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의 기쁨
요리를 할 때 음식재료에 알맞게 양념을 넣어야 감칠맛이 난다. 양념을 너무 많이 넣거나 적게 넣으면 당연히 맛이 나지 않는다. 처음 해보는 요리를 할 때에는 얼마나 양을 넣어야 하는지 감이 전혀 잡히질 않는다. 그래서 질문하면, 대부분의 엄마들은 적당히 넣으란다. 계량을 따로 하지 않기에 재료의 양에 따라 본인들만의 눈대중으로 맛을 내왔던 터라 "적당히 넣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의 전부이다. 사용하기 편한 '적당히'란 말이 참 애매하고 어려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여러 번의 시도와 실험을 거쳐 맛을 찾아낼 수밖에...
부지런함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에 따라 부지런함에도 차이가 난다. 적당한 부지런함이 필요한데, 요즘 이 부지런함에 꽂혀 새벽부터 밤까지 이것저것 하다가 몸살이 나서 시름시름 며칠째 앓고 있다. 온몸이 안 쑤시는 데가 없다. 열나고 기침 나고 한여름인데 한기가 올라온다. 무엇보다 아픈데, 아픈 몸을 이끌고 약을 사러 가야 하는 서글픔은 이루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눈물 찔끔 흘리고 공휴일이라서 문 연 약국이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터벅터벅 문 연 약국을 찾아 헤매었다. 다행히 눈물 더 흘리기 전에 약국을 찾았다. 빈속에 약 먹으면 안 된다고 해서 죽 먹고 약을 입에 털어 넣는다. 기운도 없고 잠도 안 오고 온몸은 아프고 '다음부턴 적당히 부지런해야지...' 다짐한다. 한 번에 몰아서 일하고 성취감을 크게 느끼긴 했지만 그 여파로 며칠째 힘을 못쓰고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몸상태에 '누굴 탓하겠어, 힘 안배 못하고 부지런함에 꽂혀서 스스로 자초한 것을...'
서글픔에 눈물 또 찔끔 흘리고 최소한의 것만 하고 있다. 숨쉬기, 먹기, 씻기, 잠자기, 설거지하기, 빨래, 청소, 다음부터는 운동도 공부도 To do lists도 적당히 해야겠다. 머리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몸도 쑤시고 손가락, 발가락, 팔, 다리, 하다못해 발바닥까지 안 아픈 데가 없다.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식에서 한 '빼앗긴 봄과 청산리 전투 뮤지컬'을 보았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광복을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애국지사들의 목숨과 맞바꾼 자유인지 뮤지컬을 통해 광복의 의미를 더 뜻깊게 되새길 수 있었다. 배우들의 열연이 그 당시 독립투사들의 절절함과 긴박감, 생과 사 사이 갈림길에서 죽음을 택해서라도 나라를 되찾겠다는 절규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빼앗긴 나라, 빼앗긴 계절, 빼앗긴 태양, 빼앗긴 언어, 빼앗긴 이름, 빼앗긴 정신, 이젠 다시 뺏기지 않겠다는 결의가 배우들의 열연과 배우들의 눈빛을 통해 그 당시 청산리 전투 독립군들의 마음가짐과 각오가 생생히 전달되는 듯했다.
우리는 이미 자유를 누리고 있기에 빼앗긴 조국에서 억압당하며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며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이 뮤지컬을 통해 나라 잃은 설움이 어떤 것인지 전달받는 느낌이었다. 창씨개명을 해야만 했고 언어와 정신마저 말살하기 위해 일본이 행했던 만행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장항쟁을 다짐한 김좌진 장군과 독립군들은 1920년 10월 21일부터 시작된 청산리대첩에서 26일 새벽까지 10여 회의 전투를 벌인 끝에 적의 연대장을 포함한 1,200여 명을 사살하였고, 독립군 측은 전사자 100여 명을 내었다.
청산리대첩은 독립군이 일본군의 간도 출병 후 그들과 대결한 전투 중 가장 큰 규모였으며, 독립군이 최대의 전과를 거둔 가장 빛나는 승리였다. 이 전투에 참가한 주력부대의 하나인 북로군정서 군의 병력은 그 해에 사관 연성소를 졸업한 298명을 포함해 약 1,600명이었고, 무기는 소총 1,300정, 권총 150정, 기관총 7문을 갖추고 있었다.
전투에 참가한 간부는 총사령관 김좌진, 참모부장 나중소, 부관 박영희, 연성대장 이범석, 종군 장교 이민화·김훈·백종렬·한건원, 대대장서리 제2중대장 홍충희, 제1중대장서리 강화린, 제3중대장 김찬수, 제4중대장 오상세, 대대부관 김옥현 등이었다. 또 하나의 주력부대인 홍범도 부대는 대한독립군·국민회군·의군부·한민회·광복단·의민단·신민단 등이 홍범도의 지휘 아래에 연합한 부대였으며, 그 병력은 약 1,400명이나 되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까지 건 이분들 이외에도 많은 분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드지 못하지만 이렇게라도 이분들의 숭고한 뜻을 기린다.
민족 저항시인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는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해외에 나가면 그 나라의 역사와 관련된 유적지들을 찾아가는 것처럼 바캉스도 좋지만 우리나라의 유적지도 돌아보고 역사적 의미도 되새겨보면 어떨까 한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