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4
1. 모처럼만의 휴가였다. 개인적으로 정말 힘든 한 해였다. 회사 상황은 악화일로에 동료들도 더없이 철저히 각자도생 하던 일상. 좀 차분히 쉬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비상계엄이 터졌다. 집에서 밀린 영화나 몰아서 봐야지 했는데 이건 뭐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몇 겹씩 옷을 껴입고 목도리와 장갑, 응원봉 키링(매번 이선좌 처맞아서 응원봉은 사지 않았다)과 충전용 배터리를 챙겨 들고 광장으로 나갔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함께 나와있는 사람들을 살펴본다. 여성들. 수많은 여성들.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 평론을 한다는 사람들은 공동체의 소중함을 잊고 살던 청년들이 비상계엄을 보고 '자신의 삶'이 위협을 당하자 비로소 각성했다는 식의 분석을 하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지. 그동안 여성들은 이유 없이 길을 가다 돌려차기를 당하고 헤어짐을 이유로 살해당하는 현실에서 살아남아왔다는 것을. 혜화역 시위에서부터 동덕여대 시위까지 언제나 거리에는 반드시 여성들이 있었다.
가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근조화환, 트럭시위 등을 여성팬덤이 할 때는 비판이 많았었다. 동덕여대 시위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대학생들에게 손해보상을 세게 물려서 사회로 나가기 전에 버릇을 고쳐놓아야 한다는 식의 주장들이 그럴싸하게 받아들여졌다. 탄핵 집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시위가 시작되자 그녀들은 제일 먼저 호명되기 시작했다. 필요에 따라 가장 바람직하고 희망적인 모범 시민들이 됐다. 그러나 과연 집회 최전선에서 시위를 이끌어가던 이 여성들은 싸우는 법을 어디서 배웠던 걸까? 그것을 알려줄 기성세대와의 접점도 거의 끊긴 마당에. 부당함에 항의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행위는 일상에서 만들어진다 그들이 평소에 대형 기획사와 학교와 분쟁하지 않았더라면 저 전투력은 어디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매일 전해지는 다른 여성들의 황망한 죽음에 항의하고 부당한 차별과 대우에 저항하지 않았더라면. 시끄럽고 요란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장을 밝히고 합의점으로 향하려는 변화의 의지. 그리고 그것을 이뤄내려는 행동. 우리는 이걸 정치라고 부른다. 그녀들은 정치를 멈춘 적이 없다. 한 순간도.
2.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집회들을 기억한다. 수많은 직종의 사람들이 일상의 문제들을 한 아름 안고 무대 위로 올라섰다. 간호사가, 영양사가, 장애가 있는 사람이, 배달기사와 교사가 시민들에게 열린 광장 위에 서서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함께 살아가고 싶은 우리의 내일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했다. 오랜 시간 무관심해왔고 듣고 싶지 않았던 일들도 수면 위로 올라왔다. 부지불식간에 광장 위를 오가는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시정하기를 요구하고 큰 관련이 없는 타자들의 목소리에 참을성 있게 귀를 기울이던 시간들이었다.
80년 광주에서는 잠시동안 대동세상이라는 게 열렸다고 한다. 당시를 목격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증언하는 이야기다. 혼란한 광주에서 노인과 어린아이, 여성과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보호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도 함께 거리 위로 나섰다. 모자란 음식과 생필품, 헌혈에 필요한 피와 의약품들이 어디선가 무상으로 제공되었다. 집집마다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들고 나와 필요한 곳에 쓰이길 원했다. 폭력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을 숨겨주고 부상당한 사람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던 그 세상은 분명 어딘지 우리가 원하는 이상향과 매우 닮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끔찍한 상황 속에서 가장 고귀한 것들이 피어나다니.
당시를 겪은 적 없는 나로서는 2016년 탄핵 집회를 보며 막연하게나마 80년 광주를 상상할 수밖에 없다. 시민이 동료 시민의 목소리에, 어떠한 이해관계나 악의 없이 온전히 귀 기울일 수 있던 순간. 우리 모두의 몸이 거대한 하나의 귀가 되었던 그 시간.
과격하다고 욕을 먹던 금속노조와 노동조합들이, 요구하는 것만 많다고 무시당하던 장애인인권단체와 여성단체들이 단상 위에 올라, 비로소 한 명의 존엄한 시민의 모습을 하고 서로를 대등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그 기적의 순간들을 아주 오래 기억하고 있다.
꽤 많은 학자들과 평론가들은 박근혜 탄핵 이후 이러한 광장의 에너지가 정치와 연결되면 정말로 많은 것들이 변화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그 시간들은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그런 것처럼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며 혁명의 소멸을 슬퍼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기루 같은 거였을까 그 순간들은. 손에 잡힐 것처럼 분명했는데.
그러나 오늘, 다시 한번 그날의 기억들을 떠올려본다. 그때보다 훨씬 더 차분히 타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내 옆자리의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찬 바닥에 도란도란 둘러앉아 무대 위로 끊임없어 오르는 초등학생, 할아버지, 노동 조합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 사람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어쩌면 이 사람은 직장에서 나를 괴롭히는 선임일지도 모른다. 내게 사기를 치거나 컴플레인을 거는 진상 고객일지도 모른다. 표리부동한 말을 하며 회사생활을 어렵게 만들고 내 파이를 훔쳐가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만은, 이곳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더 나은 세상. 더 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기를 원하는 투명한 열망 하나만을 지닌 채로 서로의 옆에 앉아 꿈같은 이야기들을 진심으로 믿고 싶어 한다. 차별받지 않고 혐오하지 않는 사회. 굶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들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사회.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유로워지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나이브하고 순수한 열망 하나만을 지닌 사람들의 눈동자는 정말로 맑고 사랑스럽다. 나는 그 눈들을 들여다보는 이 순간들을 정말로 좋아한다. 그것은 막연하게만 느껴지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이라는 추상성이 인간의 모습으로 구체화되는 시간이다. 나의 희망이 바로 당신이다. 당신일 수밖에 없다.
오늘이 지나면 우리는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우리는 다시 갈라설 것이다. 언제 어깨를 맞댔냐는 듯이. 우리는 파이를 두고 또 싸우기 시작하고 정치인들은 표변하며 지지부진한 과거의 문제들은 변함없이 그 자리에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처럼 버티고 서 있겠지.
그러나 오늘 집회에 나온 사람들은 분명 함께 꿨던 소중한 꿈 조각 하나를 마음에 안고서 돌아갈 것이다. 함께 바라봤던, 함께 감각했던 어떤 이상향의 흐릿한 형체를 기억하면서. 2016년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슬퍼했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우리는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다. 우리가 서로를 향한 희망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정말 조금씩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또다시 가장 어두운 시간이 도래했을 때 다시 광장 위에서 만날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분명한 약속이다. 누구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가 이제는 알고 있는. 나는 이 약속을 믿고 싶다.
3. 모두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