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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효닝 May 14. 2020

집 앞 도로에서 사고가 났어.

저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가는걸까 .

저녁 6시.


 평일 오후 6시, 대부분의 사람들의 퇴근시간이다. 이런 바쁜시간, 우리집 앞 8차선 도로에서 접촉 사고가 났다. 큰 소리도 나지 않았고 경찰차도 오지 않는 가벼운 접촉 사고인 것 같았다. 하지만, 퇴근시간이고 8차선 도로라 그런지 가장 오른쪽 차선에서는 버스가 그리고 왼쪽에서는 좌회전하기 바쁜 차들 그리고 신호에 따라 직진하는 차들까지 통행량이 꽤 많다. 운전하고 있는 사람들은 각자 차 안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사고 현장을 지나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정열을 맞춰 현장을 빠져 나가는 차들이 보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차례차례 사고난 차 주변을 둘러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가는걸까?'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살고있다. 사고가 난 차 처럼 내가 아무리 멈춰있어도 정말 다양한 차들이 다들 특정한 목적지와 자신들만의 시간을 위해 나아간다. 어떤 사람들은 버스를 타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차를 운전하면서, 또 어떤사람들은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거나, 약속장소, 식당, 독서실, 백화점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신만의 목적지에 다다른다. 참 많은 사람들이 각자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다시 한 번 느끼는 저녁이다.


 난, 접촉 사고가 난 차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인생에 큰 일이 있고 정체되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접촉 사고가 난 차들과 그 주변을 유유하고 질서정연하게 빠져나가는 차들처럼 그저 그 공간을, 그 시간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라는 말이다. 모두 각자만의 지금을 살아간다. 사고가 난 차들은 각자의 보험 회사에 연락을 취하고 현장 보존을 위해 경찰이 오기를 기다린 후, 그 현장을 수습하고 다시 바쁘게 자신들의 시간을 위해 나아갈 것이다. 




나는 크루즈 승무원이다.


 약간은 생소한 직업 일수도 있지만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다른 차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그저 앞을 향해 달리는 차이다.


 나의 활동지는 대부분 아시아이다.  보통 '크루즈 여행'하면 유럽의 외딴 섬이나, 알래스카 빙하 크루즈, 네덜란드 자연 크루즈 등 호화로운 광경을 떠올린다. 한국인 크루도 상당수 미주나 유럽으로 나아가 있는 듯 하다. 나도 그런곳에서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며 '이 섬도 갔고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갔었어'라고 자랑하며 일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만 크루즈가 운항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탈리아 선사를 타고 아시아를 누비며 부산이나 인천, 목포같은 한국포트에도 정박한다. 얼마나 보람찬지 모른다. 내가 가장 잘 아는 곳에서 어느곳보다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소개하니 매일이 벅찬 나날이다. 또한 대부분의 손님들은 아시안이지만  머나먼 아시아로 여행온 유럽인이나 미국인들을 위한 시즌도 있다. 그리고 이 아시아 크루즈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인시즌'이 있는 것인데, 아직까지 크루즈 여행이 익숙치 않은 한국인들을 가이드 하는것도 매우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크루즈 업계가 2020년, 'COVID-19' 사태로 주춤한다. 대부분의 선사들은 다수의 크루들을 집으로 보낸 상태이며 나도 며칠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고 현장을 빠져나가다. 


시간이 흘러 밖을 내다보니, 사고가 났던 장소의 차들은 이미 수습을 끝내고 자신만의 목적지로 갔고, 또 다른 차들이 거리를 내달리고 있었다. 오늘 이 접촉사고를 목격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 사고를 마음에 새길 것이다. 누구는 '저렇게 끼어들지 말아야지', 또 다른이는 '어휴 사고 때문에 길만 막혔네', '사고 난 사람들 참 운 없다' 등 그들은 오늘 저녁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와중에  여러가지 생각들을 했을 것이다.  


 난 그들과 같은 시간을 살며 목적지로 나아가는 와중에 난 접촉사고가 난 차량으로,  일상에서 '생각'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 

 즉, 다른 사람들과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크루즈 승무원이라는 조금은 흔하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새로운 경험들과 독특한 환경들을 공유하면서 그들에게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이고 싶은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의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은 '끼어들지 말자'라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고, '사고를 내면 막히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기 때문에 그보다 시간이 덜 걸리는 양보'를 택할 것이고, '운으로도 알 수 없는 도로 상황을 위해 안전운전'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고가 난 차량인 나는  이들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안전 운전에 대한 생각을 재고 하게 될 것이다. 

 결국은, 주변 사람들과 주변 환경을 통해 보수와 개선을 꾀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생각 및 교훈을 주며 그들과 같은  시간을 사는 사람이 되고싶기에 오늘 저녁 접촉사고 현장이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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