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감정을 잘 숨기고 잘 다스리는 편이지만 가끔씩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가 있다. 보이지 않는 감정은 생각보다 에너지가 강하다. 폭발적이다.
감정이 폭발했다는 건 그동안 감정을 잘 흘려보내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여 화산 폭파하듯 어떤 화학작용과 맞물려 폭파해버린 것이다.
가끔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에 그저 한 스푼 나도 모르게 더했을 뿐인데 상대방의 과하다 싶을 만큼의 감정 폭발에 봉변당한 적은 없는가?
나는 특히 아이들을 상대하는 직업이라서 이런 감정 폭발에 주의하는 편이다. 어느 정도 이성이 발달한 성인은 적절하게 대응하고 왜 그런지 원인을 생각해볼 힘이라도 있지만 모든 부분에서 성장기인 아이들에겐 내가 생각하기에 적합한 반응이라 할지라도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까 봐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적절한 규칙을 정하고 그것만은 서로 지키기를 합의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의 마음이 상하게 되고 의도치 않은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환경은 '눈치껏'이라는 것이 있어서 서로 합의 없이 눈치껏 행동해야지 그 눈치를 캐치하지 못하면 한순간 매도되고 매장당한다. 좀 가르쳐주면 실수가 없으련만 '독심술'을 가져야 할 때가 많다. 얼마 겪어보지 않은 상대에 대해서는 상대방의 생각과 마음이 도저히 읽히지 않고 알 길이 없는데 다짜고짜 화를 내면 당황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경험한 사회는 대화로 무엇을 이끌어 낸다기보다 그냥 일방적인 복종이 요구되었다. 상대가 화를 내면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아도 '내가 뭘 잘못했나 보다!'로 생각과 감정을 마무리한다. 나중에 원인을 묻고자 하거나 알고자 하면, 제대로 말을 해주지도 않지만 사실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다. 막상 들어봐도 별일 아니었는데 다른 것에서 차곡차곡 쌓였던 감정을 내게 폭발한 것이다. 감정을 폭발해도 될 만큼, 내가 그만큼 만만했던 거다. 사람이 얼마나 얄팍한 동물인지, 본능적으로 화를 내어도 될 사람을 안다. 감정을 표출해도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을 상대를 참 잘 안다. 그래서 가장 취약한 어린아이들이 여러 범죄나 화풀이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남자보단 여자에게, 동물의 왕국이 따로 없다.
'갑질한다'란 말에 모두가 무언의 동의를 하고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것도, 권력형 성폭력, 뉴스에 보도된 상상도 못 할 아동폭력과 성착취, 이 모든 것들이 잘못된 성인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벌이는 일들이다. 그나마도 뉴스에 보도되지 않았다면 그릇된 행동이란 인식조차 못했을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을 야만적 행태, 아이들과 약자들에 대한 인간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들이 묻혀 약자들의 삶은 반복적으로 처참한 상태로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21세기인 지금에도 여권이 향상된 이 시대에도 이런 천인공노할 일들이 자행된다는 것에 개탄을 금치 못하겠다.
N번방 사건, 나랏일 하라 뽑아놓은 고위직 공직자들의 행태, 부모라는 이름으로 벌인 짐승만도 못한 짓들
나도 이 정도는 아닐지라도 알게 모르게 갑질은 하지 않았는지,
가까운 사이에 언어폭력인지 감정적 학대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말하고 행동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점검해본다.
내가 소속된 직장과 가정에서 숨 쉴 틈이 없어지자 어느 순간 인내와 참을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도저히 감정조절이 되지 않는 거다.
밖에서도 안에서도 쉴 수 없었고 감정을 삭일 곳이 없어 결국 폭발했는데
숨쉬기가 아주 힘들어지고 무기력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죽고 싶다'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밥을 몇 끼를 안 먹어야 사람 몸이 죽음에 이를 수 있지...
숨을 얼마나 안 쉬면 죽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었다.
살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 밥도 먹기 싫고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 영어공부와 책을 계속 읽었다. 살고 싶지 않은 와중에도 어떻게든 일은 해야 하니까
결국, 스스로 치유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것을 내려놓은 다음부터다.
부모로부터
모든 일로부터
모든 관계로부터 벗어나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무작정 쉬었다.
실컷 자고, 실컷 고민하고, 실컷 불안해하고...
원 없이 자고 TV를 시청하고 최대한 움직이지 않았다.
딱 한 달을 그렇게 지냈더니 마음에 응어리가 풀리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꺼진 스위치가 다시 켜지는 듯한 상쾌함
계속해서 달려온 삶에 전원을 온전히 꺼주었더니 다시 일어나고 싶은 욕구, 다시 걷고 싶은 욕구, 일상에 대한 감사함이 흘러나왔다.
아~~~ 내게 온전한 쉼이 필요했었구나!!!
날 너무 혹사시켰었구나!!!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도 별일이 생기지 않는구나!!!
때론 삶의 전원을 완전히 꺼야 할 때가 있다.
그래야 다시 숨 쉬고 싶고 먹고 싶고 일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감사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