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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ring Jun 15. 2024

초록의 시간 778 금빛 반짝 행운라떼

그리고 조촐한 행복에 관하여

오래전 단오 무렵 받은 거라

십 년도 훨씬 더 지난

접이부채 하나를 아직도

귀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종이부채인데

눈이 가고 마음이 머무르는

연초록 클로버가

곱게 새겨져 있거든요


게으른 나는

부채를 부치는 것도 번거로워

부채바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여름이 오면 습관처럼  부채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닙니다


세월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인지

부채에도 구멍이 뚫렸어요

살살 다루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스르륵 종이가 찢어지고

부챗살만 남을 것 같아서

더 귀하게 모시는 중입니다


평범한 부채 하나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윽이 애정하는 까닭은

부채에 수놓아진 클로버가

진한 초록이 아닌 연초록이고

네 잎 클로버가 아닌

세 잎 클로버이기 때문입니다


클로버는 당연히 진한 초록에

행운을 꾹꾹 눌러 담은

네 잎 클로버일 거라고 생각하다가

가만 들여다보니 세 잎이었어요

조촐한 행복의 세 이파리가

나를 웃게 합니다


그런 거죠

행운은 금빛 반짝 빛나지만

행복은 잔잔히 미소 머금어요

그래서 유난스럽지 않고

드러나지 않으며

더 오래갑니다


단오 무렵 낡은 행복 부채를 들고

늘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앉아

갓 구워낸 바삭하고 고소한 크루아상과

라떼아트 멋진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는

조촐한 행복의 향기에 젖어

금빛으로 활짝 웃습니다


조용하고 착하고

한결같은 바리스타 청년이

몽그르르 부드러운 거품 우유로

잔잔히 그려준 하트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네 잎 클로버가

실속 없이 크지 않으면서도

야무지게 사랑스러워

마음에 쏙 듭니다


행운라떼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작아서 더 귀한 네 잎 클로버가

잔잔히 그리고 묵묵

금빛 반짝 행운처럼

머물러주어 고마웠어요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행운보다 행복

잔잔히 함께 하는 행복이 더 좋지만

커피 한 잔 마시는 동안 머무르는

행운은 무턱대고 길지 않아

더욱 향기롭습니다


그럼요 행운은~

좋은 사람들과 행운라떼 한 잔

웃으며 마실 동안만큼

딱 그만큼이면

이미 충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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