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879 새콤바삭 그녀에게
커피 친구 감귤칩
겨울이 제철인 감귤들이 지천인데
싱싱 탱글한 감귤을 앞에 두고
왜 하필 감귤칩이냐 물으신다면
이유는 없어요
그냥 맛이 궁금해서~
보름쯤을 내리 금식에
한 달쯤 부드러운 하얀 맛 한정
그리고 한 계절을 내내
빨간 맛과 거리를 두던 그 무렵
잔머리 요리조리 굴려가며
진지하게 생각한 게 있거든요
슈퍼 J도 아니면서 먹방 계획을 짠~
나중에 맛있는 거
이것저것 많이 찾아 먹으리라
많이 먹으려면 조금씩 먹으리라
조금씩 많은 종류를 먹을 거니까
이왕이면 새롭고 좋은 것으로 찾아
야금야금 부지런히 먹으리라
물 한 모금 밥 한 숟가락도
금쪽이라 생각하며 아끼듯이
감사히 먹으리라
그래서 싱싱 감귤 곁에 두고
궁금 감귤칩을 먹다 보니
감귤의 주홍빛 닮은 그녀가 떠오릅니다
밝고 따사롭고 환하고 명랑한 색이
잘 어울리는 그녀가 의외로
푸른 옷도 잘 어울려서
그때 생각했어요
싱싱 감귤이 열풍에 들볶이고 마구 시달려
간이고 쓸개고 미련 없이 다 내어주어야
비로소 새콤바삭 감귤칩이 되듯이
활짝 웃는 그녀의 입가에도
그녀 나름의 진한 아픔이 맺혀 있고
그 아픔이 속에서 으깨지고 뭉그러져
환한 웃음이 되어 나오는 거라고~
누구에게나 저 깊은 속 어딘가에
응축된 짙푸른 슬픔이 있는 것이니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아픔이 있고
길고 긴 수다로도 풀 수 없는
책 한 권의 사연이 있고
웃음 뒤에 가려진 눈물도 있다고~
아주 오래전 그때 나는
지금보다 더 연약한 겁쟁이라서
혼자 외출이 무리였어요
집을 나서는 게 겁이 나고 두려워서
외출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민폐를 끼쳐야 했죠
누군가 함께 가주어야 하고
집 앞에서 차에 태워 갔다가
집 앞에 툭 떨궈주어야
그나마 짧은 외출이 가능해서
약속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했어요
집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집에 돌아오기까지
머릿속에서 복잡 미묘하게
불안과 혼란으로 얽히고설키던 시절
그녀가 지나는 길도 아니고
더구나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빙 돌고 돌아 집 근처에 내려주어서
많이 고마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을
웃으며 선뜻 해주었거든요
만일이란 가정을 좋아하지 않으나
만일 다음 생이 내게 온다면
한 번쯤은 그녀를 내 차에 태우고
편안히 그녀의 집 앞까지
모셔드리고 싶다는
참 쓸데없는 상상을 하다가
피식 웃고 맙니다
기다려도
나중은 오지 않고
부질없는 생각일 뿐
만일은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