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존중감 self-esteem이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이다. 자아존중감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판단이라기보다 주관적인 느낌이다. 이 용어는 미국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1890년대에 처음 사용했다. 자존감은 어린 시절 기틀을 마련하는데 일반적으로 유아기에 가장 높은 편이고, 이후 현실을 알아가고 경험하면서 또래와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평가하게 되고 자신의 자존감 또한 조정하게 된다.
자존감은 주양육자에 의해 형성되기는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자신이 스스로 재형성할 수 있다. 긍정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넘을 수 있을 만한 낮은 문턱부터 넘는 것이다. 난이도가 낮아 성과를 당연히 얻을 수 있는 것에 도전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되는 경험을 자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나의 경험을 말하자면 나는 고등학교를 취직을 못한 채 졸업을 했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 가서 공부하고 방과 후엔 학원 가서 자격증 취득을 위해 열심히 또 공부했다. 중상위권이었고 기업이 원하는 자격증이 준비된 상태였는데도 취직이 안되었다. IMF로 인해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은 더더욱 인력을 뽑지 않았다. 선생님들도 너희들은 불운한 세대라고 말할 만큼 유래 없이 학교에 채용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날만큼 반에서 한두 명 정도만 대기업에 취업이 되었다.
졸업 후 갑자기 많은 시간이 주어지니 생활리듬이 깨졌고 취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머릿속에 꽉 차 있는데 취직이 안되었다. 취업이 안되니 할 수 없이 문방구에서 알바를 했는데 대기업만 꿈꾸다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니 아침마다 출근하기가 고역이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한숨으로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보냈다. 물론 일할 때는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내가 바라던 직장이 아니니 밤에는 고민하다가 잠을 못 자서 출근길 버스 안에서 졸면서 두어 달 알바를 했는데 사장님이 한 달치 월급만 주고 그다음 달 월급을 자꾸만 미루어서 그만두었다. 안 그래도 하기 싫은 일이었는데 그만둘 빌미를 준 것이다. 땅이 꺼져라 한숨은 나오고 신문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써서 잘 모르는 서울길을 헤매며 이력서를 제출했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밖에 나가기가 싫고 햇빛 보는 것이 싫을 만큼 마음이 어두워졌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고 우울감도 있었는데, 졸업하고 몇 달 후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현대 계열사 무역회사에 가보라고, 학교에서 소개해준 곳이라 바로 채용이 되었다. 엄마 정장을 입고 현대사옥으로의 첫 출근, 떨렸다. 곧 그만둘 사수 언니에게 업무를 인수인계받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안 그래도 자존감이 바닥이었는데 일을 하나하나 시키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알려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수 언니는 그만둘 마음에 친절하긴 했으나 어리바리한 신입에게 알아들을 수도 없는 일을 그저 기계처럼 속사포로 전달했다. 겁먹은 나는 일주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 졸업하자마자 실패를 연이어 맛보자, 자존감이 그야말로 바닥을 쳤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죽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20살 인생에 큰 고비였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을 만큼 겁을 먹었고 자존감이 땅에 떨어졌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다행인 것은 아빠나 엄마가 한마디도 안 좋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신기할 만큼 잔소리조차 무시하는 말조차 하지 않으시고 집에 예쁜 꽃을 꽂아주시고 일부러 아빠 일하는 곳으로 불러내어 처음으로 경양식집에서 돈가스를 사주셨다. 그만큼 내상태가 심각했다. 뭐라고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신모 양이다. 한 달 정도 안정을 취했다. 그냥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몇 날 며칠을 보냈다.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되어갔지만 마음은 여전히 안갯속을 걷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사회의 매운맛을 제대로 본 것이다.
하늘이 도왔는지 한 달 만에 엄마가 일하시는 건물에 일자리가 생겼다고 가보라고 해서 가봤더니 다행히 근무하러 나오라는 거다. 얼마나 감사하던지...
엄마도 집에서 축 처져있는 내가 안쓰러웠지만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지 사람 구한다는 소릴 듣고 용기 내서 내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인데 산업에 관련된 시험을 진행하고 자격증을 발급해주는 곳이었다. 고용노동부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다. 사무실도 근사했고 일도 내 수준에서 할만한 그 정도 난이도였다. 업무가 익혀지자 자신감이 생겼다. 늘 머릿속이 멍한 상태였는데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아저씨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니 근무하는 것이 즐거웠다. 아저씨들 덕분에 볼링도 처음처보고 회사에서 가는 야유회도 재밌었다. 친구들과 가는 소풍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 좋은 직장도 시험을 보고 입사한 것이 아니었기에 오래도록 그곳에서 일할수는 없었다. 그나마 자신감이 생기니 이것저것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릴 때라 힘든 업무도 아니었고 정시 퇴근이라서, 퇴근 후 평생교육원에서 보육교사 2급 과정을 공부해 보육교사자격증을 취득했다. 1년여 평생교육원을 다니면서 친구들도 사귀고 마음의 활력도 생겼다. 함께 수다 떨고 미래를 의논하고 말할 친구들이 있어 좋았다. 같은 길을 걸을 친구들이고 서로 경험은 없지만 배운 것만으로도 할 말이 많았다. 직장 스트레스도 함께 풀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자아존중감은 피드백을 주는 주요 양육자에 의해서 대부분 형성되긴 하지만 옛날에 누가 아이들을 대놓고 예뻐할 만큼 여유가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밥만 먹여주면 스스로 알아서 했다. 숙제할 때 봐주지 않아도 알아서 해야 했고 준비물도 알아서 챙기지 않으면 선생님께 그냥 혼나야지 엄마에게 가져 다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쁘셨기에 자라는 과정에서 또래집단이나 선생님들에게 받는 피드백이 대부분인데 다행히 큰 말썽은 부리지 않았으니 무난히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고 시기에 맞게 선생님들께서 좋은 말씀, 적절한 말씀들을 많이 해주셔서 부모님이 바빠서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었다.
부모님은 새벽같이 출근하시니 밤에만 볼 수 있었고 그 긴 시간 혼자 보내지 않게 교회에 가도록 안내해주신 덕분에 교회에서 양질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문학, 체육, 음악활동을 활발히 할 수 있었다. 또래 친구들, 언니, 오빠들과 어울리면서 학교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자존감 형성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자존감 형성은 부모의 역할이 아주 크지만 부모님들이 맞벌이로 바쁘다면 아이들이 즐겁게 할 수 있는 활동들을 또래집단에서 할 수 있게 나의 부모님이 하셨던 것처럼 안내만 해주고 경쟁이 아니라 즐겁고 긍정적 느낌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만 해주어도 자존감은 높일 수 있다. 자존감이 생기면 어려움이 닥쳐도 좌절은 할 수 있지만 심각한 지경에는 가지 않는 힘을 갖게 된다. 스스로 진취적인 삶을 살 수 있고 삶을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게 된다. 옆에서 일일이 잔소리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진취적으로 살고 싶다면 긍정적인 사람들과 어울려라 그리고 활력을 주는 취미활동이든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 일하면서 성취감을 얻는 것도 자존감 높은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