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효닝 Jun 21. 2020

우리는 김치 민족 아닌가.

김치남 아빠

 "언제 한 번 밥 먹자."

하며 다음 약속을 잡고.


"국도 밥도 없을 줄 알아!"

라며 호통을 치기도 하고.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다."

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라.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참으로도 밥을 좋아하는 나라이다. 오죽하면 하루 중의 안부를 '밥'으로 물어보고, 다음 약속을 밥으로 잡으며, 속담에까지 밥 이야기를 해댄다. 나 또한

 "밥 먹었어?"

 하며 시작되는 대화가 익숙한 사람이다.



김치녀라고 해줘서 고마워.


 "김치 김치, 어휴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야? 너도 김치야?"

라며 물어오는 질문들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응 나도 김치야."

라고 대답해주면 되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일본은 초밥, 한국은 김치가 그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라는 것을 아시아 국가에 대한 차이를 아는 외국인들은 대게 아는 이야기이다. 그러면 그들은 마치 내가 '김치'라는 명사가 된 것처럼 언제나 나에게 너도 '김치녀'(Kimchi Girl이야?) 이냐고 물어보곤 한다. 한국인이라면 어느새부터인가 신조어로 등장하게 된 김치녀라는 말이 듣기 좋은 어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난 김치녀가 맞다. '김치를 좋아하는 여자'


우리 아빠는 김치녀를 좋아하는 김치남.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생각했던 수능날 나의 점심은 '김치볶음밥'이었다. 장녀라는 기대감과, 부모님의 부담감에 평소에도 가장 빈번하게 먹었던 김치볶음밥을 점심으로 골랐다. 그날 내 도시락 당번은 우리 아빠. 독특하지도, 그렇다고 긴장이 담기지도 않은 의연한 한 그릇 식사였다.


 언제나 밥을 볶기 전, 버터를 넣을 것을 강조하는 아빠의 김치볶음밥은 사실은 주인공인 김치의 역할보다는 '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레시피(?)였다. 진정 밥의 민족인가 보다. 밥맛이 좋으면 무엇을 먹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며 기숙사에도 밥솥을 사주는 우리 아빠이니 할 말 다 했다. 기숙사에서는 원래 취사도구 반입이 제한된다. 그래도 몰래몰래(?) 아침마다 밥솥에 해 먹는 밥은 즉석밥보다는 단연코 찰지고 싱그럽기까지 했으며, 룸메이트들에게도 나눠주는 정이 있는 아빠를 가진 신입생이었다랄까.

 

 다시 나의 수능날 그 김치볶음밥으로 돌아오자면, 개인적으로는 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하루에 김치볶음밥을 선택한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김치는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있었던 아빠처럼 참으로도 무던한 음식이자 요리 재료였기 때문이 아닐까 해서이다. 사실은 소녀에서 숙녀, 아가씨의 나이로 성장하면서 아빠와 거리감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99퍼센트 나의 편에서 생긴 거리감이지만 말이다. 다른 친구들은 모르겠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계속되는 아빠의 관심과 연락이 없었으면 했다. 급격하게 바뀌는 새로운 환경들과 발전되는 시대를 걷고 있는 나름대로의 한창의 나이를 살고 있는 나에게 언제나처럼 나에게 같은 호기심을 갖는 아빠가 나아가는 나에 비해 느리다고 생각했던 걸까. 참. 내가 김치녀였네.


 나의 수능날이지만, 새벽 댓바람부터 김치를 썰던 아빠의 팬티 바람의 뒷모습이 선하다. 이젠 '성장'하는 나이보다는 '성숙'해지는 나이가 되자. 비로소 아빠는 내가 어릴 때부터 그냥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아직까지도 그곳에서 나를 바라보고 지켜주는 사람인 것이다. 난 익숙하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연을 너무 가벼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하게 그날 김치볶음밥을 도시락으로 가져가게 되었지만, 김치를 써는 우리 아빠는 나에게  정말 그 김치와 같은 존재였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람이 가진 존재이자 없으면 안 되며 있으면 무궁무진한 존재감을 가진 그런 것.

 



우리는 김치볶음밥, 김치찌개, 김치 반찬으로 밥을 먹는 민족 아니겠습니까.


 사실 김치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는 집집마다 독특한 자신들만의 요리법까지 포함한다면 정말 무궁무진한 요리 재료가 아닐 수 없다. 수능날 다행히 반찬으로 김치와, 김치찌개를 곁들여 가지는 않았지만 그것들이 포함되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밥상이지 않은가.


"김치 이렇게 만드는 거 맞지?"

라며 배추를 숭덩숭덩 잘라낸다.


"에이 그냥 뭐 이러면 되는 거 아니야?"

하며 자른 배추들을 뜨거운 물에 삶는다.


"이렇게 만드는거네 뭐."

라며 고추장이랑 고춧가루와 같은 최대한 한국스러운 조미료 들을 가져와 섞어보기도 한다.


 내가 일하는 크루즈 선에서는 한국인 전세 시즌이 있다. 김치녀라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 기간이기도 하고 말이다. 한 번은 주방에서 이와 같은 대화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인 셰프가


"김치는 그냥 하루 이틀에 걸려서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 아니야."


라고 말을 했는데도 일어나고 있었던 일이었다. 외국인들이 보기엔 잘려있는 김치가 처음부터 배추를 잘라야 했고, 보기에도 숨이 죽어있는 배추는 물에 삶아서 억지로 죽여야 하는 식감이며, 빨간색의 양념들은 그저 고추장, 고춧가루인 줄 안 것이다. 아무래도 완제품으로 들어오는 김치의 단가 절감과 더욱 신선한 상태를 제공하고 싶은 이탈리안 총주방장의 마음이 섞인 것일 수도 있지만 한국인들에겐 금기시되는 장면이었다. 물론 저렇게 만들어진 '죽은 배추와 고추장 콜라보'는 그들 자신들이 보아도 안될 것 같은 음식이 되었지만 말이다.


 "아 이제야 살 것 같다."


 하는 말들은 고작 하루 이틀 만에 김치를 먹은 한국 사람들의 탄성이다. 4일에서 5일 정도 걸리는 여행은 이탈리안 크루즈라는 특성에 맞춰 모든 음식이 '이탈리안식'으로 제공된다. 피자와 파스타만이 이탈리안 음식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나날들이다. 하지만 하루만 지나면 생각보다 짧은 여행이라 김치를 사 올 생각조차 하지 않은 한국인들은 느끼하고 짠 음식에 지치고 만다. 이럴 때 등장하는 음식이 김치. 모든 컴플레인과 불편한 환경들을 잊게 만들어 주는 경이로운 음식이 된다 김치는.


 "오늘 밥이랑 김치만 먹었는데 진짜 살 것 같네요."


 사실 김치만으로는 안된다. 흰밥도 꼭 필요하다. 너무 하얘서 투명해 보이기까지 한 고슬고슬한 밥 위에 올려 먹는 차가운 양념의 김치의 아삭아삭함은 어떤 음식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상쾌함이다.  송아지 꼬리 요리, 스테이크, 이탈리안식 디저트 밀푀유, 치즈케이크들이 그들 앞에 있어도 모든 사람들은 성난 황소처럼 '밥'과 '김치'를 외친다. 뭐 그중에는 이국적인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우린 김치볶음밥에 김치 반찬과 김치찌개를 먹는 민족이 아닌가. 어떤 음식을 먹어도 배부르기는 마찬가지라면 모두들 난 김치를 택하겠다의 마음가짐이다. 김치는 이렇게 내 도시락, 우리 집 반찬에서 시작해 한국인은 '김치'라는 수식어가 생기게 만든 어마어마한 음식인 것이다.




 반찬인 줄로만 알았던 '김치'는 내 도시락에서 시작해 우리네 아빠의 존재감이기도 했으며 나아가서는 한국인들끼리 통하는 '밥 한 끼'였던 것이다. 아빠의 진심이 녹아내렸던 수능날의 도시락 준비와 한국인들의 마음을 매료시켰던 김치는 오늘도 모든 가정에서 당연하지만 또 결코 당연하지 않은 존재이지 않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