면 얼굴 피부도 당기지 않는다.
#3. 말버릇
“문 닫고 나가”
“소화 안 된다 천천히 먹어~, 빨리 먹고 나가자.”
“넌 왜 맨날 그래?”
“전부 다 그렇게 했네.”
일곱 살 막내딸이 엄마의 말을 듣고 정확히 지적한다. 사실에서 벗어났고 논리적으로도 앞뒤가 맞지 않다며 따진다.
‘네 말이 맞다’ 고 웃으며 수긍한다.
‘니도 어른 되면 알거야. 말과 생각이 따로 논다.’
#4, 장바구니
마트에 장보러 가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늘 먹던 식재료들을 담기에 고민이 필요 없다. 일상의 식재료로 만드는 음식도 비슷하다. 20년 가까이 차려온 밥상엔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올라오지 못한다. <수미네 반찬>을 봐도, 백종원 레시피를 찾아도 결국 내가 만들기 쉬운 음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내가 먹었던 음식, 할 수 있는 음식은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의 집밥과 크게 다르지 않다.
#5. 옷
봄이 오니 옷장 정리를 했다. 비슷비슷한 옷밖에 없다. 예쁜 옷보다 입어서 편한 옷이 나에겐 중요하다. 홈웨어와 요가복만 가득하다. 외출복은 10년도 더 된 것들밖에 없다. 막내 출산 후 사이즈가 맞지 않아 고생했는데 시간이 흐르니 살인지 근육인지 다시 빠져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옷장 정리 때마다 불편하거나 입지 않을 것 같은 옷을 버렸더니 면티셔츠와 고무줄 허리 바지만 남았다.
#6. 사람은?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아.’ 이런 말들에 현혹되지 않으려 한다. 난 사람은 변한다고, 생각도 바뀐다고 믿고 싶다. 남편과 내가 변했고 세 아이는 더 자주 변하는 것을 경험했다. 고유의 기질은 남아 있지만 사람의 생각은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생각의 변화는 행동의 변화를 갖고 오니까. 오랜 나의 습관들, 화장, 세수, 말, 장바구니, 옷들은 쉽게 변할 것 같은데 변하지 않았고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