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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삭 Aug 25. 2024

엄마, 우리 유럽 여행 갈래?

2024년 6월 말, 엄마와 함께 8박 9일간 동유럽 여행을 떠났다.

생각지도 않았던, 순전히 나의 충동적인 결정으로 시작된 여행에서

우리는 조금은 가까워져 돌아왔다. 이 글은 그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엄마와의 여행은 순전히 나의 즉흥적인 결정으로부터 시작됐다.


 "나는 너랑 언제 여행을 가볼까?" 이건 또 무슨 소리람. 엄마가 거실 바닥에 누워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여행?" "저기 좀 봐. 이효리도 엄마랑 둘이 여행 갔잖아." 엄마의 손가락이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이효리가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떠나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여정을 그린다는 요즘 꽤 핫하다는 프로그램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내 딸들이랑 언제 여행가지. 너 주말에 시간 언제 돼? 지금처럼 일 쉴 때 가면 좋겠는데.." "아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는 말을 뚝 끊었다. 엄마는 얼굴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아주 잠깐만 붙어 있어도 아니, 1분 1초만 붙어있어도 투닥거리며 싸우는데 여행을 같이 가자니. 30분 전까지만 해도 언성을 높이고 싸웠는데, 아직 그 감정이 진정되지 않았는데 이런 말을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엄마와 여행을 간다면 펼쳐질 일들이 눈앞에 훤히 그려졌다. 얼마나 투닥거리고 싸울까. '굳이 여행까지 가서 싸울 필요가 있나. 돈은 돈대로 날리고 속은 속대로 썩을 것이 뻔했다. ‘어휴.’ 방으로 돌아가는 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끔 내 노트북은 귀가 달려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엄마가 여행 이야기를 꺼낸 이후부터 모든 포털 사이트에서 유럽 여행 패키지 광고가 떴다. 나는 이미 연 초에 큰맘 먹고 파리 여행을 다녀왔고, 지금은 번아웃이 와서 일도 그만둔 상태였기에 여행을 가고 싶다, 어딜 가고 싶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다.


 '뭐, 그냥 가격 구경이나 해볼까?' 별생각 없이 광고를 클릭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미국. 아직 가보지 않은 나라들의 패키지 가격은 뜨악하게 만들었다. '요즘 동유럽은 얼마나 하나.' 200만 원 후반 대였다. 이 정도면 비싼 건가 싼 건가. 지금 가면 딱 예쁠 때이긴 하겠네. 인터넷 창을 끄고 노트북을 덮었다.


 침대에 누워 한참 멍을 때렸다. 한 시간이 훨씬 지났을 때였다. 엄마가 집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벌떡 일어나 엄마에게 갔다. "나랑 유럽 여행 갈래?" 놀란 엄마의 눈이 커졌다.


 엄마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식탁 위에 손을 올려놓고 혼잣말을 하며 중얼거렸다. "지금 아니면 못 갈 것 같은데. 아니 아니, 이걸 어떻게 해야 해, 가면 언제 갈려고?" "음.. 다다음주? 더 늦게 가면 가격이 더 비싸지네." "뭐? 그렇게 빨리? 그럼 난 일을 어떻게 하고? 너는 참 애가 그렇게 갑자기 말을 해. 잠깐만 기다려봐. 생각해 볼게."


 방으로 돌아가 다시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거실에서 엄마가 친구와 통화하는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아니, 갑자기 유럽 여행을 가자는데. 내가 몸이 이런 상태인데 갈 수 있겠냐는 거야. 일은 어떻게 하고.."


 나도 내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며칠 사이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는지. 그저 ‘지금 아니면 안 된다, 지금 당장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런 결정을 내린 마음의 답을 알아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으니까.


 10분가량 지났을까. 방문이 휙 하고 열렸다. "아니야, 난 안 갈래." 엄마는 확신의 찬 말과 다르게 시무룩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몸도 안 좋은데, 비행기를 열 시간 이렇게 오래 탈 자신이 없어. 몇 년 전에 동창회서 일본 갈 때도 비행기 잠깐 타는데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아휴, 못 가. 안 갈래." 단숨에 오케이 할 줄 알았는데 안 간단다.


 엄마 말도 이해는 됐다. 지난해 여름 협심증으로 쓰러져 병원에 다녀오고, 그 이후엔 갑상선 항진증으로 건강이 나빠진 엄마는 최근까지 많이 힘들어했다. 폐경이 찾아온 이후로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친구들과 지방 여행은 여기저기 다녀오곤 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유럽이라는 곳은 여기서 얼마나 먼 곳일지 도저히 갈 엄두가 안 났나 보다.


 "너 혼자라도 쉴 때 다녀와. 우리나라도 여기저기 숨겨진 예쁜 곳 얼마나 많은데. 나는 굳이 유럽 이런데 안 가도 돼. 여기 대한민국에 예쁜데 얼마나 많은데. 그런데 열심히 찾아다니면 돼."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5분 뒤쯤 방문이 또 열렸다. "그런데, 가면 어디로 가려고 했던 거야?" "동유럽." "으응.. 거기는 지금 날씨가 좋나? 안 덥나?" "어떻게 가는데?" "얼마나 걸리는데?" "패키지 돈은 얼마나 하나." 그 뒤로도 엄마는 2,3분 간격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와 물었다. 어휴. 그냥 가고 싶으면 가면 되지.


 엄마가 다시 문을 열자 이번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그만 물어봐. 가고 싶으면 그냥 가면 되는 거야. 더 늦으면 가기 더 힘들잖아. 한 살이라도 어리고 조금이라도 더 건강할 때 가서 다른 세상은 어떻게 생겼나 이렇게 한 번 보고. 티브이에서만 보던 데는 이렇구나 한 번 보고 하면 되지. 장거리 비행도 아직 안 해봤는데 걱정부터 하고 그러면 평생 못 가. 무리 없이 잘할 수 있게 미리 준비하면 되는 거지."라고 말했다. 엄마는 "아니야"라며 거절했다. 그리고선 그 뒤로 몇 번이고 또 방문을 열었다.


 안 되겠다 싶어서 노트북을 켜고 여행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2주 뒤 떠나는 동유럽 패키지여행 프로그램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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