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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시간 925 우아한 그녀

슈베르트를 들으며 미리 봄

by eunring

느리게 게으름이라도 피우듯이

울적하면서도 깊고 풍부한 감성으로

귓전을 스쳐가는 소리에

우두커니 멍 때리기를 멈추고

잠시 귀를 기울입니다


'노투르노'라는 애칭을 가진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는

아다지오 딘악장으로 이루어져

쓸쓸한 만큼 깊숙이 아름다워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우아하고 느린 걸음으로

슬픔을 밟고 오는 봄을 닮았습니다


친구랑 그랬거든요

계절의 끄트머리는 왠지 슬프다~

하루가 저무는 황혼 무렵이 그렇듯

겨울이 기우는 이즈음도

왠지 고즈넉하고 구슬프다

얼음이 녹아 눈물로 흘러서인가~


그렇군요 겨울의 끄트머리에서

느리게 오는 봄은 우아한 그녀라서

종종걸음으로 서두르지 않습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설렘으로

머뭇거리는 한 걸음 또 한 걸음이

다급하거나 조급해서는 안 되니까요


금방이라도 눈비가 내릴 듯

날씨 따라 기분도 꾸무럭해서

따뜻한 커피 마시러 나선다는

사랑스러운 친구의 문자에 이어

봄맞이 나서려고 겨울 먼지 털어내듯

머리 염색 곱게 하고 온다는

다정한 친구의 문자가 이어집니다


안녕하니?

나도 안녕해

우리 함께 안녕하자~


짤막한 답문자를 날리고는

슈베르트의 소곤거림에 귀를 기울입니다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완성되어

그가 이 세상을 떠나 별이 된 후에야

출판된 작품이라는 Notturno는

우아미 가득한 바이올린의 선율로 시작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느리게 다가서는

봄날과 잘 어울립니다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우아한 그녀 봄날에게

미리 환영 인사를 건넵니다


차분한 걸음으로

천천히 오는 너 환영해

그러나 너무 느린 걸음으로

머뭇거리지는 말아 줘

오다가 바람에 부대끼면 좀 어때

볼 빨간 소녀의 모습일 테니

더 사랑스러울 거야


설레는 잰걸음으로 오다가

발 삐끗 넘어지면 또 어때

보송한 봄날의 흙이

가뿐히 너를 안아줄 거고

넘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다시 첫걸음을 내딛으면 되니까

시작하는 걸음마다 망설이지 말고

눈부신 설렘으로 다가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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