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안 가져다주는 엄마

나의 한남동#4

by 모나리자

예전엔 엄마가 우산을 안 가져다주는 일은 흔했다. 어릴 땐 우리 엄마만 그런 줄 알았다. 얼마 전 읽은 ‘혼자여서 괜찮은 하루, 곽정은’에서는 엄마가 우산을 가져다주지 않은 것에 대한 상처가 보였다. 어린 마음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유퀴즈에 나온 이적은 우산 안 가져다주는 엄마 덕분에 친구들과 놀 수 있어 좋았다고 회상한다. 이에 이적의 어머니 박혜란 여성학자님은 스스로 친구의 우산도 빌려 쓰고 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같은 상황에서도 받아들이는 사람과 또 그에 대해 행동한 이유가 다 다를 것이다.


우리 엄마도 우산을 안 가져다주는 엄마였다.

음악시간 리코더 준비물을 안 챙겨 갔다. 한 시간 내내 멀뚱하니 있으려니 안 되겠어서 용기를 내서 집에 전화를 했다.

“네가 준비물 안 챙겨 갔으니 혼나거나, 멀뚱하니 있더라도 네 몫이지!”

그래 우리 엄마가 가져 줄 엄마가 아니지!

항상 그랬듯이 별 서운함도 없다. 그때도 엄마는 아팠고 아프지 않았더라도 엄마는 안 가져다줬을 것이다. 학생은 아파도 학교에서 아파야 한다고 웬만한 잔병에는 결석이란 없었다.


내가 한남국민학교(난 국민학교출신)를 다닐 때였다. 4학년때인지 5학년때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여름 비가 정말 많이 왔다. 우산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학교에서는 아이들만 하교시키지 않고 보호자가 와야 아이들을 하교시켰다. 하나둘씩 아이들은 엄마나 아빠 또는 할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갔다. 비가 와서 날은 어둡고 교실의 아이들을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는다. 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조금씩 화가 난다. 이대 있다가 오늘 집에 못 가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된다. 사실 이때 내가 집에 연락을 했었는지, 학교에서 집으로 연락을 해줬는지 알 수가 없다.

교실에는 같은 반의 작은 여자 친구와 나만 남았다.

그 친구는 별 걱정 없이 빈교실을 즐기는 듯했다. 서로 말도 별로 해 본 적 없는 친구였다.

“넌 아무도 안 와?”

용기 내어 물어본다. 그 친구 아빠가 곧 차를 가지고 오신단다. 내겐 마지막 기회인 듯하다. 집이 어느 쪽인지 물어본다. 아 우리 집 가는 길목이다.

나 좀 데려가라고 한다. 내가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말을 어찌했는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잘 수는 없다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알겠다고 한다.

다행이다. 집에 갈 수 있다.

그 친구의 아빠가 봉고차를 타고 오셨다. 살짝 겁이 난다. 그때 인신매매가 뉴스에 많이 나오던 시기다. 인심매매범들은 봉고를 자주 이용했던 것 같다.

차 문고리 잘 잡고 있다가 내리면 된다. 내리면 된다. 주문을 외운다. 그 친구 집에서 우리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였다. 더 데려다주신다는 걸 아니라고 여기서 가면 된다고 감사하다고 휘리릭 말하고 차에서 내려 뒤도 보지 않고 달린다. 한 번 쉬지 않고 비사이를 달려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가 있다. 아까 서운하고 화났던 마음은 사라진다. 엄마가 집에 있어서 다행이다.

학교에서 집까지 온 이야기를 속사포로 한다.

잘했단다. 그렇게 집에 올 줄도 알고 다 컸단다.

역시 우리 엄마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아이들 학교 앞으로 우산을 들고 가며 생각한다. 너희들에게 나는 우산 가져다주는 엄마로 기억될까?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흔한 일상 하나가 흔하지 않은 추억이 된다.

우리 엄마는 우산 안 가져다주는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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