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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빛소리 Feb 07. 2022

06. `낯선 이 불안`의 이면성

나를 기억해주는 아이

우리 아이가 처음으로 '낯선 이 불안'의 증상을 보였다. 분명 불안의 형태인 부정적 감정인데, 나에게는 '희열감'을 안겨주었다.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출처-unsplash


6-8개월 정도의  못 하는 아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기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과 아무런 정보가 없는 타인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는데, 타인을 보고 눈 맞춤을 회피하고 울거나 심지어는 비명을 지르기도 할 때, '낯선 이 불안'이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아이도, 여지없이 발달심리학 전공서적에서 읽었던 '낯선 이 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에 아빠가 놀러 오셔서 아이를 안아주셨는데, 아이는 자기를 안고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심각한 표정으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일단 눈을 피하고 동공은 갈 길을 잃고 자꾸만 옆에 있는 나를 향했다. 눈에 맺혔던 눈물은 금세 불어나 눈 안에 차오르고 동시에 입술 끝자락이 자꾸만 쳐지더니, 삐죽삐죽 움직이는 입술이 앞으로 툭 튀어나왔다. 결국 참다못한 눈물이 뚝뚝 떨어지며, 아이는 꺼이꺼이 운다.


아이를 안고 있던 할아버지가 당황함과 서운함 사이를 오가는 동안, 나는 마냥 웃으며 아이를 바라보고 두 손을 뻗었다. 아이가 내게로 몸을 향하는 것은 덤으로 얻는 행복이다.


'낯선 이 불안'은 영아에게 생존과 관련된 적응적 기제이자 애착형성의 반증인, 그저 아이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 정도라고 이해했었다. 실제 '낯선 이 불안'이 부모에게 줄 수 있는 희열감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어쩌면 '낯선 이 불안'은 말 못 하는 아이가 육아에 지친 부모에게 최초로 건네는 감사함의 표시이자, 진한 감동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친숙함과 새로움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 짓게 되는 시기에, 아이들은 이전에 누구에게나 보였던 사회적 미소를 오직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만 보이겠다고 표명하는 것과 같다.


부모가 되어 보니, 이전에는 그냥 넘어갈 만한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무뎌졌던 감각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아이가 보이는 감정적 반응이나 작은 행동 변화에도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걸 보면...


그래서 아이가 보여준 작은 선물 덕택에 부모 됨의 무게를 실감하며, 오늘도 나의 심장은 아이를 위해 세차게 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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