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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Jun 05. 2024

남편과의 이민, 가정불화

경쟁심많은 남편, 의사소통기술, 트로피아들

오늘은 제 채널의 주독자층인 성인 남성들에 맞춰 제 반쪽, 제 남편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제 이야기만 하고 싶은데 결혼생활을 하는 이상 배우자의 안위또한 나의 웰빙항목에 들어가고, 그 비중이 상당하니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별책부록쯤으로 생각하고 쓰려 했는데, 쓰고 보니 오늘 이 이야기가 아마도 이 매거진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캐나다에서 충분히 치과 의사가 되겠다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남편과 이민자로서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저의 의견 중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매거진 초기에 말했던 부분을 기억하시나요? 그 부분에 대한 답을 드리려 합니다.


초반에 MLB 캐나다 갤거리에서 정보수집 중, 치대를 가겠다, 약대를 가겠다며 사이언스 페컬티에 입학했던 남편은, 캐나다 고등학교 학점을 우수한 성적으로 이수해 입학 초반 자신감이 넘쳤었지만, 막상 캐나다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와보니 몰아치는 학업의 양과 점수를 내야한다는 압박에 못 이겨 결국 사이언스 패컬티를 2학기만에 관두고 Art로 가게 됩니다. 첫 두학기를 다닌다는건, 사이언스 과목은 시리얼로 연계되어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전 과목을 특정 점수이상 이수해야 그 다음 학기 과목을 이수할 수 있습니다, 3학기 째 과목을 이수할 만큼의 성적이 나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말합니다. 설사 성적이 나왔더라도 본인 스스로 공부가 자신과 맞지 않음을 파악했다면 이 시기에 많은 아이들 (약 50%의 페컬티 입학자)이 이 길이 내 길이 아니다, 하고 뛰쳐 나옴을 말합니다. 아닌 것을 알았다면, 최대한 빨리 탈출하는 것이 이익입니다.


옆에서 쓱 보니, 한국에서 정치외교 전공자가 캐나다에 와서 영어로 과학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이 대해 지레 겁을 먹은 모양이고, 겁을 먹을만도 한 것이 내 것으로 만들어야할 컨텐츠가 어마무지 말도 안되게 많습니다. 생물은 그럭저럭 외우면 되니 하겠는데, 대학 화학이 싫다는 것이 반전이었습니다. 난 외우는 것보다는 이해하고 문제푸는 화학이 백천배 낫던데, 사실 일반 사이언스 과정의 꽃은 화학입니다. 화학이 싫으면 사이언스에서의 삶이 정말 힘들어집니다. 이 또한 전과목 A+즉 만점은 먹고 들어가야, 나와 마찬가지로 만점 받은 나머지 수십트럭만큼*캐나다 각지역의 학교 학생수들 /1년 의 사람들과 합격자가 한학교에 단 50명 뿐인 치대 입시라는 경쟁에 도전이라도 해볼 기회가 주어집니다.  일단 성적이라는 이 관문을 통과해야 입학시험과 면접의 기회를 얻게 되죠. 약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과목이 싫어지면 점수를 잘 받는것은 또 다시 백천배 고되니 승산없는 게임에서는 재빨리 탈출하는 게 답이죠.


캐나다에서 프로페셔널 스쿨가는게 무슨 정보경쟁이며, 좋은 동네탓이며, 공립 또는 사립 초중고등학교 탓이니, 미실력자도 충분히 갈수 있다는 헛소문을 퍼트려 희망고문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없어져야합니다. 자신이 경험하지도 않았으면서, 헛바람만 들도록 거짓정보를 퍼뜨리고 다니는 것에 대해, 무책임함에 대한 지각이 없는 것이 화가 납니다. 네이버 블로그든 브런치든 유튜브든 MLB 불펜이든 캐갤이든 해외이민 홍보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은 그 죗값으로 철창보내야한다고 봅니다. 순진한 내 남편에게 벌금내시던가요. 무심코 던진 돌덩이에 연못안 개구리 맞아 죽습니다. 포스팅 으로 돈버시는 거 좋지만 남의 인생 담보로 잡아 장사하시는 거 정말 아닙니다.  옛날에도 이정도인데 정보량 급증한 요즘은 진주발견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캐나다 대학 사이언스에서는 실험과 토론과 보고서와 시험들에 부딪히는 것, 조별과제 안에서의 참여에 대한 불안을 피하려 아트에 갔는데, 그 곳에서는 갑작스런 토론이 열려 매번 원어민안에서 자괴감에 빠져 시무룩해 하는 남편을 보고 살고 있습니다. 어린애들 말빨에 얼마나 터지고 왔는지 아침수업에 갔다온 남편이 밤11시가 되어도 멘붕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합니다. 한 몇일 충격이 가다가 숨돌릴새도 없이 또 멘붕사건이 터지고 터지고 하겠죠.


아무리 그 안에서 살아남는 생존전략을 말해봐야 남편 귀에는 제 말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K대디의 꼴난 존심은 10살가까이 어린 부인의 말로 뚫기에 역부족이니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저같이 열심히 사는 부인을 옆에두면 경쟁심많은 남자는 정말 힘들어집니다. 이겨야하는데 별 것도 아닌거 같은애 (상대관점에서) 를 감당을 못하는 자기자신에 대해 자괴감이 든다니 지나치게 경쟁적인 성향은 제 풀에 제가 지친다는 게 이거구나 알게됩니다. 저희 부부는 이렇게 평행선을 긋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상적이지 않아도 이 또한 부부관계이며 인생이라 인정합니다.


절대 너는 못났고 나는 잘났다 뜻이 아닙니다. 나도 나 나름의 인생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고 있는데, 옆사람이 자괴감에 화풀이하는거 감당하며 살아간다 생각해보시죠. 시험때마다 내 책상에 와서 소리지르고 저보다 더 불안해했었습니다. 내가 이번 시험도 잘 봤을까봐, 나 자신보다도 먼저 홈페이지에 업로드 된 내 점수를 나보다 먼저 확인하는 남편에게서 불편함을 느낍니다. 내 시험결과를 보는것은 경쟁심많은 남편한테 트라우마 입니다. 그걸 감당하며 전 4년을 꼬박 참아가며 버텼습니다. 아들들도 돌보면서요.



오해마세요. 절대 제 남편은 특별한 못남없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단지 한국사회 장남으로서 트로피아들도 커, 같은 편인 내 아내의 성공조차 눈뜨고 인정할수가 없어 이를 바득바득 갈게 되는것같습니다. 자신이 특별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의 가치가 없다 상처받으며 컸거든요. 저희 시어머니 말투 들어보시면 진짜 헉 소리 나와요. 약점을 드러내는 이상 경쟁에서 도태된다는 무시무시한 경쟁심과 생존본능이 만들어낸 방어능력이 공격성입니다. 현재 이민을 계획하시거나 진행중이시라면, 미래에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이 감정의 충돌을 경험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에게서 약간의 비대범함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지만, 저 또한 약간 저 사람이 느낄 감정에 대해 무심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제가 한국에서의 일생동안 여자학교만 쭈욱 나와 남자의 경쟁심이나 승부욕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었으니, 남자의 맨얼굴을 사회에서보다 먼저 만났다, 실습의 기회로 삼죠.



 사람은 저와 달리 한국에서의 경력이 꽤 있는 사람이라(저보다 약 10살 많습니다.) 새 직업을 가져도 기존 경력을 살리느니 못한 연봉으로 시작하게 되는데, 그걸 감내하면서까지 새로운 전공과 직업을 선택해야한다는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처음에 결혼할 때에도 남편은 해외 본사, 서울에 지사로 있는 외국계기업에서 일하던 사람입니다. 당연히 업무언어가 영어이고, 회사안에서도 첫번째는 아니지만 외국에서 어린시절부터 쭉 살던 형 다음 두번째로 영어를 깔끔하게 쓰던 사람입니다.(본인피셜). SKY 출신에 여기까지 말하면 캐나다에서 영어로 고생할 일 없을것 같죠? 그건 업무를 맨몸만이 아닌 컴퓨터로 했다는 것을 전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아무리 한국에서 외고를 졸업하고,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도 현지 원어민과의 즉각적인 대화 앞에서는 만 5세수준의 영어실력을 구사하게 되는 것이 허다한 것이 이민 생활입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5살 아이들이 포진해있는 캐나다 킨더가든에 가셔서 수다쟁이 원어민 아이들 하는 말을 잘 한번 들어보세요. 정말 말을 기똥차게 잘합니다.  그들은 핑퐁이 살짝 가능하다 기대해보지만 어느 순간 이후부터는 질문자의 의도를 깊게 이해하고 알맞는 대답을 주기보다 자기관점에 취해 장황하고 창의적인 대답을 합니다. 누구랑 비슷하죠? 6살이 되면 어떻게 되는줄 아세요? 하하. 거기서 절망감을 느끼시고, 노력해도 쉽지 않을 수 있음을,  외국에서의 생활에 대해, 제 2언어를 배우는 것에 대해, 보다 현실적일 필요가 있음을 반드시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Fake it then make it 이라지만 애초에 원어민이 되지 못할것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기본영어만 써도 되는 일을 선택하시는 것도 정신건강을 위해 상당히 지혜로운 처세입니다. 굳이 내 능력치를 최대한 남에게 어필하며 살 필요없잖습니까.


물론 토플이나 아이엘츠 시험은 꽤 괜찮게 보겠죠. 영단어도 놀라울정도로 많이 알고요. 그러나 기본적인 상황에 맞는 표현력은 많이 연습하고 많이 "읽고", "들어야" 늘게 됩니다. 그리고 당연히 "말해야" 합니다.


대본이나 컨텐츠의 제한이 없는 즉각적이고 깊이있는 프리토킹의 경우에,  대화의 깊이가 깊어질 수록, 그리고 같은 이민자가 아니라 원어민들 사이에 놓였을 경우, 유능함을 내세워야하는 필드에서의 경우, 나의 실력을 영어라는 웨건위에 올리고 드러내는것이 그리 쉬운일이 아닙니다. 꿀 먹은 벙어리 같은 나를 발견하고, 뇌정지, 심정지 상태에 놓인 것 같은 나를 발견해도 놀라지 마세요. 정상입니다. 꼭 직업선택에 있어서, 공부 선택에 있어서 신중하시기 바랍니다.


그도 당연한 것이, 캐나다 원어민인 이들 입장에서는 어린시절부터 함께 놀며 어울리며 실수하고 장난치며 함께 1, 2 level부터 빌드업시킨 영어실력이지만, 한국인인 우리입장에서는 대학 또는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수준으로 처음부터 lev.100을 팍 찍어야하는거니 원어민에 비해 훨씬 어렵게 느껴질거라는 건 어느정도 이해는 갑니다만 몇몇 케이스의 경우에는 사실 영어 이전에 더 본질적이고 심오한 문제가 숨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아 어디부터 시작해야할지



타고난 성향이 있게 마련이지만 결국 또 가정 환경입니다.

억압적이고 지시적이며 일방향적인 부모에게서 자란 사람은 자연스럽게 어린시절부터 불통의 능력을 키우며 성장하게 됩니다. 감정의 수용과 의사소통을 갈구하며 부모에게 매달려보았지만 자녀와의 의사소통을 철저하게 부정한 부모에게서 자라면, 스스로 살기위해 사람은 어린시절부터 마음의 문을 닫고, 퍼부어대는 부모로 부터 자신을 방어하기위해 남의 말을 귀기울이지않으며, 컴퓨터만 쳐다보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습관이 됩니다. 나를 방어하느라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나 매끄러운 개입, 의사소통능력을 촘촘히 엮지 못한 채로 큰 성인, 내 나라에서 의무고육받고 마더텅쓰며 한국어를 구사할 때에는 문제점이 별로 드러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쎈 캐로서 한국 사회생활에는 유리할 수 있어요.


문제는 이민 후 입니다. 가뜩이나 외국어라 심정지 뇌정지오기 십상인데, 이미 고장난 개인의 의사소통 매커니즘을 이미 오래전부터 몸에 체화해서 엮어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영국 으로 오기 때문에, 남의 말을 듣지 않아 외국어를 배울 수가 없습니다. 언어를 배우는것은 사람의 문화와 체화된 습성을 들이마시는 것인데, 이미 망가진 의사소통 매커니즘으로는 소통과 허용보다는 방어기능이 발동되어 마치 바이러스 대하듯 영어를 상종하게 됩니다.


영어를 듣기 싫어 영어사용자가 있는 곳을 피하고 집에서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으려한다는 것, 자신의 문제를 부정할 수록 영어가 점점 극복 불가능의 대상이 되어버려 이민생활이 극심히 어려워진다는 것.


더 큰 문제는 가족이 있을 경우에 아이들에게 불통을 대물림한다는 것. 배우자야 다른 가정에서 살았기에 상대 배우자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조금 불편하면 되지만 (이 또한 오랜시간 지속되면 사실 좀 위험합니다. 의지할 사람 하나 없는 타국에서 의사소통 패턴이 왜곡된 배우자만을 지속적으로 상대하다보면 자연적으로 인지의 왜곡이 발생할 수 있으며, 우울증을 겪게 될 수 있고, 삶의 질이 수직낙하할 수 있습니다. 국제결혼에서도 이런 케이스를 종종 봅니다.) 소통자체를 부모로 부터 배워야하는 어린아이들은 한국말 사회인 우리집에서 뿐만 아니라 영어말 사회인 밖에 나가서도 아빠 또는 엄마의 불통 패턴이 되물림된 채로 겨우 버티는 사회 관계만을 맺게 될지도 모릅니다.


어릴 때(초등3이전) 이민을 왔는데도 애들이 영어를 잘 못배운다 생각하시는 분들은 집안에서 본인과 배우자의 의사소통 패턴을 곰곰히 생각해보시면 의외에 복병이 숨어있음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비단 꼰대 한국 5060 또는 그 이상의 아저씨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젊은 남자도 젊은 여자 중에서도 의사소통을 해보면 상당히 불통인 경우들이 있더라구요.


결혼할 때 성격을 봐야한다고 하잖아요. 그 중에서도 의사소통 능력을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민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지, 실력은 얼마나되는지보다 사실 더 중요한건, 의사소통 채널이 자기자신과 타인에게 열려있는가, 개방형인가, 타인의 욕구와 입장을 경청하고적절하게 지지와 동의를 할 수 있는가, 다소 듣기에 씁쓸한 상대방의 말의 의도가 나를 이해하기 위한 것인가, 비난하기 위한것인가를 객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나  입니다.



한국에 계신 내 부모님은 어떤 사람인가, 나와의 의사소통 패턴이 어떠했나 내 이야기를 가감없이 분석이나 비판없이 그 자체로서 수용해 주셨던 분인가... 생각해보시는거 도움 많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사실 성인이 되어 이민을 해도 목표로 한 취업과 어학실력 향상에 거의 대부분 성공적이더라구요.


저희 부부는 이 부분이 우리 관계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둘다 건전하고 둘다 성실하고 둘다 나쁜 짓 안하는 사람들인데, 우리 각각의 가정에서의 문제들은 서로를 힘들게 했기에 이민생활이 고통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해놓았으니 사람이 이 새로운 관점에 대해 머리에서 프로세싱되는 시간이 3일정도 걸릴테고, 그것을 바꾸기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그래도 열린자세로 노력해봐야죠.


남보기 부끄러워 사실상 말들은 안하지만, 역이민의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가정내 불화입니다. 이민 생활에서는 정말 부부간 관계가 행복 결정의 최종 변수거든요.



고집센 남편과 살며 깨달은 점은, 맨손으로 숟가락을 꺾으려고 하면 절대 꺾을 수 없지만, 숟가락이 이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으면 어느새 숟가락은 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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