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엄마생각

by 모나리자

장마다.

이젠 장마가 아닌 우기로 이야기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지난밤 몹시 잠이 오지 않아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고 있는 가운데 비 오는 날에 대한 잔상들을 떠 올려 봤다.


엄마가 동생을 낳던 날 밤

그 여름밤에도 비가 왔다.

아빠는 해외에 나가 계셨고 보광동 우리 집에는 나와 엄마뿐이었다. 집이라고 해봤자 단칸방에 부엌 하나 딸려 있는 작은 집이었다.

내 나이 다섯 살, 무슨 기억이 얼마나 또렷이 남아 있겠나 싶지만 그날 밤의 비는 아직 기억난다.

늦은 밤, 엄마가 주인집 아주머니를 불러오라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집에서 자라고 했다.

그저 엄마가 시키는 대로 미닫이 방문을 열고 쪽 마루를 따라 안집으로 간다. 쪽마루와 주인집의 마루는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억자 모양의 집에 마당이 있는 구조였는데 골목 쪽으로 있는 문칸방이 우리 집이었던 것 같다.

방문을 여니 처마 끝으로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깜깜하고 어두운 마루를 따라 안집으로 간다.

안집에는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 성인이 된 두 딸과 아들이 있었던 것 같다. 아주머니는 마늘을 까서 파셨는지 항상 마늘을 큰 대야에 담아 까셨다. 아저씨는 가끔 일을 도우시다가 방에서 박카스를 가지고 나와서 내게도 조금씩 주시곤 했다.

그날밤의 기억은 거기서 끝이다.

<출처 :픽사베이>


다음날 아침 우리 방으로 가보니 아기와 엄마가 있었다. 동생이다. 네 살 터울의 내 동생.

작은 방에 기다란 면 기저귀를 길게 늘여 놓는다. 한쪽 끝을 잡고 반대방향까지 걸어가 포개어 놓는다. 다시 두 겹을 잡고 반대방향으로 몇 번의 왕래 끝에 기저귀 하나를 접어 낸다.

동생이 태어나고 나서 동생이 돌이 되기까지 기억은 그 기억뿐이다. 동생을 낳고도 누군가 우리 집에 왔던 기억은 없다. 나중에 엄마 말로는 그날밤 비는 이슬비처럼 조금 왔었다고 한다. 주인아주머니와 한남동에 살던 큰엄마가 오셔서 엄마의 출산을 도왔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도 엄마의 몸조리 생각을 못했다.

내가 둘째 아이를 출산할 때는 엄마가 곁에 없었다. 어리석게도 그제야 엄마가 동생을 낳았을 때 엄마의 몸조리를 누가 도왔을까를 생각했다.

나는 옆에 남편이 있었고 여동생이 있었다. 두 명의 친구 엄마들이 친정 엄마 없이 아이를 낳아 고생하는 것 아니냐며 반찬도 만들어 보내 주셨다. 그 감사한 음식을 먹으며 우리 엄마는 혼자 나와 동생을 돌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몸도 몸이지만 외로웠겠구나. 곁에 있을 때 고생했다고 고마웠다고 얘기해 줄걸 후회가 되었다. 좀 더 자세히 물어보고 잘 들어줄걸…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엄마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힘들지는 않았는지, 외롭지는 않았는지…..?

올해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0년이 되었다.

그렇게 예뻐하던 첫 손녀는 열세 살이 되었고 힘들어도 둘째는 꼭 낳으라고 했던 둘째는 아홉 살이 되었다.

엄마, 세월이 참 빠르다.

요즘 엄마 생각이 자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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