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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Jun 12. 2024

캐나다 학교에는 여왕벌 선생님이 있다.

캐나다이민 또는 조기 유학이 아이들에게 행복만을 줄까

유부녀 이민생활의 최대 변수는 남편이며, 아이들 입니다. 저 자신이 어떻게 사느냐가 50퍼센트를 차지한다면, 나머지 50은 내가 챙겨야 할 내 아이들을 어떻게 돌보아주어야할까 입니다. 성인된 남편이야 나보다 사회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유리한 입장이니 엄마입장에서 약자인 내 아이들의 안위를 살피고 도와주려 노력하는 것은 미덕을 뛰어넘는 의무이자 본능 입니다.


나의 큰 아이는 섬세한 성향의 아이입니다. 키우면서도 느꼈지만,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 확신이 들었던 부분입니다. 처음 한국에서 18개월에 비행기를 타고 벤쿠버공항까지 올 때에도 단 한숨도 자지 않고 11시간동안 줄기차게 울었던 아이덕에 저는 비행기 자리에 착석이라는 것을 할 수 없었고, 아이를 안고 비행기 안에서 계속 버티고 있던 악몽이 떠오릅니다. 비즈니스에서 갖고 온 치즈랑 과일을 먹으니 이제야 감각이 조금 편안해졌는지 기절하고 나가 떨어진 아이. 엄마 불쌍하다고 다른 승객들은 다들 난리였는데 그 시간에도 남들보기 쪽팔린다며 모르는척하고 눈 감고 자리에 앉아 제발 자기좀 살려달라며 애원하고, 사람들이 모를거라는 착각속에서 남의 식구인척하던 남편이 떠오르네요. 그때의 빡침이 올라옵니다. 캐나다에 도착해서도 한동안 너무 아팠던 우리 큰 아이는 임시숙소에 있는동안 코감기와 건조로 고생을 좀 했었죠. 분수토도 여러번하고 소아과와 응급실 다니면서 그렇게 캐나다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저희가 있던 콘도에서 처음만난 히터시스템이 한국의 그것과 달라 한동안 피부가 뻑뻑할만큼 건조해서 적응하느라 애 많이 먹었네요. 타주로 이동한 후 알게 된 사실은 히터문제가 아니라 원래 그 주가 사람살기에 건조해 사막같았다는 겁니다.  머리 숱많은 저도 샤워후 두세번의 머리 흔들기만하면 1-2분안에 머리가 말랐고, 여름엔 누구든 강렬한 햇빛에 입술은 빠삭말라 보랏빛이었던 것이 기억나요.


이 아이가 학교를 들어간 후에도 적응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이 자체의 문제일 수 있다 생각해 이리 저리 검진을 받아보고 하다못해 지능검사까지 받아보았지만 모두다 좋은 수준이었고, 몇몇 교사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이 아이의 학교생활 난이도를 높였습니다. 지금이야,


애들을 상대하다보니 선생님아이화 되셨나? 또는 사람들간의 관계가 힘든 안되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속에 숨어서 겨우 사회 생활하는 것이라며 그것이 맞든 틀리든 외부의 시각에서 대상을 해석할 수 있겠지만, 이민 초기에 이상한 교사를 만나면 내가 내 아이가 된 것 처럼 그 사람의 위력에 압도당해 괴롭게 마련입니다.


내 아이는 사람간의 의사소통에서 미묘한 뉘앙스를 모두 다 파악하는 아이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말뿐만 아니라 행동과 슬깃 스치는 눈빛이나 숨소리등을 토대로 저 사람의 기분이나 생각, 자신에 대한 호의, 불호의 등을 파악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잘 합니다. 아니, 이 부분은 내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이 갖고 태어나는 본능적 감각이라 생각합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때의 일 입니다. 그당시 아이의 담임교사,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백인 여 교사 하나가 유난히도 화려한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학부모 상담시간에 참석한 것을 보고, 와 화사하게 입었네, 예쁘다 생각을 가졌던 것도 잠시, 문제의 발단이 될 줄 인식이나 했겠습니까. 자신의 임신과 휴직소식을 알리는 것에서 모자라 그런 자신을 위해 선물을 준 학부모의 목록을 전체 학부모 이메일계정을 활용해 선물 준 아이 이름 한명 한명 부르며 칭찬과 감사를 치하하시며 모두에게 공지하지를 않나, 학교 행사때 학부모와 모든 교사들 모인 자리에서 자신의 반 아이들을 통솔하기는커녕 혼자 피크닉 의자를 집에서 가져와 누워서 선글라스를 끼고 소설책을 보고, 자신이 집에서 데려온 1살배기딸은 자신의 클래스 아이들에게 돌보게 하고 말입니다. 웃긴것은 EA나 옆의 선생님들도 그 사람을 비난하기는 커녕 여왕벌모시듯 하니, 왜 저러고들 노나 알아보니 남편이 글쎄 변호사라죠. 여러분 여기도 인간사는 사회입니다. 캐네디언은 직업의 귀천없다 한국사람만 유난히 속되게 직업의 귀천이니 일류 이류따진다 비싼동네 고급차에 집착한다 하지만 이곳은 더하면 더했지 덜한 곳이 아닙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향하는 마음이 없다고 느낀다는 제 아이는 선생님에게 복종하는 다른 어른들과 다르게 반기를 듭니다. 특별한 반항이 아니라, 아닌것은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했던 것 뿐인데, 다른 아이가 어지른 레고를 무심코 옆에 있던 제 아이보고 무신경하게 빨리 정리하라고 했답니다, 수업을 진행하기 위한 자신을 위해서이죠. 제 아이는 자신이 한 것이 아니니 못하겠다고 했구요. 초등 2학년 아이가 감히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고 자신을 창피하게 했다는 죄값으로 내 아이는 그 핑크 드레스 선생님에게 미운털을 박히게 됩니다. 주변 시녀들도 합세해서 내 아이를 간접적으로 괴롭힙니다. 내 아이가 아니라 말해도, 몰래카메라가 다 찍고 있고, 니가 맞을 일 없다고 대응하며, 그 핑크 드레스 편을 들어주는데 급급합니다. 아이1대 어른 최소 3(여왕벌과 두 시녀)의 싸움.


나중에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 한 해 두 해 먼저 그 선생님을 경험한 엄마들에게 들어보니, 그 핑크드레스가 매 해마다 드라마를 찍고 다니는 것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 오랫동안 그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은 '핑크드레스'반을 기피하며, 다른 선생님에게 배정되게 해달라 요청하고 다니는 반면, 현지 사정모르는 이민자들이나 언제든 털고가고 이상하지 않은 신규진입자들을 자연스럽게 핑크 드레스반에 배정하게 되어 뒤탈을 최소화하니  학교 행정 담당자들이 일을 잘 하는 죄입니다.




이 곳에서 학교생활을 한 경험도 보호자가 될 경험도 없어 데어터가 워낙없는, 이민 온지 채 5-6년밖에 안된, 이제 갓 캐나다 시민권 받은 엄빠 입장에서 아이에게 이런 학교 안 힘든 사정을 들으면, 정작 문제가 어디에 있다는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됩니다. 해외생활이라는 거, 여행처럼 깃털처럼 오가는 것 아닙니다. 초보 딱지 떼려면 생각보다 시간도 훨씬 오래걸리고 난이도 훨씬 더 높은 일입니다.


사실 아이보다는 부모인 우리를 싫어하나?

인종차별을 당한건가?

우리아이의 이름이 한국이름이라서 그런가?

애가 선생님말을 잘 안 듣나?

ADHD 또는 그밖의 발달상의 어려움이 있나?


애를 지켜줘야할 엄마가 완전히 특정 사건에 압도 당하는거죠.


오늘은 무슨 일 없었어? 엄마한테 말을 해봐, 말을 해야 엄마가 도와줄수가 있어.. 하며 아이를 지켜주려 닥달하게 됩니다. 내가 직접 보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 아이의 말만 듣고 애매하게 장면을 연출하며, 애가 무슨일을 당했고, 잘못했는지에 대해 머릿속으로 상황을 추정하는 이 속타고, 잔인한 상황을 한국에서가 아닌 외국에서 겪는다는 건 사람을 하루하루 고통속에 몰아세우고, 허망하게 만들고, 무력하게 만듭니다. 아이 학교일 외에 다른 일들은 감히 내 머릿속에 침범할 수 없을만큼 무엇이 문제일까에 대해 고민하고 고통받게 됩니다. 그것이 악마같은 상대의 의도였을까요?


워낙에 경험이 없는 상태이다보니 현지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또한 생기게 됩니다. 아 백인 여자들은 너무 쇼잉에 집착해, 무디해, 드라마를 만들어.


지금까지 경험한 여러 백인 여자 선생님들이 모두 다 맘에 들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여자처럼 첫만남에 사람을 홀딱 반하게 해 자기편으로 우선 끌어 들이려 하며, 유치하며, 드라마를 만들려고하는 유형은 이 사람 단 한명뿐이었습니다.


죄 짓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그 사람에게 반항했고 정의로왔다는 명목으로 길티트립을 그 해 동안 자처하게 된 꼴이 됩니다. 여기사람들은 한국인과 다른점이, 자신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등 유무형의 상처를 준 상대에게 반드시 복수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정확하게 얼마간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은근한 눈칫밥주기부터 시작해서 주변인 포섭을 통한 왕따, 대놓고 배재하기, 사람을 완벽하게 피를 말립니다. 그것을 당하며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하고, 죄책감과 수치심을 바탕으로 다시는 자신에 대한 괴씸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마음고난의 여정을 보내는 것을 길티드립이라 합니다. 잔인합니다.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 사이에서도 생활문화입니다. 이때 정말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는 것이 아니고, 사회적 약자나 인맥이 없는 사람, 마음이 약하거나, 혹은 다수에 대해 동조하지 않는 정의로운 사람이 주타겟이 됩니다. 중, 고등학생때나 할법한 행동을 삼십대 중반 성인들은 물론 사십 오십대가 되어도 변함없이 하고 사는 미성숙한 또는 정신이상자가 간혹 존재합니다.


학교구조라는것이 참 가혹한 것이 싫은 사람과도 선생님과 제자간의 사이로 좋든 싫든 1년간 마주쳐야한다는 거죠. 신규이민자인 우리가 유리할 리가 한개도 없습니다. 특별한 증거가 없는데 무슨 아동학대이고, 인종차별이라고 고소를 하겠습니까. 정말정말 골치아프고 애매한 상황이 아이들을 상대로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이민자의 삶을 더욱 어렵게 합니다. 결국 그 사람은 또 다른 임신으로 학교를 한 3개월 나오게 되고, 아들을 낳아야한다는 강력한 시부모의 압박에 딸만 지금까지 연년생으로 4명입니다. 친정엄마는 이 여자 몸종살고 있고요. 한국여자라고요? 루마니아 출신 캐내디언 입니다, 다행히 정신 상태 건강한 정상적인 대체교사를 만나게 되어 2학년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쭉 선생님을 한다면, 우리는 전학을 감행했을 겁니다. 만일 자신이 정의를 선택했다는 명목으로 무지막지하게 큰 성인이라는 대상으로부터 가혹한 대우를 받게 되면, 그 아이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선택에 순간에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요? 그 사람에게 복종하기로 한 시녀들은 커가는 동안 어떤 경험을 하며 성장했던 것일까요?


애매한 지점에 대해 나는 해당교사에게 이메일로 항의도 해 보았고, 교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과 면담도 해보았지만, 모두 다 뚫린 하늘에 혼자 퍼붓는 메아리 같은 일 이었습니다. 아, 이쯤에서 알아두시면 좋을 것이, 한국은 교사가 잘못해 교장이나 교감이 그것을 외부에서 전해 들으면, 무슨일인가 김선생! 하며 남이 보든 보지 않는 곳에서든 부하직원을 꾸짖지만, 이곳 캐나다문화에서는 서로가 동료로서 철통보안 철통수비로 일관합니다. 서로서로를 내몸과 같이 직업현장에서만큼은 외부의 컴플레인으로부터 철저하게 서로서로를 보호해줍니다. 이런분위기 안에서, 아무리 이성적이고 공손하게 사실을 바탕으로 쓴 메일에도 나만 미친년 취급당하기 십상인 것이, 완벽한 증거도 없고, 시녀들의 이름도 정확하게 모르는데, 새로운 이 사회의 관례가 무엇인지, 피해자가 될 내 아이를 살릴 방법은 무엇인지 도무지 답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위에 쓴 길티트립문화라도 내가 알았었더라면, 소통가능했었을텐데. 그래서 항상 피해자는 이곳 문화에 대한 이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신규로 한정하는 것 같습니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한 통속, 사돈에 팔촌으로 연결된 사람들 같았고, 나만 홀로 따돌려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더욱이 나는 이때, 그 어떤 책임도 회피하며 대항할 줄 모르는 남편의 눈감음을 통해 내가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님을 절감하게 됩니다. 물론, 그가 나와 같은 신규이민자로서 옳은 방법으로 대항하는 것이 무엇인 줄 모르는 부분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때에는 솔직하게 내가 힘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둥, 나도 너처럼 잘 모른다는 둥 솔직한 감정표현과 의논을 원하는 것 뿐인데, 자신이 다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허세란 허세로 스스로를 위장하는 비진실함이 싫다는 것입니다. 자기같으면 조져버릴텐데 라지만, 정작 앞에가서는 자신의 일이 아니랍니다. 핑크드레스는 이미 인간의 본능과 비겁함을 간파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미씨유에스에이라는 미국, 캐나다 이주 여성 사이트의 속풀이 게시판에 종종 이 같은 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봐도 저만의 일이나 그렇게 드문일이 아니라는 점은 알 수 있습니다. 참고하실만한 글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이민생활의 어느 시점이 지나면 이 곳 글들과 분위기가 플러스보다는 마이너스가 크니, 이민온지 몇 십년이 지나도 별로 사회적 상황이 달라지지 못한 사람들 또한 한숨쉬며 생존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민초기 10년 정도가 흐른 후에는 특정공간의 정보보다는 자신만의 루트로 자기삶을 사시는 것 추천드립니다. 그들의 속풀이를 듣고 있으면 물귀신에 홀린듯 그들의 고통속으로 빨려들어가 행복이 망쳐지기 십상이거든요.



아이가 이제야 고통에서 벗어났는지 몇 년후가 지난 나중에 제게 이야기합니다.


핑크드레스는 내 아이를 비롯한 반 아이들에게,


너의 부모들은 이미 다 내편이야, 일을 크게 만들고 싶어? 부모에게 말하면 일을 크게 만드는 행동인데, 그럼 너와 우리 모두는 곤란해 질거야. 빨리 내 말들어. 


라는 말을 주로 했답니다.

이 말을 선생님이 했다고, 아이가 내게 학기 중에 얘기 했으면 얼마나 따지기 명확했을까요.

상황이 다 지나가 별탈 없을거같으니 그제서야 아이는 자세한 내막에 대해 입을 엽니다.


아들, 그 선생님이 틀렸어. 세상에 모든 가족은 아이들 편이야. 그 사람이 잘못된거야. 어른 몇 명이 아이 하나를 대상으로 편 먹고 무섭게 협박하는건 치사하고 옳지 못한 행동이야



죄책감을 기반으로한 협박인지도 모르고 반 아이들과의 갈등 상황에서 본인이 상대로 부터 힘을 뺏고,  상황을 종결시키려 습관적으로 뱉는 말... 이게 어른이 아이와의 대응에서 취할 행동입니까?


학년이 바뀌면 그만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학교와 교사에 대한 이미지를 망쳐버린 초등 2학년 이민자 어린이는 어떻게 그 후에 학교생활을 하게될까요? 학교가 즐겁고 유쾌한 곳일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큰 아들은 아첨과 아부가 살짝 필요할지도 모르는 사회생활보다는 정의라는 크고 무거운 진리를 선택하는 아이라는 것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진중함만큼 받는 상처도 큽니다. 적당히 가짜 자아로 자기자신을 지키고 살았더라면, 아이는 악당을 만나도 순간순간을 모면하며 자신을 지킬 수 있었겠죠. 선생님이 데려온 아이를 안아주고 업어주고 사랑해줬던 같은 반 친구처럼요. 왜 하필 타겟이 되어서 이 고생을 하는지 맘속으로 상황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미움 받더라도 아닌건 아니라 말하는 정의를 택했습니다. 내 아들의 순수함이 자랑스러웠고, 원석만큼은 보존하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사실은 본인도 속으로 무서웠던지 그 경험을 해가 지나도 누차 말하는 아이에게 '네가 맞다' 라고 말하며 확신을 주었습니다. 제 큰 아들은 작은 아들처럼 생일 파티란 파티는 족족 초대되거나, 이 사람이 없으면 교실이 안돌아가는 Good example 또는 학급인기스타는 아닙니다.하하 그렇다고 오해는 마세요. 3-4 명의 단짝친구들과 일년에 3,4번의 생일 파티와 각종 놀이데이트를 킨더부터 7학년인 지금까지 쭈욱 즐기고 있습니다. 선생님들께 인기는 없어도, 지지를 받지 못해도, 언제나 옳은 것이 무엇인 줄 알고, 뚝심있게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강한 사람입니다. 순수하고 내성적인 아이입니다. 아이가 강해질수 있도록 나는 보탬이 되기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부모가 어느정도 자신감 있고, 사회기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가 알아야 마음이 든든할 테니까요. 내 부모도 약점이 있는 한 사람이지만,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임을 내 아이의 근육세포가 알아야 내 아이도 스스로에 자부심이 생긴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 이니까요. 아이를 통한 몇몇 위기는 그런 아이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고, 앞으로도 내 아이를 응원해주는 몇 안되는 사람으로서 저는 그렇게 살 것입니다.



지금이야 어느 미숙한 교사의 유치한 소행이다. 라고 판단할 수 있을만큼이 된 나에 감사하지만, 이 때에는 나또한 미성년자처럼 초기이민자로서 압도되어 힘들었던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새 사회에서의 새로운 삶은, 이미 성년이 된 나를 어린이, 청소년기시절의 마음 상태로 다시 끌어내리는, 무력함과 소외감, 무능감,약함을 마주하게 하는 크나 큰 작업입니다.





다른 매거진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아이 혼자 조기유학을 보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삶의 여러 선택지에서 최선을 선택하신 일이겠지만, 아무리 가디언이 있고 학교 교사가 있다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 자신을 지키며 돈만주면 스스로를 지키며 잘 살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아이는 아이이며, 이나라에서든 저나라에서든 보호자가 반드시 정말 반드시 필요합니다. 부모가 아닌 다른 대리 보호자와의 갈등은 어떻게 대처할 것이며, 그것을 아이 관점상 투명하게 어른에게 보고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미 마음의 상처를 받은 후일 테고, 이 상처는 부모의 계속되는 돌봄과 지지, 좋은 성인과의 수백배의 깊은 만남을 통해서만 극복 가능한데, 아이를 조기유학 보낸 부모가 그 모든것을 감당 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생각은 잘 못하겠습니다. 상처 받기는 쉽지만 그것을 덧나지 않게 아물도록 보살펴주는 일은 수백배의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부모가 먼저 건강해야하구요.


저희애는 아직 허술해서 빵부스러기 흘리면서 먹듯 감정을 노출하지만, 좀 더 나이가 있고 야무진 아이들은 어려움을 겪어도 부모가 뭔가 도와주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때문에 경험을 꼭꼭 숨깁니다. 그리고 나서 저 처럼 이렇게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슬슬 말하는거죠. 그 안에 느낄 생각과 사고 및 성격의 왜곡, 기분나쁨까지도 염두해두시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주 드문 일이 아니고 오히려 흔한 일에 가깝습니다.



 한집에서 같은 부모에게 태어난 아이들 사이에서도 사회생활 적응도는 가지가지입니다. 나라를 옮긴것이 아니라 우리애들의 경우엔 이 곳에서 애초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니 그냥 타고난 사회성인거죠.


작은애는 큰애와 3살 차이나는 남자애인데 요놈은 아주 물건입니다. 눈치가 빠삭한데다가 행간을 잘 읽고 자기 살궁리를 예리하디 예리하게 합디다. 어릴땐 이 작은 아이가 큰 형아한테 다칠까 둘이 놀때 조마조마 했는데, 학교에 보내놓으니 애가 첫날부터 친구들을 주울줄 몰고 다닙니다. 학교 엄마 말을 들어보니 제 아들이 남들이 못푸는 문제들을 다 풀고 앉아있고 아이들이 내 아들에게 와서 묻고 간답니다. 그래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쪽지를 킨더때부터 한움큼씩 받아왔던아이입니다. 성적표도 전과목 4점에 학교생활은 물론 한글학교에서도 자원봉사하는 형누나들에게 똑똑하다 애교많다 인기만점 귀염둥이입니다.


솔직히 말해 초등학생이 건강하면 되지 공부잘하는거 뭐 그리 대수이겠습니까. 이 아이들을 위해 가이딩을 잘 해줘야할 것같아 여러가지 활동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학교 선생님에게 좋은 본보기로 뽑히고 칭찬을 계속듣는 아이를보며 나의 어린시절을 봅니다. 사람들의 인정보다 더 중요한건 너 자신이라며 매일 방향설정하고 있습니다.


운입니다. 선생님과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노력으로 극복할 성질의 것이 아님을 압니다. 그리고 큰 아이를 이 곳에서 키운 경험으로 작은아이를 보다 편하게 서포트 해줄 수 있는 제 안에서 크니 작은애도 가볍고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뭐가되고 싶냐 묻자, 아이스크림가게 사장이 될거랍니다. 트럭 드라이버로서 아이스크림 창고를 개조해 아이스크림만 먹고 매일 게임만 하며 살거라고요. 화장실 가는것도 귀찮고 밥먹는것도 귀찮으니 자신은 누워서 아이스크림만 먹고 게임만 하며 살거라는데 망나니도 이런 망나니가 없습니다. 쾌락에 젖어 스스로를 소진하며 사는 자기주도성을 실천하며 살거라는데 귀여운 그의 삶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길요.


1년전까지 매일만들며놀던 유튜브에 올릴 동영상 만들기도 이제 아빠가 하도 놀려 귀찮답니다. 우린 귀여워서 자꾸 틀어보거든요. 누워서 엄마가 제 이마 쓸어주는 손바닥에 기대어 엄마가 읽어주는 책 듣는것이 제일 재미있다는 우리 작은 아들, 우리집 다롱이는 제 웃음입니다. 첫째인 우리 세명에게 없는 이 아이의 천진함에 오늘도 내 눈은 초승달이 됩니다.




이민자로서 초기에 정착하는 시간은 이민온지 1년 되었으면 1살짜리 꼬마가, 5살되었으면 5살짜리 꼬마가 성인들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 과 비슷합니다.  언어도, 문화도, 사회적 기반도 그 어떤것도 해당사회에서 인생을 출발한 사람이라는 사회적 표준에 맞춰가야한다는 생각때문이죠. 나 뿐만 아니라 상대또한 나의 약함을 알기에, 배려를 해 주기도 하지만, 자신도 사회속에서 살아야하는 1인분의 인간으로서 다급할 때에는 약자를 우선순위에서 배재시키는 것이 잔인한 현실입니다. 교실안의 많은 아이들 중, 부모가 컴플레인 할 수 있고, 사회적으로 자신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상대에게 에너지를 초집약하는 사람에게 우리처럼 이민 초기집안의 자녀들은 무의식중에 보이지 않는 그림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음을 경험하며, 없는 사람 잊혀진 아이가 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물론, 그 부분을 의식적으로 고려해 배려해주시고, 한번 더 신경써주시는 참된 교사, 사회구성원들도 있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맘써주심에 감사하며, 존경해야하는, 내가 만나는 행운임을 배웠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나만 무시당하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그 교실속에서 피해 당하고 있는 사람이 나 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과정속에서 아이들 보호자로서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나의 능력과 사회적응도가 어른 대 꼬마만큼 어림도 없을만큼이라 애를 적절히 보호할 수 없다는 참담한 죄책감이며, 관계 안에서의 무력감, 우울, 패배감, 절망, 분노, 슬픔 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을 데리고 이민을 하시겠습니까?


그때의 일을 5년이상 흐른 지금 느낀다면 지금의 나는 그때와 같은 감정을 경험할까요? 이미 모든 관계에서 힘을 발휘하고 승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내 나라인들 몇명이나 있겠냐, 막막하고 비참할 때가 한두번이냐, 하는 사회의 쓰디쓴 진실을 아는 지금이지만 그래도 아이의 일이라면 마음 아픈건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삼십살이 막 된, 어린 나는  지금보다 땐땐했기때문에 타오르는 분노의 에너지와 아픔을 역으로 승화시켜 나의 삶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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