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완다 커피협동조합에서 기업가정신을 보다
커피의 가격위기가 어느 때보다 큰 요즘은 생산자인 커피 농부들에게도 기업가정신이 필요한 시대이다.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란 일반적으로 기업가 고유의 가치관 내지는 기업가적 태도를 의미하는데, 대표적인 학자인 미국의 경제학자 슘페터(Schumpeter, Joseph Alois)는 새로운 생산 방법과 새로운 상품 개발을 기술 혁신으로 규정하고 기술 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에 앞장서는 기업가를 혁신자로 보았다. 이에 더 나아가 전 세계 뛰어난 사회적기업가를 발굴하는 아쇼카재단의 창립자이자 CEO인 빌 드레이튼(Bill Drayton)은 1970년대 사회적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이라는 개념을 창안했다. 빌 드레이튼은 “사회적기업은 단순히 고기를 주거나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기잡이 산업(fish industry)을 혁명적으로 바꿀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는다”라며 기존 기업가정신에서 더 나아간 사회적 가치를 부여했다. 빌에 따르면 사회적기업가는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깊게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며,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기업가 능력을 가진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커피 농부의 빈곤 문제와 글로벌 커피시장에서 생산자의 어려움을 풀어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아름다운커피는 사회적기업으로 공정무역과 생산자들의 사회적기업가정신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르완다 서쪽 키부 호수((KIVU Lake)에 자리 잡고 있는 쿠카무(COOCAMU)협동조합은 아름다운커피가 2017년부터 거래하고 있는 386명의 작은 커피협동조합이다. 앞서 기시타(Gishyitha), 카로라(Karora) 커피협동조합에서 살펴본 대로 르완다 대부분의 소규모 커피협동조합들은 부족한 자금과 은행 대출의 어려움으로, 커피를 담보로 자금을 빌려주는 내수 도매업자들에게 약 25% 고리대의 불리한 조건에 커피를 전량 넘기곤 한다. 우호적인 거래처를 찾기 어려운 작은 협동조합들은 이들 도매업자에게서 벗어나기 어려워 계속해서 빚의 굴레를 지게 되고, 조합의 자산인 워싱스테이션을 빼앗기기도 했다.
쿠카무 협동조합의 초대 의장인 프랑소와(Francois)는 지역의 커피회사에서 일하던 커피 농부였는데, 이러한 불합리의 구조를 체감하고 그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스스로 커피협동조합을 설립했다. 마을에서 커피를 재배하여 판매하는 개개인의 농부들을 모아 2015년부터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은행 대출을 기대할 수 없어 핵심 멤버들이 우선 십시일반으로 자본을 출자하여 커피 워싱스테이션을 먼저 건축했다. 그래도 자금 부족으로 당장 커피수매와 가공 비즈니스를 할 수 없었던 쿠카무 협동조합은 결국 첫 해는 커피 가공시설인 워싱스테이션을 주변 지역의 다른 커피회사에 임대하여 자본 확보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때 쿠카무 협동조합 멤버들은 또 하나의 과감한 결정을 하게 되는데, 주변의 큰 커피협동조합들이 보유하고 있는 공정무역 인증(Fairtrade Certification)1)을 자체적으로 받아 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쿠카무 조합원들은 공정무역 인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NGO들을 스스로 찾아 나섰고, 르완다에서 활동하고 있던 영국의 공정무역 NGO인 TWIN과 네덜란드 NGO인 SNV로부터 자문을 받게 된다. 다음 해인 2016년 쿠카무는 본격적으로 협동조합으로 등록하고 공정무역 인증도 받게 되었고, 조합 스스로의 이름으로 커피를 수매하여 르완다 내수 기업인 RTC(Rwanda Trading Company)와 첫 거래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RTC와의 거래는 프랑소와가 이전 커피회사에서 목격한 기존의 불합리한 거래 그 자체였고, 이를 해결해보고자 설립한 쿠카무 협동조합에게는 무엇인가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아름다운커피가 쿠카무 협동조합을 만난 것은 그 시점이었다.
아름다운커피는 2016년부터 동아프리카 지역 새로운 생산지를 탐색하던 중 르완다를 방문하고 NGO인 SNV를 통해 쿠카무 협동조합을 처음 소개받고 방문했다. 처음 방문했던 쿠카무 협동조합은 워싱스테이션과 낡은 창고만을 갖추고 RTC와 첫 거래를 시작했지만, 커피 비즈니스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사무공간이나 좋은 품질의 커피를 가공할 수 있는 아프리칸 베드 등 여러가지 시설이 부족해 보였다. 그러나 첫 인터뷰에서 조합의장 프랑소와와 조합원들이 전한 협동조합 설립이야기와 커피에 대한 열정은 어느 생산자들보다 의욕에 불타 있었다. 프랑소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는 커피 생산과 판매에서의 빚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농부들과 힘을 모아 가공시설을 만들었고, 이제는 기존 거래가 아닌 공정무역으로 커피를 수출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공정무역을 통해 우리 커피를 수출할 수 있다면, 높은 이자 빚의 악순환을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르완다에서 생산자 협동조합을 지원하기 시작한 아름다운커피는 2017년 처음 프로젝트 기획을 위한 사전조사에서 뷔샤자 커피협동조합을 만났다. 2016년부터 아름다운커피와 첫 거래를 시작한 쿠카무 협동조합이나,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시타, 카로라 커피협동조합과 달리 뷔샤자 협동조합은 500여 명의 조합원을 두고 꾸준히 커피를 가공하고 있는 안정적인 협동조합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첫 방문에서 만난 조슈아(Josue) 조합의장과 사무엘(Samuel) 조합 매니저는 30대 초반의 젊은 청년들이었다. 커피 생산자 협동조합을 여러 곳 방문해 보았지만 30대 청년들이 의장과 매니저를 맡고 있는 곳은 사실 찾기 어려웠는데 놀라웠다. 세계적으로 이미 커피 생산자들은 노령화에 접어들어 대다수가 나이가 많은 생산자들이었고, 젊은 자녀들은 부모 세대를 통해 경험한 어려움으로 커피 밭을 떠나기 시작하는 시대에, 500여 명의 농부들의 커피협동조합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두 청년은 이미 그냥 청년이 아닌 기업가들이었다.
뷔샤자 커피협동조합은 2010년에 설립한 커피협동조합으로 역시 르완다 내수 커피기업인 도르만(Dorman)과 거래하고 있었는데, 같은 환경에서도 거래에서 수익을 내고 있는 협동조합이었다. 다른 작은 협동조합들이 거래처의 일방적인 거래 관행에 승복해 고생하는 반면, 뷔샤자 커피협동조합은 매번 거래처와의 똑똑한 협상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빚을 갚고 자본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빚을 지지 않기 위해서는 회계 관리와 수익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매니저 사무엘은 여러 곳을 수소문하여 수도인 키갈리까지 이동하며 비즈니스 경영수업을 스스로 받기도 했다. 이즈음 뷔샤자 커피협동조합은 총회를 열어 협동조합의 의장도 연배가 높은 어르신에서 새로운 청년으로 교체하는 과감한 선택을 이루었다. 지역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던 조슈아는 부모님과 함께 커피 농부로서 뷔샤자 협동조합의 조합원이기도 했다. 지역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지만 커피협동조합의 일에는 열성적이었다. 뷔샤자 협동조합은 서른 살이 되지 않은 조슈아를 의장으로 선출하고 비슷한 또래인 매니저 사무엘과 함께 협동조합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오랫동안 커피를 재배한 뷔샤자 커피협동조합의 나이 든 농부들은 치열해져 가는 경쟁과 어려움 속에서 다음 세대를 기르고 투자하는 과감한 결정을 한 것이었다.
아름다운커피가 뷔샤자 커피협동조합을 찾았을 때 두 젊은 리더는 끊임없이 아름다운커피에게 협동조합의 필요한 상황을 보여주고 설득했다. 아름다운커피의 프로젝트 지원 대상인 다른 협동조합과 동일하게 화장실과 사무실을 건축해주는 지원을 할 때에도 뷔샤자 커피협동조합의 리더들은 실질적으로 뷔샤자 조합에 필요한 내용을 더 많이 지원받고자 끊임없이 협상을 요구했다. 뷔샤자 협동조합은 공정무역 인증과 열대우림인증(Rainforest Alliance)2)을 지원받고 싶었지만, 산등성이 아래 개울과 가까이 위치한 워싱스테이션이 인증의 환경심사에서 문제가 되었다. 그러자 조합은 인증을 받기 위해 건축물인 워싱스테이션을 산 아래에서 개울과 멀리 있는 산 높은 곳까지 다시 옮기는 공사가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일반적으로 지원의 주체인 우리가 필요한 것과 가능한 것을 조사하고 내용을 결정해 왔지만, 이번에는 프로젝트의 지원 대상인 조합이 스스로 그들의 필요성을 파악하고 요청하고 나선 것이었다. 이를 위해 아름다운커피는 프로젝트 지원 스폰서인 우리나라 공공기관(KOICA)과 여러 번 번거로운 행정협의를 거쳐야 했지만, 덕분에 협동조합이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알차게 지원할 수 있었다. 협동조합이 과감하게 바꾼 젊은 청년리더들은 커피협동조합 농부들을 위해 영리하고 똑똑하게 협상하는 기업가들이 되어 있었다. 이것이 작은 협동조합이 스스로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는 비결이 되었다.
To be continued.....
*이 글은 월간 커피앤티(Coffee & Tea) 2020년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1) 공정무역 인증(Fairtrade Certification)
– FI(Fairtrade International, 전 Fairtrade Labelling Organizations)나 WFTO(World Fair Trade Organization)의 공정무역 기준(Fairtrade Standards)을 준수하는 생산자 및 마케팅 조직에 부여하는 인증으로, 지정심사기관의 감사를 통해 라이선스를 획득하여 공정무역 마크(Fairtrade Label)를 사용하거나, WFTO에 의해 공정무역 조직으로 보증받아 WFTO 마크를 사용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https://www.fairtrade.net 및 https://wfto.com 참고.
2) 열대우림동맹인증(Rainforest Alliance Certification)
– 생물의 다양성을 보존하고 지속가능성 표준의 구현을 촉진하는 친환경 인증으로 공정무역 인증과 구별된다. 야생동물 서식지 보호, 수원 오염 방지, 화학 비료 사용 감소 및 적적한 노동조건과 지역사회 혜택을 중점 기준으로 한다. https://www.rainforest-alliance.org/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