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산 능선이 선명하다. 가을날 풍성했던 논두렁 길엔 미루나무 홀로 바람을 등지고 서 있다. 택배기사 이현영 화가의 그림이다. 나무는 화가의 그림에서 빠지지 않는 소재이다. 때론 작은 나무둥치가 때론 아름드리 둥구나무가 등장한다. 전시회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그림 앞이다. 그림은 마치 울울창창한 숲속에 든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림 앞에 머문 관람객도, 사진을 찍는 지인의 눈에도 호기심이 가득하다. 나 또한, 숲속 향기에 취하여 자리를 뜨지 못한다.
이현영 화가의 직업은 택배기사이다. 그림 작업은 주말이나 자투리 시간에야 가능하다. 그림에 얼핏 슬픔이 느껴진 연유가 그의 고단한 삶이 스민 탓이리라. 아마도 지친 마음을 품 넓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싶었을 것 같다. 작가는 나무가 품은 보시의 마음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삶을 꿈꾸었으리라.
정녕 특별전이다. 어머니와 아들 화가가 함께 그림전을 여는 일은 드물다. 전시된 작은 화폭 속 둥구나무에 별빛인 듯 꽃잎이 다복하다. 나무 아래에는 두 남녀의 정겨운 모습이 보인다. 주인공은 두 분의 자화상일까. 아니면 풋풋한 어느 연인의 모습일까. 그림 속 남녀의 모습이 별빛인 양 곱다.
아들 이현영 화가와는 달리 노모 김두엽 화가의 그림 주제는 주로 초가집이다. 황토로 지은 집 마당은 말끔히 비질되어 있다. 화폭 속 마루에 앉아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동하는 작품이다. 우리의 마음에 간직한 고향 풍경이 모두 이와 같지 않으랴. 당신은 작업에 몰두한 아들 옆에서 그림을 한 장, 두 장 그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내 알록달록한 그림물감에 마음을 빼앗겼으리라. 집과 가족, 아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던 촌로 화가의 마음에 닿아본다. 당신의 시선은 밤낮과 계절이 바뀌는 중에도 변함없이 가족과 자식들을 향한다. 또 하나 노모 김두엽 화가의 그림에서는 구연동화를 읽는 듯 정겨운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화가는 삶을 색으로 표현하는 예술가이다. 그렇다면, 문학은 단어와 문장으로 삶을 표현하는 예술가라고 말하고 싶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매 순간 다양한 색과 깊은 향이 우러나는 문장을 쓰고자 소망한다. 그러나 마음처럼 쉽지 않다. 우리의 삶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빛이기도, 바닥 틈새를 비집고 오른 민들레 꽃잎이기도 하다. 그처럼 한결같지 않은 생을 살아가지만, 눈물이 아닌 노모의 그림처럼 정겨운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예까지 이르자 내 생의 그림은 어떤 모습일까 돌아본다.
전시관 모니터에 모자의 모습이 흐른다. 노모의 시선은 인터뷰하는 아들 얼굴에 고정되어 있다. 주름살 가득한 촌로 화가의 얼굴이 볼그레하다. 아들을 향한 노모의 평화로운 표정이 전시관 그 어떤 그림보다 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