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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바다

-삶의 무더움

by Sapiens


여름 바다는 유난히 빛나고 아름답다. 뜨거운 햇살을 받아내느라 온몸의 비늘 조각들을 드러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아픔 한 조각, 누군가의 그리움 한 조각, 누군가의 추억 한 조각의 파편들이 물결 위에 드리우고 있다.


시간이 지나고 새로운 계절이 찾아오는 것은 옷이 물에 스며들듯 부지불식간에 성큼 다가온다. 파도가 사라졌다 몰려오듯 여름 속을 항해하고 있다.


우리 삶의 여름은 태양으로 눈이 부시다. 그래서 아픔도 외로움도 그리움도 희미하게 보이는 것인지 모른다. 가을이 찾아왔을 때 지나온 시절이 더욱 그립고 분명해지는 건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삶의 무더움을 조금은 내려놓고 그 시절을 만끽하길 바라본다. 그 시절의 마디를 지나오며 천천히 주변과 속삭이고 소중한 인연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시절의 고독을 무심히 마주하길, 찾아오는 고통을 외면하지 말기를, 소망한다.


불현듯 파도가 밀려와 흐트러진 정신을 흔들어 깨운다. 여름 바다에 서 있는 또 다른 나는 포말들의 속삭임과 마주하고 서 있다.


며칠 전에도 여름 바다의 백사장 위를 걸었다.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듯 밤의 온기는 시원했다. 많은 사람의 발걸음으로 모래사장은 다양한 무늬를 그려내고 있었다. 고요한 밤의 정적은 사라지고 요란한 불꽃놀이와 청춘들의 버스킹, 그리고 모래사장을 걷는 관광객들의 인기척들로 북적이며 이글거리고 있었다.


해변의 소리는 또 다른 소음으로 색이 입혀지고 있었다. 지나가는 마디마디마다 이야기가 피어나고 삶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여름밤 해변에는 각양각색의 여름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나도 선을 그리며 무늬를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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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수,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