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풍기
매일 아침이면 그녀는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는 동안 그녀의 앞에서 나는 춤을 춘다. 그녀를 바라보다 보면 더욱 간절해진다. 쉼 없이 마음을 불태워 속삭인다. 돌아가는 날갯짓은 몇 시간이고 그녀의 심장을 향해 계속된다. 같은 속도와 세기로 그녀의 육체 속 온기를 덜어낸다.
그녀와의 만남의 시간은 짧으면서도 긴 여정이다. 종일 몸을 혹사하며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이 나에게 숙명이 된 지도 오래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었기에 오늘도 난 돌고 돌며 세상을 향해 돌진한다. 너와의 인연의 시간 동안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다하겠다고.
사실 나는 혼자 숨을 쉴 수는 없다. 누군가가 나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몸집이 작은 나는 매일 아침 나를 찾아주는 그녀가 있어 몸은 고달프기도 하지만 감사함을 느낀다. 이제는 얼굴에 남긴 삶의 흔적이 녹슨 채 남아있다. 지난해 여름, 열심히 일한 덕에 이번 여름에도 난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다.
그녀는 나를 씻겨주진 않는다. 그래서 온몸에 먼지를 뒤집고 있지만, 매번 나를 바라보며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일을 게을리하지는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비록 녹이 슨 몸에서 악취가 나고 먼지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녀와의 동침이 싫지 않다. 그녀의 책상 위 존재하는 책들도 항상 어지럽게 뒹굴고 있어서 그녀의 차별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매일 무언가를 써 내려간다. 그녀의 침묵 속에서 내 침묵의 소리와 함께한다. 고요한 그녀의 방에는 나의 날갯짓하는 소리만 새어 나올 뿐이다. 그렇게 나는 나를 듣는다. 유일하게 나를 만나는 시간을 선사해 주는 그녀가 좋다. 그녀를 바라보며 나를 볼 수 있어 난 참 행복하다. 오늘도 난 돌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