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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이삭 Aug 30. 2024

짐 싸는 것도 일


2024년 6월 말, 엄마와 함께 8박 9일간 동유럽 여행을 떠났다.

생각지도 않았던, 순전히 나의 충동적인 결정으로만 시작된 여행에서

우리는 조금은 가까워져 돌아왔다. 이 글은 그 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출발 하루 전날이 됐다. 혼자 여행 가면 대충 짐을 싸면 되는데, 엄마와 같이 가려니 챙길 것이 배로 많았다. 여권 두 개 다 잘 챙겼나. 현금과 카드, 상비약은 꼼꼼히 챙겼나. 괜히 긴장이 되어서 빠진 것 없는지 캐리어와 백 팩을 몇 번이고 열어 다시 확인했다.


 "나 옷 고른 거 어떤지 봐줘." 짐을 싸던 엄마가 나를 불렀다.


거실로 나가자 엄마는 자기가 고른 옷들을 하나씩 보여주며 어떻게 코디해 입을 건지 설명해 줬다. 맙소사. 이건 대체 어떤 조합인가.


 "엄마, 등산 가? 그런데.. 등산 가는 사람도 그렇게는 안 입겠어." 엄마가 평소 입는 옷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여름에 자주 입는 하얀색 윗도리 박시한 거. 펄럭펄럭하는 핑크색 바지. 이 청바지 위에 같이 입을 흰 티 없나. 또 푸른색 바지. 모자도 베이지색 있잖아. 자주 쓰는 거."


 떠오르는 대로 말했다. 엄마는 그대로 옷을 꺼내왔다. 엄마가 입을 옷들과 맞춰서 쓸 모자까지 하나씩 코디했다. 예쁜 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을 테니까 무조건 옷은 예쁘게 입어줘야 한다고, 등산복처럼 입으면 백 프로 나중에 후회한다고 강조하면서.


 다른 건 잘 챙겼나. 나는 엄마의 캐리어를 보고 뜨악했다. 컵라면, 햇반, 과자, 초콜릿, 믹스 커피 등등. 먹을 것이 절반이 넘게 가득 차 있었다. 옷까지 넣으면 캐리어가 터질 것 같았다.


 "유럽에도 마트 있어.. 컵라면도 팔고 더 맛있는 과자도 팔고 초콜릿도 다 팔아. 가서 사줄 테니까 좀 빼. 옷 다 넣으면 캐리어 터지겠어."

"안 빼. 나는 국산이 제일 맛있어. 외국 거는 느끼해. 못 먹어."


 많이 가져가면 짐만 된다, 어차피 가져가도 다 못 먹는다 말했지만 엄마는 어떻게든 다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캐리어가 닫히지 않아서 일부는 내 캐리어로 넘어왔다.)


 약은 잘 챙겼는지도 확인했다. 열흘 가까이 먹을 양이라 많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상당했다. 문득 엄마가 여행 가는 것을 주저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장거리 비행인데 괜찮을까' 이것저것 사소한 걱정거리가 떠올랐다.


 나는 방으로 돌아가 내가 입을 옷들을 다시 정리했다. 얼마 뒤, 엄마가 방에 들어와 나에게 회색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열어보니 유로가 있었다.


 "아침에 은행 가서 50만 원 환전했어."

이미 충분한 금액을 환전해 둔 터라 굳이 더 할 필요가 없었다.


"환전할 건 내가 다 했는데, 하기 전에 미리 물어보지. 왜 했어."

"유럽까지 가는데 친구들이랑 이모한테 기념품 같은 것도 사줘야지.. 그리고 나도 조금 보태려고.”


엄마는 수줍은 것인지 민망한 것인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내가 경비를 부담한다는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던 거다. 엄마라면 그럴만했다. 나는 돈을 받았다. 그리고 여행 내내 쓰지 않았다.

 

 우리는 다음 날 아침 8시 15분 비행기를 타야 했다. 집합 시간인 새벽 5시까지 인천공항으로 가야 했기에 못해도 3시에는 택시를 타고 출발해야 했다.


 짐을 다 챙기고 잘 수 있는 여유 시간이 4시간가량 있었지만 엄마도 나도 잠들지 못했다. 나는 너무 긴장되어서 엄마는 너무 설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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