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말, 엄마와 함께 8박 9일간 동유럽 여행을 떠났다.
생각지도 않았던, 순전히 나의 충동적인 결정으로만 시작된 여행에서
우리는 조금은 가까워져 돌아왔다. 이 글은 그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나는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미 예약했고. 지금 취소하면 무조건 돈 물어줘야 해. 이제 그만. 그냥 가는 걸로 하자.” 엄마는 너는 대체 어쩜 그렇게 너의 마음대로 결정을 하냐 화를 내면서도 들뜬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근무 일을 어떻게 조정해야 하냐 면서도 그곳에 날씨는 어떤지 어떤 옷을 준비하면 좋을지 물었으니까.
우리가 갈 곳은 동유럽 3개국이었다. 체코, 오스트리아 그리고 헝가리. 여행지 선정 이유는 이거였다. 나도 아직 가본 적 없는 국가라는 점. 지금 날씨가 가장 여행하기 좋다는 점. 엄마는 꽃과 나무, 자연을 보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여행을 가는 때가 가장 꽃이 예쁘게 피고 아름답다하길래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통보받은 이후로 엄마의 모든 신경은 오로지 여행에만 꽂혀있었다.
유럽 음식은 버터, 치즈 때문에 느끼하고 기름도 줄 줄이라는데 입에 안 맞을 거 같아, 난 그런 거 소화도 안 돼. 컵라면과 햇반을 좀 사가야겠지. 고추장과 김도 좀 챙겨야겠다. 김치 가져가면 냄새가 나려나. 믹스커피는 사람들과 나눠먹을 수도 있고 내가 먹을 수도 있으니 많이 챙겨야겠어. 배탈이 날 수도 있으니 미리 물을 몇 통 사가야 할까. 나는 조금만 걸어도 배고프고 머리가 어질어질한데 과자를 좀 챙겨야겠어. 옷을 어떤 걸 챙겨야 하나, 내가 옷이 별로 없잖아. 한국이 너무 더운데 그곳도 그러면 어쩌지 나는 못 걸어 다닐 것 같은데.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이모들에게도 온종일 순차적으로 전화를 돌리며 반복해 물어보았다. 어떻게 보면 걱정을 하는 것 같기도 한데, 대부분이 설레어 보였고 어떤 땐 은근히 자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런 상황을 즐겼다. 볼 때마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프로그램 일정이 다 짜인 패키지여행이라지만, 여행지 정보를 알고 있어야 엄마를 데리고 다니기 좋고 마음의 부담이 덜어질 것 같았다. 챙겨야 할 것도 배로 많아지고 매일 같이 이런저런 검색을 하면서 공부하느라 바빠졌다.
"엄마,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딘지는 알아? 내가 세 군데 어디라고 했지?" "뭐였지. 체코. 오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엄마는 눈을 굴리며 손가락을 하나하나 세 개 접으며 말했다.
"아! 나 그거 알아. 부다페스트. 강을 가운데 두고 동쪽이 부다 지역 서쪽이 페스트 지역. 이걸 하나로 합쳐서 부르는 거야. 부다페스트! 내가 거기 간다니까 누가 알려주더라." 너 이거 알고 있었어? 하는 눈빛으로 엄마가 쳐다봤다. "몰랐는데?" "어머, 너는 어쩜 이런 걸 몰랐어."라고 엄마가 말했다. 어이구야.
책장에서 한 10년 전쯤 샀던 여행 가이드북을 꺼내 동유럽 국가가 설명된 부분을 부욱하고 찢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가져갔다. "이거 보면서 우리가 어디 어디를 가게 되는 건지, 그곳이 한국에선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가서 무엇을 볼지 대충이라도 봐 둬." "됐어. 나는 그냥 너만 믿고 따라다니면 되지" "아냐, 공부를 조금도 안 해두면 가서 봐도 뭐가 뭔지 몰라. 기억도 안 남을 거야. 대충이라도 봐둬."
다음 날부터는 엄마에게 매일매일 유튜브 영상을 보내줬다. 여행 유튜버가 찍은 도시의 모습이나 걸어서 세계 속으로 같은 영상들 중 가장 예쁘고 즐거운 모습이 담긴 영상으로 골라서. 일부러 하나둘씩 보냈다. 갈 때까지 매일 지금의 기분을 잊지 말라고. 조금씩 맛보기 하는 것처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마다 가져갈 준비물들로 엄마의 두 손이 가득했다. 엄마는 짐을 내려놓고 내 얼굴을 보면서 챙겨야 할 것도 많고 바빠서 영상을 보기 귀찮다면서도 "예쁘긴 예쁘더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