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낸 이력

by 풍요로움

보통 회사에 입사하려면 이력서를 제출한다.

처음 이력서 쓰는 방법을 배운 것은 고등학교 졸업할 무렵이었다.


졸업 당시 IMF로 국가경제가 부도난 상황이었고 몇 명의 친구들은 제과업계의 대기업, 해태제과에 입사해서 교복이 아닌 정장을 입고 학교에 등교했는데 정장이 참 세련되고 단아한 것이 그 친구에게 잘 어울렸다. 그때 당시 15반이 있었고 한 반에 60명 정도 대략 한 학년에 900명 정도, 그중 중상위 정도의 성적을 내고 있었는데, 좀처럼 취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이력서를 내려면 성적도 성적이지만 키와 몸무게, 자격증 소지 여부를 묻는데 자격증은 기업이 원하는 만큼 준비되어있었지만 키가 작아서 대기업에는 원서조차 쓰지 못했다. 키로 일하는 것도 아니고 미스코리아를 뽑는 것도 아닌데 신체적인 조건이 문제가 된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한창 뉴스에 나오는 이슈는 성형에 관한 것이었는데 '외모지상주의'를 문제 삼으며 '성형'을 부추기는 사회에 대해 뉴스에 여러 차례 다루어졌었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그 시대를 산 나는, 양갈래로 머리를 땋았었고 교복을 입었다. 회수권을 내고 만원 버스에 시달리며 새벽같이 학교에 등교해서 나름 모범생으로 살았는데도 취업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뉴스에는 연일 대기업의 부도를 알렸고 한순간 직장에서 내몰린 가장, 은퇴를 종용하는 기업에 대한 뉴스, 자살한 가장에 대해 보도했다.


요즘의 상황도 사태가 심각한 것이 감지된다. 경제상황이 나빠질 것은 예견이 되었지만 코로나로 각국이 셧다운하고 각자도생으로 갈 것은 예견된 것이 아니다. 경제상황이 훨씬 안 좋다는 것이다. 이럴 때 가장 타격을 보는 곳은 뉴스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됐지만 자영업자와 여행 관련 종사자들, 프리랜서, 학원계도 마찬가지다. 학원계에 종사자인 나도 이미 타격이 크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사태를 관망하고 꿀 같은 휴식을 보내고 정부의 긴급지원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불안감은 어찌할 수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지원을 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는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마음을 가다듬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잘 먹고 잘 자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이다.


'더 어려울 때도 살아남았는데 뭐!'

아직 밥벌이는 안돼어도 글을 쓸 수 있고 마음을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 있어 감사하다.

쉼의 기간이 있는 덕분에 반찬을 몇 가지 만들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다.

파김치, 양파김치, 최소의 양념으로도 맛을 낼 수 있는 노하우가 생겼다. 그나마 가격이 싼 재료로 끼니를 맛있게 해결하는 즐거움이 생겼다. 먹는 즐거움이 이렇게 큰 줄은 처음 알았다. 집을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몸이 피곤하면 맘껏 쉴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있는 것에 감사한다. 감사할 것을 찾다 보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오늘을 살아갈 아이디어가 하나씩 생겨서 좋다.


물론 상황이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낸 이력으로 앞으로 살아낼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라는 것이 생긴다. '희망'이 있는 한 생활이 쪼들려도 다음을 기약할 수 있어서 좋다. 어려운 상황에 몸과 마음을 여유 있게 잘 관리해 놔야 기회가 오면 지체 없이 잡을 수 있다. 여유 있는 마음은 솔직히 잘 안 되는 부분이긴 하지만 스스로를 들볶은들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마음 편히 상황을 관망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좀 더 나은 하루를 살 수 있지 않겠는가!!!


참 많은 날을 되지 않는 일에 스스로를 참으로 많이 들들 볶아댔었다. 코 빠드리고 우울해하며 '뭐가 되는 것이 이리도 없을까!' 생각하던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희망'의 동아줄이 항상 구해주었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쌓아 보육교사에서 방과 후 아동교사, 영어강사로 자리이동을 할 수 있었다. 이 자리를 만들어 내는데 주경야독은 기본이었다. 몸은 고되고 월급은 적어도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살아냈다.


날마다 불안한 마음을 고요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유지하는데 정성을 기울인다.

그래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니까.

이것이 내가 살아낸 이력이다.


작은 것에 기쁨을 찾아내고 감사할 거리를 찾아내고 마음의 시끌벅적함을 고요함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나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며 살아낸 이력이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경력은 몇 년이고 자격증이 있는지 여부가 아니라 어떤 곳에서 일을 했던 어느 곳에 있었던 그곳에서 필요한 마음의 여유와 그나마 긍정적인 것을 찾아내고 이끌어낸 것이 내가 살아온 삶의 이력이다.


난 아직도 나이에 내몰리고 갖가지 이유로 나와 일할 수 없다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낼 방법을 고민하고 찾고 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분명히 찾아낼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던 것처럼 기쁜 마음으로 나와 맞는 그 하나의 단서로도 '희망'을 찾아내어 살아낼 이력서를 작성할 것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keyword
이전 08화행동경제학 '넛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