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요사
엄마 돌아가시고 일 년쯤 흘렀으려나…
한남역부근을 운전하며 지나가는데 엄마와 걸음걸이가 너무 비슷한 분의 뒷모습을 보았다. 엄마보다 한참 더 연세가 있어 보이긴 했지만 순간 “엄만가?”
할 정도로 비슷했다.
그것도 엄마와 함께 보낸 한남동에서 봤으니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한동안 연세 많으신 할머니들을 보며 이런 생각도 했다.
’ 할머니도 저렇게 잘 사는데 엄만 왜 그리 빨리 갔나?‘
나는 엄마의 장례식에서 많이 울지 않았다. 나를 찾아오는 조문객들이 더 많이 울어서 그때 같이 울었을 뿐이었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일주일 머무르다가 기도삽관을 포기하고 1인실로 옮기기 전 동생과 함께 엄마의 마지막이 울음으로 마무리되지 않게 하자고 했었다. 우리 엄마 너무 밝고 즐거운 사람인데 그렇게 보내 드리자고 했다. 엄마를 울지 않고 보내드리는 일을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었나 보다. 어른들은 엄마의 투병생활이 길어서 딸들이 시원섭섭한가 보다는 말씀도 들렸다. 남들이 어찌 생각하든 우리는 그렇게 엄마를 가슴에 묻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 나는 여전히 주말부부로, 아이를 돌보며 회사를 다니는 워킹맘으로 지냈다. 생각처럼 엄마의 부재가 계속 슬픔이 되지는 않았다. 그저 문득문득… 일하다가도 엄마 밥 먹었나 전화해 봐야지 할 때, 회사에서 짜증이 나서 엄마에게 이르고 싶을 때, 아이가 예쁜 짓을 하면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을 때 그렇게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엄마와 비슷한 분을 지나쳐서 보광동 길을 올라서는데 엄마가 자주 가던 마트가 보인다. 때마침 라디오에서 성시경의 희재가 나온다. 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내는 노랫말이 엄마로 오버랩되며 꺼이꺼이 눈물이 나온다. 엄마를 보내고 이렇게 힘들게 눈물을 흘려보지 못했다. 당장 세 살짜리 아이를 등원시키고 일을 하고 돌아와 아이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그 일상에서 엄마를 잃은 슬픔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정말 엄마가 곁에 없구나 나는 엄마가 없구나… 그렇게 깨닫게 되었다.
지금도 엄마는 내 엄마다.
우리가 언젠가 만나는 날 엄마에게 마지막 못했던 이야기들 모두 해주고 싶다.
엄마는 정말 부드럽고 강한 사람이었고, 내게는 더없이 지혜롭고 현명한 가장 닮고 싶은 나의 롤모델이었다고. 정말 사랑한다고…
<희재>
햇살은 우릴 위해 내리고
바람도 서롤 감싸게 했죠
우리 웃음 속에 계절은 오고 또 갔죠
바람에 흔들리는 머릿결
내게 불어오는 그대 향기
예쁜 두 눈도 웃음소리도
모두가 내 것이었죠
이런 사랑 이런 행복 쉽다 했었죠
이런 웃음 이런 축복 내게 쉽게 올리 없죠
눈물조차 울음조차 닦지 못한 나
정말로 울면 내가 그댈 보내준 것 같아서
그대 떠나가는 그 순간도
나를 걱정했었나요
무엇도 해줄 수 없는 내 맘 앞에서
그대 나를 떠나간다 해도
난 그댈 보낸 적 없죠
여전히 그댄 나를 살게 하는 이율 테니
이런 사랑 이런 행복 쉽다 했었죠
이런 웃음 이런 축복 내게 쉽게 올리 없죠
눈물조차 울음조차 닦지 못한 나
정말로 울면 내가 그댈 보내준 것 같아서
그대 떠나가는 그 순간도
나를 걱정했었나요
무엇도 해줄 수 없는 내 맘 앞에서
그대 나를 떠나간다 해도
난 그댈 보낸 적 없죠
기다림으로 다시 시작일 테니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더욱 사랑했는지
그대여 한순간조차 잊지 말아요
거기 떠나간 그곳에서 날
기억하며 기다려요
한없이 그대에게 다가가는 나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