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냥나 Jun 13. 2021

일탈보다는 무탈

 재밌는  없을까?”

사춘기 시절부터 20대까지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무료한 일상이 아닌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일탈이야말로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힘이라 여겼다. 대학가 뒷골목 소주방에 가보거나 19 비디오를 빌려보던 고등학생 시절, 눈치껏 대출(대리출석) 부탁하고 부산 바다로 가는 기차를 타거나 소개팅을 했던 대학 시절의 일탈은 분명 즐거웠고 추억이 되었다.


언제부턴가 일탈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 나를 발견했다. 나의 일탈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었을까? 응급실 간호사로서 8시간 동안 무탈하게 근무하고, 뱃속에 품은 아이가 세상 밖으로 무탈하게 나오는 것이 결코 쉽지 음을 알았다.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무탈을 원했다.  바람은 고등학생이   아들에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나의 십 대가 그랬듯 아이들은 반복되는 일상 대신 일탈을 꿈꾼다. 그저 하루하루 무탈하게 지나가기를 바라는 사람은 나이  부모님과 중년이  우리 부부다. 우린 일탈보다는 무탈을 꿈꾼다.


짜릿한 일탈보다는 당연하게 여겼던 무탈한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이전에 몰랐던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  행복감이  크다. 나뭇가지가 가장 앙상한 시기는 한겨울이 아니라 늦가을 우수수 떨어진 낙엽이  위에서 뒹굴 때였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며칠만 지나면 앙상했던 나뭇가지가 오동통 해지는 것이 보인다. 나무는 다음 봄을 위해 이미 겨울눈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사십  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인다. 무탈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악센트가 찍히는 순간이다.

작가의 이전글 마지막 수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