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남동 #5
나는 한남동에서 태어났지만 순천향병원에서 태어나지는 않았다. 내가 어릴 적부터 순천향병원은 항상 거기 그곳에 있었다. 자세하게 설명을 들은 적은 없지만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 친할머니가 한남동에 터를 잡으셨던 옛날 옛날에 순천향병원 자리는 넓은 공터였고 그 앞으로 개천이 흘렀다고 했다. 할머니가 멀리서 일을 하고 돌아오시는 늦은 밤 그 공터 앞을 지날 때마다 고양이 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로 오싹오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릴 적 그 이야기는 안 그래도 병원이라는 무서운 이미지의 병원에 더해 겁 많은 나를 더 겁에질리게 했다. 하지만 중학교를 다니기 시작한 시절부터 나는 아침저녁으로 순천향병원 앞을 지나다녔다. 아침밥을 먹고 열심히 골목으로 뛰어 내려가다 보면 꼭 순천향 근처에서 장운동이 극심해졌다. 다시 집으로 올라갈 수도 없고 학교까지 힘들게 갔던 이야기를 아빠에게 했더니 아빠는 순천향병원 화장실을 추천해 주었다. 그 뒤로 나는 순천향병원 화장실과 친해졌다.
그렇게 순천향병원은 그저 내게는 동네였다.
엄마는 류머티즘으로 한양대학병원으로 오랫동안 외래를 다녔다. 돌아가시기 전해부터 오랜 약 복용으로 신장에 단백뇨가 쌓여 신장 투석을 받기 시작하셨는데 워낙 팔에 혈관이 얇아서 매번 막히는 일이 비번해지자 순천향병원에서 혈관 이식 수술을 받게 되시면서 순천향병원으로 전원 하게 되었다. 집도 가깝고 새로 개설된 류머티즘과의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대응으로 잘 지내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마지막을 순천향병원에서 보내셨다.
마지막해 엄마는 순천향병원에 입원과 퇴원을 무수히 반복했었다. 마지막 그 반복 속에도 끝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다.
지난여름 친구 아버지의 장례를 순천향병원에서 치렀다. 엄마를 떠나보낸 곳에서 상복을 입은 친구 모습을 보니 마음이 더 아팠다.
신장 투석으로 마음대로 식사를 못했던 엄마와 병원 앞에서 가끔 짜장면을 사 먹으며 “가끔은 괜찮아~”했던 엄마의 모습이, 그 아팠던 중에도 입원실에서도 항상 밝았던 엄마의 얼굴이 지금도 순천향병원에 가면 생생하게 또 오른다.
요즘도 가끔 한남동에 간다.
어릴 적 무서웠던 순천향병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제는 순천향병원은 고향 같고 엄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