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네가 고등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전국의 모든 학생들과 경쟁하며 모의고사를 치른 날이야.
고 1에게 3월 모의고사는 중등 전 과정이 범위인지라 일반적인 수능 모의고사와는 차원이 다를 테지만, 그래도 수능형 모의고사를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종일 치른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야.
얼마나 긴장 상태였을까. 시간에 쫓기는 그 마음이 굉장히 불안했겠지?
앉아서 고개를 수 시간을 숙이고 문제에 집중한다는 건 지나온 지 오래된 기억이긴 하지만 엄마에게도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던 것 같아.
어찌 됐건 모의고사를 치르고 나니, 네가 진짜 고등학생이 됐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부터 아린다.
또, 시험이 끝나고도 집으로 오지 못하고 바로 학원으로 간 너의 의지를 칭찬해. 오늘 같은 날은 학원 째고 쉬고 싶었을 거고, 생애 처음 받는 충격적인 점수에 당사자인 너도 엄청 화들짝 놀랐겠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 상상이 된다.
오늘을 기점으로 네가 앞으로의 방향성을 잘 잡을 수 있다면 그걸로도 좋은 인생 공부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지켜보는 내가 이렇게 힘이 든데, 너는 얼마나 힘이 들까. 눈물도 울컥 솟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스트레스에 지끈지끈할 너의 마음을 어떻게 내가 달래줄 수 있을까?
사실, 나는 각오 중이야. 네가 이따 돌아오면 엄마에게 엄청나게 따따따따 쏟아붓겠지. 오늘만큼은 기꺼이 너의 짜증받이가 되어 주려고 아침부터 굳은 마음을 먹고 있어.
사실 걱정되기도 해. 네 짜증 받다가 나도 또 욱하고 올라와버릴까 봐. 그럼 나의 하루동안의 다짐이 도루묵이 되어버리는데...
오늘 많은 수험생들 이야기를 뉴스와 글들로 접하면서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
정말 갈수록 이상하게 변하는 교육제도 때문에, 너희는 더더욱 해야 할 공부량이 넘쳐나는 가여운 세대가 되었지.
만능을 요하는 새로운 교육 정책의 희생양임을 분명 알면서도, 엄마 역시 그리로 너와 손잡고 가야만 하는 입시라는 흐름 때문에 수천번씩 갈등해.
네가 몸도 마음도 아프게 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 중요한 게 무엇인지 항상 고민을 놓지 않으려고 해.
성적 만능주의에 소위 육각형 인재를 바라는 시대를 살고 있기에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좌절감과 허탈감을 느끼게 되는 일도 많을지도 몰라.
개인이 타고나는 재능은 모두가 다른데, 다들 공부라는 재능만을 최고라 쳐주는 학창 시절은 안타깝기 그지없어.
살아보니 공부하나로 한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한다는 게 얼마나 우습고 어리석은 일인가 하면서도 지금이 중요한 시기임은 분명하니까.
네가 보낼 3년의 시기는 사회에 나가기 앞서,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성실히 해 나가는 힘'에 대한 이야기가 될 거야.
이 시기의 최선이 너에게 굉장한 무기가 되어 줄 것이고, 결과와 상관없이 죽도록 무언가를 파고 또 판 경험은 너를 단단하게 만들어줄 거야. 좌절할 일이 생겨도 다시 금세 일어날 수 있는 마음 코어의 힘을 줄 것이고, 미련 따위 훌훌 털고 다음 스텝을 건강하게 내딛을 줄도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거야.
이번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울적해할 필요 없어.
고등1학년 시기의 첫 모의고사는 대단한 것도 아니고, 네가 하루 종일 앉아서 전국의 고등학생들과 함께 치른 경험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너의 하루는 최선을 다한 초집중의 시간이었고, 스스로와 첨예하게 갈등하고 싸우며 잘 견뎌낸 하루니까
기특하지 않을 수도 없지.
너는 과정에 충실했고,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그것으로 아주 아~주 충분히 잘 해낸 하루였다고 생각해.
사실, 나는 많이 두려워. 너의 날카로운 짜증말투와 매서운 눈초리를 오늘만큼은 정말 잘 받아주고 싶은데...
딸아, 그래도 네가 오늘의 성적 하나로 길게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자신을 가져. 네가 가진 역량은 이제 부릉부릉 시동걸기 시작한 단계이니까 조급하지 말기로 해.
공부가 아니어도 너는 이미 엄청나게 빛을 발하는 사람이란다.
괜찮아, 괜찮아.
우리 딸. 너무너무 고생 많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