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넛지'

부드러운 권유로 소비를 선택하게하는 행동경제학

by 풍요로움

2009년 <넛지>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 수많은 기업체 CEO들이 회사 내에서 <넛지> 읽기 운동을 추진한 적이 있다. '넛지'란? 전통 경제학이 가정한 합리적 결정체로서의 인간을 '이콘'이라고 한다. 이 이콘이 아닌 현실 속 인간은 의사결정에서 후회막급한 일들을 일상에서 다반사로 일으키는 어리석은 존재다. 그 어리석은 소비 주체들의 소비 행동을 연구하는 것이 행동경제학인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 바로 '넛지'이다.

넛지 nudge는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이다. 이 책에서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뜻한다. 강요하거나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 선택을 하도록 슬슬 유도하는 것이다.


넛지는 선택 설계자가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시키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건드리지 않고도 충분히 예상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이때 선택 설계자는 사람들이 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는 정황이나 맥락을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넛지는 명령이나 지시가 아니라 사실상 보이지 않는 충고나 조언 같은 것이다. 예를 들면 과일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놓는 것은 넛지다. 그러나 불량식품을 금지하는 것은 넛지가 아니다.


넛지의 효과로 급식 담당자가 급식 배열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특정 음식을 25% 더 먹거나 덜 먹게 할 수 있고 물건 구매 의사를 묻는 것만으로도 구매율을 35%나 올릴 수 있다.

넛지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소변기의 파리 이야기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공항에서 남자 소변기 중앙에 파리 그림을 그려놓았을 뿐인데 파리를 보고 소변을 볼 때 집중력이 올라가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의 양이 80% 정도 줄었다고 한다.


이런 것을 자유주의적 개입주의라고도 하는데 이것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이다. 강압적이지 않은 부드러운 권유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의도적인 선택 설계자의 개입과 설계에 노출된 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많이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방법은 어떤 상품을 구매할 때 1개 살 때의 값과 2개를 한꺼번에 살 때의 값이 1개씩 2번에 나누어 사는 값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으로 2개이상 묶어서 파는 묶음 판매를 가장 많이 접했을 것이다. 결국 가격이 조금 저렴하다는 이유로 싸게 샀다는 만족감을 얻었지만 예정에도 없는 물건을 더사고 나중에는 상하거나 필요 없어져 먹지도 못하거나 사용하지 않고 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았던가!

연초에 항상 하는 영어공부와 운동을 하겠다 마음먹고 영어학원이나 헬스클럽 이용권을 매달 결제하는 것보다 6개월이나 1년 정기이용권을 한꺼번에 결제하면 더 싸게 구매할 수 있어서 구매하고는 다 이용도 못 한 적이 있지 않은가. 일상에서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넛지를 당해놓고도 넛지인지 모르고 당할 때가 더 많다.


<넛지>의 전반부는 인간이 선택 오류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수많은 예시로 설명하고 있다. 경제학이 인간 심리를 연구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한 것인데 더불어서 소비자가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 알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넛지의 활용사례가 소개되는데 미국 사례라서 미국 사회문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


동조 효과는 한마디로 집단 영향력이다. 모두가 예스 Yes를 외칠 때 혼자 노 No를 외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10명이 개를 보고 고양이라고 한다면 나 역시 개를 개라 부르기 힘들다. 아무도 말하지 않을 때는 감히 나서지 못했다가 누군가 시작하면 나 또한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인간은 떼 지어 다니는 존재라서 그런 것인데 이와 같은 동조 효과를 가장 잘 이용하는 분야가 기업 마케팅이다.


선택 설계의 세계에서 기업이 제공하는 '디폴트'는 소비자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디폴트는 사용자가 따로 지정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주어지는 맨 처음 기본값을 뜻한다. 휴대폰 구입 시 기본으로 설정되어 있는 벨소리며 여러 안전장치들이 그렇다. 성공적인 비즈니스에는 소비자의 편익을 위한 디폴트를 설정한 경우가 많다. 제초기 안전장치라든가 컴퓨터 화면보호기가 그런 것이다.


이콘이 못 되는 인간을 겨냥한 넛지는 우리를 호구로 만드는 기업의 교활한 마케팅 전술이 되기도 하지만 넛지를 알면 나쁜 넛지에 더 이상 당하지 않을 수 있다. 인생은 타인의 악의와 겨루는 전쟁이라는데 행동경제학 자체가 타인의 악의를 무찌르는 칼과 방패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아이디어는 판매촉진이다. 공급자에게 조금 더 유리한 측면으로 이끌기 위한 장치이다. 그래서 국가나 기업의 대빵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책이다. 하지만 집단의 리더이기보다는 팔로워로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오히려 그 반대의 입장에서 넛지를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고객을 호구로 만들려고 할 때 우리는 그 역으로 넛지를 활용할 줄 아는 삶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다.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넛지>라면 좋은 책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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