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778 금빛 반짝 행운라떼
그리고 조촐한 행복에 관하여
오래전 단오 무렵 받은 거라
십 년도 훨씬 더 지난
접이부채 하나를 아직도
귀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평범한 종이부채인데
눈이 가고 마음이 머무르는
연초록 클로버가
곱게 새겨져 있거든요
게으른 나는
부채를 부치는 것도 번거로워
부채바람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여름이 오면 습관처럼 그 부채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닙니다
세월이 스치고 지나간 흔적인지
부채에도 구멍이 뚫렸어요
살살 다루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스르륵 종이가 찢어지고
부챗살만 남을 것 같아서
더 귀하게 모시는 중입니다
평범한 부채 하나를
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윽이 애정하는 까닭은
부채에 수놓아진 클로버가
진한 초록이 아닌 연초록이고
네 잎 클로버가 아닌
세 잎 클로버이기 때문입니다
클로버는 당연히 진한 초록에
행운을 꾹꾹 눌러 담은
네 잎 클로버일 거라고 생각하다가
가만 들여다보니 세 잎이었어요
조촐한 행복의 세 이파리가
나를 웃게 합니다
그런 거죠
행운은 금빛 반짝 빛나지만
행복은 잔잔히 미소 머금어요
그래서 유난스럽지 않고
드러나지 않으며
더 오래갑니다
단오 무렵 낡은 행복 부채를 들고
늘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앉아
갓 구워낸 바삭하고 고소한 크루아상과
라떼아트 멋진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는
조촐한 행복의 향기에 젖어
금빛으로 활짝 웃습니다
조용하고 착하고
한결같은 바리스타 청년이
몽그르르 부드러운 거품 우유로
잔잔히 그려준 하트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네 잎 클로버가
실속 없이 크지 않으면서도
야무지게 사랑스러워
마음에 쏙 듭니다
행운라떼 한 잔을 다 마실 때까지
작아서 더 귀한 네 잎 클로버가
잔잔히 그리고 묵묵히
금빛 반짝 행운처럼
머물러주어 고마웠어요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행운보다 행복
잔잔히 함께 하는 행복이 더 좋지만
커피 한 잔 마시는 동안 머무르는
행운은 무턱대고 길지 않아
더욱 향기롭습니다
그럼요 행운은~
좋은 사람들과 행운라떼 한 잔
웃으며 마실 동안만큼
딱 그만큼이면
이미 충분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