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시간 783 서랍에서 만난 우정
송이송이 추억송이
서랍을 뒤적이다 보면
뜻밖의 선물을 만나곤 합니다
오늘도 나는 서랍을 뒤적이다가
추억의 노랑 꽃송이들을 만납니다
언제였을까요
아프기 전이니 한참 전입니다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니
그보다도 한참 오래전입니다
동그란 얼굴이 사랑스러운 친구님이
지구 반 바퀴 너머 먼 나라로 떠난다기에
함께 만나 밥 먹고 차를 마시던
애틋한 환송 모임이었죠
그때가 가을이었을까요
계절은 분명히 기억나지 않으나
담장 옆 국화꽃 송이송이
쌉싸름 향기로운 가을 느낌이었어요
아쉬운 작별의 계절은
국화 향기 그윽한 계절인
가을이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국화꽃차를 마셨습니다
기억의 오류더라도
괜찮습니다
늘 마시던 대로
커피를 마셨더라도
국화꽃 향기 그윽했으니
서툰 솜씨로 파우치에 송이송이
작별의 꽃송이를 그렸을 거예요
그 무렵 애틋한 마음과는 달리
다시 보니 새삼스럽게
글씨가 참 서툴다는 생각을 하며
손바닥만 한 파우치를 잘 챙겨둡니다
먼 나라에서 날개 달고 돌아와
다시 우리와 함께 하는 친구님을
반갑게 만나게 될 어느 날
친구님이 즐겨 마시는
진하고 향기로운 에스프레소와 함께
잊지 말고 전해야겠어요
그때 왜 건네지 않고
서랍에 간직해 두었을까요
어쩌면 서툰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아니면 다시 만남을 기약하려는
아쉬운 마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시절 우리는
못난이 글씨처럼 서툴었으나
미끄러지듯 저만치 달아나는
세월의 꼬리를 잡으며 나이 들고
우정도 함께 나이를 먹었어요
너와 나 그리고 우리
나이 든 만큼 철이 들었을까요
그림자 늘어진 세월의 흔적만큼
속이 깊어졌을까요
글쎄요
글씨처럼 여전히 서툴고
나이만큼 철들지 않고
세월만큼 깊숙해지지 않았더라도
우정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우리의 리즈시절은
이미 과거형이지만
제2의 리즈시절은
지금부터 현재진행형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