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혹한 왕가의 가족사가 궁중로맨스로 변신

원작이 탄탄하고 색감있는 명품드라마로 탄생한 <옷소매 붉은 끝동>

by 풍요로움

정조의 이야기는 숙종과 장희빈의 이야기만큼 사극에 자주 등장한다. 그만큼 스토리텔링 거리가 많고 극적인 요소가 많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정조는 혜경궁 홍씨와 사도세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런데 할아버지 영조의 극심한 콤플렉스와 당파싸움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게 된다. 아버지를 잃게 되면서 어린 정조 또한 목숨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정조의 입지를 안전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할아버지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자기 손으로 죽인 잔인한 아버지였으면서도 손자에게만큼은 자신의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자신의 후궁 정빈 이씨의 아들인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시킨다.


정조는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되긴 했지만 아버지인 사도세자가 당쟁으로 죽게 되니,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노론들 입장에서는 정조가 왕이 되면,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어 어떻게 해서든 정조가 왕이 되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늘 목숨에 위협을 느끼며 하루하루 살얼음판 같은 삶을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정조와 의빈 성씨의 궁중 로맨스는 펼쳐진다.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듯이 왕세손이라고 별반 다를 게 없다. 제아무리 성군이었던 정조도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로맨티시스트였다.

로맨티시스트 왕세손 역으로 아이돌 그룹 2PM 준호가, 의빈 성씨 역으로는 이세영배우가 열연을 펼쳤다.

웹툰 소설이 원작인 <옷소매 붉은 끝동>은 이미 웹툰으로 재미가 증명되었다. 드라마 또한 재미는 보증되었다. 만화에서 금방 튀어나온듯한 비주얼과 색감 거기에 연기력까지 갖춘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여 이번 겨울 설레는 마음으로 드라마다운 드라마를 시청할 수 있었다.


이 궁중 로맨스를 더 애틋하게 이끌어간 시대적 배경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임오화변후 어린 정조가 감당해야 할 정치적 배경과 할아버지 영조의 성격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영조는 3가지 콤플렉스가 있었다. 이덕화 배우가 열연한 영조의 콤플렉스를 알아야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어린 정조가 얼마나 공포에 떨며 숨 막히게 살아야만 했었는지 알 수 있다. 정치적 당쟁과 참혹한 왕가의 가족사를 궁중 로맨스로 그려낸 <옷소매 붉은 끝동>의 주인공 정조는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기방에 드나들며 사춘기 반항을 한다.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과 할아버지 영조의 콤플렉스로 인한 히스테리가 이유인데, 첫 번째 콤플렉스는 허드렛일을 했던 무수리 출신 어머니가 낳은 천민의 자식이 왕이 된 것이다. 두 번째 콤플렉스는 영조의 형인 경종이 몸이 아파 영조가 대리청정을 하던 중 영조가 올린 감과 간장게장을 먹고 공교롭게도 경종이 죽게 된다. 그래서 형을 죽인 살인자라는 구설수에 휘말리게 된다. 세 번째는 노론이 만든 임금이라며 왕으로써의 정통성에 대해 신하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영조는 자신을 비판, 비난하는 목소리에 매우 민감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콤플렉스는 왕의 정당성을 위협하므로, 영조는 목숨을 위협받는 것과 맞먹는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영조는 다른 사람들에게 완벽한 왕으로 보이기 위해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루었다. 특히, 자기 관리를 매우 열심히 했다. 이러면서, 성격이 까칠해지고, 예민해지고 깐깐해지게 된다. 강박증적 성향도 보이게 되는데, 영조는 불길한 말을 들으면 이러한 일이 현실에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고, 이를 제거하기 위해 귀를 씻고 버리는 행동을 했다고 한다. 어렵게 왕위에 오른 만큼 자식도 자신처럼 완벽하길 바란 나머지 영조는 사도세자를 과하게 훈육하고 질책을 했고, 이러한 일관적이지 못한 훈육과 질책이 아들인 사도세자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사도세자는 여러가지 정신적인 병을 앓게 된다. 아들이 힘들어 하는데도 영조는 자신의 방식만을 고집하며 훈계를 멈추지 않는다. 아들이 하는 행동은 모든 게 못마땅해 이래도 화를 내고 저래도 화를 냈다. 이를테면 모든 것이 사도세자의 탓이었다. 영조는 천재지변, 가뭄, 혹한과 같은 자연현상도 사도세자의 부덕 때문이라고 하며 사도세자를 몰아붙였다.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는 결국 영조의 콤플렉스와 완벽주의적 성격 때문에 여러 정신병을 앓게 된다. 돌이 갓지나 세자로 책봉되어 어머니 품에서 너무 일찍 떨어진 터라 정서적 불안이 있던 사도세자는 그림에 출중했는데 어미 개 옆에 약간 떨어진 강아지 두 마리 그림을 보면 어미 품을 그리워하는 심리적 표현이 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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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도 사도세자도 심리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데다가 신하들이 이를 틈타 사도세자의 허물을 들추고 부자간에 이간질을 시켜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공공연하게 사도세자를 노론의 적으로 표적을 삼아 공격을 일삼으니 영조 입장에서는 이들 세력에 맞서지는 못하고 아들을 희생시키고 대신에 왕위를 지키는 것이 최선책이라 여긴 것이다. 이런 정치적 상황 속에 임오화변으로 아버지를 잃은 정조는 아버지를 죽게 한 할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없었을까?

아버지를 죽게 한 할아버지와 노론세력들이 죽일 만큼 밉지만 힘이 없었던 왕세손 이산은 청소년기에 잠깐의 방황을 했었다. 기방에 드나들기도 하고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사가에서 데려온 청지기 딸 덕임을 사랑하게 된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가 사가에서 데려와 딸처럼 키우던 덕임을 어릴 때부터 보아오던 이산은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고 승은을 입도록 청하였는데 거절을 당했다. 혜경궁 홍 씨의 반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덕임은 궁에서 사는 여인들의 삶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후 이산이 왕에 오른 후 다시 승은을 입도록 청했는데 또다시 거절하니 덕임을 압박하기 위해 덕임의 하인을 벌하니 그제야 후궁이 되었다.


정조 '이산'과 의빈 성씨 '성덕임'의 로맨스는 역사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절절하다.

"빈(의빈)을 후정(후궁)의 반열에 둔지 지금까지 20년이다."

嬪之置後庭之列廿載于玆- 정조 《어제의 빈 묘지명》"너 또한 내가 슬픔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슬퍼할 것이다."

"而亦哀予之不能忘哀也" - 정조, 《어제의 빈 치제 제문》

"전송하는 내 마음을 누가 갖고 나가서 애모를 표하겠는가. 내가 생각하노니 영원토록 이별하는구나."

"我送以文疇其相紼云我思矣千古之訣"

- 정조, 《어제의 빈 삼년 내각제 축문》


군 복무를 마치고 야심차게 복귀한 작품

<옷소매 붉은끝동>에 주연을 맡은 이산역에 이준호, 정말 조선시대 왕세손처럼 기품있고 풋풋한 청년기의 이산을 잘 표현했다. 표정이며 음성이 정말 왕세손 같았다. 여러 작품에서 탄탄한 연기력을 쌓아온 이준호의 연기와 아역시절부터 연기력을 길러온 이세영배우의 연기 호흡이 참 잘 맞는 듯 보였다. 명품 배우들과 함께 드라마의 주인공으로서 빛을 발했던 이준호,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이 드라마 또한 15%이상의 시청률로 대박이 났다. 궁중 로맨스 조선시대 로맨티시스트 정조는 의빈이 죽자 너무나 슬픈 나머지 20일 정도 정사를 돌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손수 의빈의 묘비에 자신이 사랑한 여인에 대한 슬픔을 새겼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들 중 전무후무하게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유일한 왕이었다고 한다. 백성을 잘 다스린 왕이자 로맨티시스트 정조, 너무 멋진 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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