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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 이인숙 Jan 12. 2022

땅의 옷

  섬을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길이다. 지인들은 붉은 동백꽃에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다. 나 또한 꽃을 찍다 매끈한 동백나무 둥치에 시선이 머문다. 둥치에 작고 얇은 하얀색 물체가 따개비처럼 붙어있다. 하얀색 실로 섬세하게 뜨개질한 듯 곱다. 아니 가장자리 문양은 마치 레이스를 주름 잡아 놓은 듯 단아하다. 이미 동백꽃은 안중에 없다. 나의 호기심을 끈 것은 작은 문양의 ‘땅의 옷’이다.

  지인과 찾았던 섬에서 땅의 옷과 눈인사를 나눈다. 섬은 오랫동안 일본군의 주둔지였던 곳이다. 해방을 맞아 섬을 찾았지만, 다시 군사지역으로 지정되어 그 모습은 밖으로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연유로 섬의 물상들은 옛 모습 그대로 세월 속에 머문다. 꽃나무가 육지에서 흔히 보았던 모습과 달리 가지가 굵고 잎이 울창하여 마치 큰 나무둥치를 보는듯하다. 섬의 물상들은 모진 세월을 지내온 애틋한 정으로 연결된 듯 파란의 세월을 잊고 평화로운 휴식을 즐기고 있다. 

  회연서원 돌담 기와에서 만난 땅의 옷은 그 모습이 조금 색다르다. 허연빛의 얇은 모양도 있지만, 짙은 회색빛 도톰한 것이 대부분이다. 땅의 옷은 다른 식물과 달리 생육이 더디다. 일 년을 자란 크기가 겨우 일에서 이 미리 정도란다. 그렇다면, 400여 년의 세월을 품은 회연서원이니 땅의 옷 역사도 그와 비슷하리라. 회색빛 땅의 옷을 조심스레 만져본다. 

  바싹 마른 표면은 생기라곤 느껴지지 않는다. 끝부분을 만지니 쉬이 부서진다. 마르고 쉬이 부서져 마치 죽은 것처럼 보이나 죽은 것이 아니란다. 극심한 기후에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스스로 수분을 제거하고 휴면기에 접어든 것이다. 환경에 적응하는 순발력이 대단하지 않은가. 그의 생존법이 놀라울 뿐이다. 몸집이 크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자신을 지키려는 보호색도 없으니 스스로 살아내는 법을 터득한 것이리라. 땅의 옷은 지의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오래된 물상 주변이나 바위에서 그것을 만날 수 있다.

  서원 입구를 지키는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엔 푸른 이끼가 가득하다. 나무는 주변에 흐르는 강의 영향인지 온몸에 이끼의 습격을 받고 있다. 둥치의 빛깔이 애초 푸른색이었던 것처럼 이끼가 나무 전체를 감싸고 있다. 푸른 이끼는 땅이 옷과는 달리 수분이 많고 성장이 빠르다. 물기 많은 이끼가 둥치를 타고 오르면 나무는 숨을 쉬지 못하고 썩는다. 서원 관계자는 둥치 아랫부분에 수북이 쌓인 흙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조치할 계획을 세운다. 스스로 살아낼 방법은 없으나 인간의 관심과 도움이 나무의 삶을 지켜 주리라. 생을 다스리는 데는 사람이나 사물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문득, 거리에서 보았던 중년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남자는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다. 집도 아닌 길바닥에 휴식을 취하려 누운 것은 분명 아니다. 옆을 서성이는 젊은 남녀 표정을 살피니 예사롭지 않다. 남자의 얼굴에선 핏기 하나 없이 미동조차 없다. 그의 주변으로 수런거리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들 틈에 끼어 우왕좌왕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싶어 자리를 벗어난다. 젊은 남녀가 구급대원을 부르니 괜찮으리라 생각하지만, 마음은 개운치가 않다. 얼마나 지났을까.

  머리에 챙 모자를 쓰고 깡마른 남자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자세히 보니 조금 전 길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던 남자이다. ‘다행이다’ 생각하는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구급대원에게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지르는 남자는 조금 전과는 달리 힘이 넘쳐 보인다. 그와 대조적으로 구급대원은 무표정으로 그를 지켜볼 뿐이다. 내 시선은 조금 전 그를 챙기던 젊은이들을 찾는다. 

  젊은 여자가 구급대원의 품에 기대어있다. 얼굴은 볼 수 없으나 어깨가 들썩이는 것을 보아 울고 있는 듯하다. 조금 전 함께 있던 남자는 화를 누르고 있는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다. ‘하루에 한두 번은 신고가 들어와요.’ 구급대원의 말이 이어진다. 술을 먹고 아무 곳이나 쓰러져 잠을 잔단다. 더구나 도움을 주는 이에게 자신을 해코지한다며 억지소리와 주먹을 휘두르는 일도 예사란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란다.’더니 그는 어쩌다 자신의 삶을 저리 내동댕이치고 있을까.

  그의 삶이 궁금해진다. 젊은 생을 다하여 공들인 사업이 무너져 정신적 충격이 심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정신을 잡을 수 없을 만큼 큰 시련을 겪고 세상을 향해 알 수 없는 분노를 토해내는 것일까. 누구나 삶의 애환이 없을 수는 없다. 작은 생명체인 땅의 옷도 극심한 기후에서 살아내고자 스스로 수분을 배출해야만 하는 고통을 이겨내고 있지 않은가. 

  그는 세상을 향하여 구원을 청하는 것이리라. 스스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자가 어디 있으랴. 또한, 타인에게 짐이 되고 불편함이 되는 것을 바라는 자가 누구랴. 세상을 향해 자신을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것만 같은 그의 모습이 안타깝다.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당당히 지켜내는 땅의 옷의 생을 안다면, 삶을 대하는 그의 자세가 달라질까. 남자의 삶, 그 주인은 바로 자신이 아니던가. 

  생이 어찌 매 순간 달콤하기만 하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욕설하는 남자의 행동은 한동안 이어진다. 그의 모습을 보며 문득, 성공한 이들의 생을 떠올린다. 그들의 성공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리라. 거듭된 실패에도 무너지지 않은 삶에는 비움과 채움의 고통스러운 과정이 잠재한다. 성공의 고지에 올랐던 이의 실패는 더욱 일어서기 쉽지 않으리라. 과거 화려했던 삶을 과감히 벗어나 처음보다 갑절의 노력과 인내를 감수하지 않는다면, 어찌 다시 일어설 수 있으랴. 땅의 옷이 자신을 지키고자 오히려 목숨과도 같은 수분을 배출하는 과정도 그와 같다.

  사진 속 ‘땅의 옷’을 자세히 살펴본다. 사람보다 오랜 생을 살아왔을 모습이지만, 어디에도 교만함이나 과한 치장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저 남자의 삶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땅의 옷이 생명수를 기꺼이 비워내는 고통을 감수했듯 그 또한, 지난한 시간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기를 바라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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