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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Jun 26. 2024

결국에 약을 시작했고, 또 끝냈다.

만날만 한 사람끼리 만나서 하는 것이 결혼인데, 한쪽만 욕하는 건 아닌듯

결혼생활은 상대와 나의 단점을 서서히 드러내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이야기는 현재부터 약 5년정도 전 이야기임을 분명히 합니다.

제가 저희 관계에서 벌어지는 부부 말다툼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한국의 문화와 정서상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의 장남들 중, 혹은 그 이전 출생자 중,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제 남편과 같은 특성을 띄고 있는 사람이 소수가 아니며, 그로인한 부부간 말다툼또한 당연한 수순일 수 있기에 말할 수 있는, 국내에서는 예상하지 못하지만 해외에 와서 살다보면 길어야 몇 년, 짧으면 몇 달내에 여타변수들에 의해 벌어질 수 있는, 아주아주 일반적일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민생활내내 같이 사는 마누라 때문에 힘들어하던 남편은, 아니 옆에 사는 사람이 자극제가 되어 자기자신을 괴롭히는 스스로 때문에 힘들어 하던 남편은, 알아서 주치의를 만나고, 자신의 증상을 하나씩 하나씩 풀어놓게 되었습니다. 영어로 심리상태를 묘사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라 남편은 저를 통해 주치의와 접견하기를 원했으나,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편의 의도가 저로 인해 왜곡될 수 있으며, 남편이 설사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자연스럽게 저 또는 남편에 의한 자가검열의 가능성 때문이었습니다. 말이 좋아 한번만 도와주는 것이지, 이 이슈로 전문가들을 만날 때 마다, 계속 나의 중간자 역할이 요구될 것을 우려하여,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미흡하든 유려하든 자기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의사에게 직접 전달할 수 있도록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저희남편, 각종 영어시험점수 최상위권으로서, 한국적 기준에서 영어를 첫 이민부터 잘 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어로 하는 심리묘사라는...감이 오시나요?


춘기 이전의 아이들이 있는 부모로서, 분명한 원인에서 시작된 분의 부부 말다툼 만큼은 불필요하게 벌이고 싶지 않았네요.


입장에서는 우리가 이민생활 내내 싸우는 원인이 분명했습니다. 남편의 외적, 내적 결벽증세.


트로피아들, 케이장남으로 큰 남편이 누가뭐라지 않아도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밖으로 드러내는 우월감 뒤에 숨겨놓은 열등감을 스스로 인식하고, 그것을 내려놓아야 계속해서 손을 닦아 스스로를 편안하게 하는 습관을 없앨 수 있을 것인데, 스스로의 문제를 인식하지 않고, 손닦는 습관만 갖고 결벽증이네 뭐네 하며 외부로 보여지는 행동적 특성에 대해서만 문제시하고 있으니, 뿌리가 되는 강박적인 성향과 그 뿌리의 원인을 캐내지 못하여, 스스로와 주변사람들을 스무살 이후에 평생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인만 강박적이라면 상관이 없는데, 그 밑에서 크고 있는 아이들의 성격에 문제가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배우자로서 문제제기를 한 두번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회생활이 가능한 사람이냐구요? 이런사람은 집단에 없으면 안되는 인재중의 인재이었을 겁니다. 실수를 스스로 용납하지 않으니, 인성적인 면이나 업무적인 면에서 매사에 완벽으로 일관했을테고, 그것도 이삼년이지 남보다 몇배로 공을 들이니 스스로 번아웃을 겪고 이민을 온 것이었으니까요. 자기자신에게 왜곡되게 엄격한 만큼, 남에게도 마이크로로, 왜곡된 잣대로 누가 뭐하나 실수하는 것을 용납하지를 못합니다. 비아냥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무방비상태의 누구라도 정신적으로 피폐해 질 지경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성격도 이 사람을 자극하는데 큰 몫했을 겁니다. 남편이 누군가를 자신만의 옳고 그름이 분명한 강박적 기준에서 비아냥거리면 대상이 무엇이든, 어떠한 요소든 그냥 듣고 흘리고 넘어가주면 되는데, 그렇게 행동하는 남편에 대해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들며, 마치 상대를 변호해주려 애를 썼습니다.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말이죠. 꼭 남편의 비난대상이 내가 아니더라도 상대에 대한 비난을 마누라인 나에게 퍼붓고 있으면, 비난은 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받게 되는거니까, 나에게도 비슷한 종류의 심리적 대미지가 갑니다. 그것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고자 안간힘을 썼다면 저의 자기방어일까요.


제 브런치북들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탐독하고 계시던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저는 가족 사정상 잊혀진 아이로 가정에서 성장했는데, 그런 사람이니만큼, 어떤 면에서는 철저하게 자신을 단두리하는 상대의 모습에서 묘한 안정감을 느끼고, 이 사람과 결혼생활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도 잘하든 못하든 나를 구속하지 않고, 뭔 짓을 해도 무방한, 그래서 불안한 아이로 컸다면, 다소 성격적으로 부정적이라 불편하지만, 그래서 자신이 관여해야하는 것이든 하지 말아야하는 것이든 통제안에 두려고 하는 상대에게서 어린시절에 느끼지 못했던 소속감이나 바깥세상으로부터의 보호를 왜곡된 차원에서나마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날만 한 사람들 끼리 만나는 거지, 절대로 부부관계에서 한쪽만이 잘못이 있는 관계는 없다는 것이 저의 솔직한 생각입니다.




내가 나의 어린시절 아픔에서 벗어나 나 자신에 대한 또 우리 관계의 형성 원인에 대한 매타인지가 가능해질 때 즈음에, 현지 대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하니, 남편은 내가 자신을 떠날 채비중이라고 생각하고, 서둘러 저로서는 생각치도 않았던 병원을 예약하고, 자기자신의 상태에 대해 검진을 받게 됩니다. 일단 전문가에게 자신을 보여 이상이 있으면 고치면 되고, 정상이라면 무시하고 그냥 살면 되니까요. 여름철에도 손이 건조해져 허옇게 올라올만큼 기분이 좋지 않을 때마다 손을 비누로 벅벅 닦아대는 자기자신에 대해 말하며, 전문의도 만나보고 여러가지 치료방법에 대한 설명을 얻게 된 남편은, 전문의의 지시에 따라 처방약을 먹게 되기도 했고, 여러가지 치료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기도 하며, 남편도 저 처럼 자신에 대해 이해한다는 것에 접근하게 됩니다.


한국도 점점 인식이 바뀌고 있다지만, 북미에서야말로 정신과 약을 먹는 것이 창피한 일이 아닙니다. 대학 교수님들 중에서도 자신의 정신과적 문제때문에 약을 바꾸게 되어 휴강하거나 온라인 강의로 오프라인을 대체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아프면, 그것을 빨리 받아들이고, 문명의 이기를 최대한 이기적으로 활용해야 맞는 것이 이 나라들의 현재 관습입니다. 육체의 질환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다보니 정신과적 질환에 대해서는 약물오남용이 넘치고 있는 것도 이 곳의 현실입니다. 남의 시선이나 인식을 신경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와 가족의 안위를 생각하는 것이 중심이 되는 사회입니다.(한마디로 제약회사의 힘이 센거죠. 얼마나 선전을 해 대고 뿌리고 다녔으면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는 아이들이 caffeine, lysergic이니 메틸페니데이트이니 그런 전문 의약품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고 그렇겠습니까.) 이곳의 의료질에 대해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은데, 약만큼은 북미가 한국보다 나음을 솔직히 자부합니다. 남의 것 가져다가 복제하는 것이 아닌, 연구개발이 이루어지는 세계에서 거의 (유럽빼고)유일한 곳이니까요. 정신과 약물 뿐만 아니라, 항생제도 질이 월등히 좋습니다. 이곳도 철저한 자본주의 질서가 있는 제약분야이지만, 오리지널의 가짓수가 많으니 선택의 폭이 넓고, 보다 적게 제한된 효능위주로 약을 선택할 기회가 많아진다 정도의 장점이 될 것 같네요.


처방받은 약을 먹은 사람은 6개월, 1년단위로 훨씬 상태가 좋아집니다. 늘 기분이 더럽다고 말하던 사람이며, 그래서인지 세상을 보는 시각과 관점이 스스로에게 갇혀있다시피하던 사람인데, 기분이 평온한 상태가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있게 되니, Normal한 상태, 그러니까 디폴트값이 바뀌는 경험을 스스로 하게 되며, 아 그동안 내가 피곤하게 살았구나, 이런 생각을 갖게된 첫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의사에 지시에 의해 의약품을 지금부터 정확히 2년전에 중단하고도 단 한번도 남편은 이전과 같은 감정상태를 보이지 않으니, 치료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솔직히 집안 분위기라는 것이 있는 것이,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이 태어날 때부터 대학생 될 떄까지 함께 남편과 방을 썼던 남편의 외할머니이신 시어머니의 어머니 또한 항상 비관적이고 옆사람 달달 볶고 기분이 항상 좋지 않은 사람이셨거든요. 그러다보니 남편또한 기분나쁜 상태가 디폴트 값이었는데, 난생 처음 경험한 평온한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1980년대를 한국에서 보내신 분들을 모두 아시다시피, 경제발전이 한창이었고 모두들 돈버느라 바쁜 시대였을겁니다. 모두 서두르며, 부지런하게 사는 것과 비례해 얻는 것이 있었기에 열심히 살지 않으면 지는 것이었고, 그러는 동안 정작 보호가 필요한 어린 아이들의 가난해진 정서상태를 반작용으로서 갖게 되는 것이죠. 제가 제 자신과 남편의 예를 들어 설명하지만, 저희들은 스스로의 문제를 아니 오히려 나은 편이고, 본인이 불행한 것의 원인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그냥 두 눈 부릅뜨고 썩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분들도 많이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민을 오셔도, 그 마음 그대로이시라면 카운셀링과  정신과상담을 적극추천드립니다. 부모가 허락해준 적이 없어 느껴보지 못했던 정서적 평온감을 디폴트로 재탄생시키실 수 있습니다. 누군 대수롭지 않게, 행복하게 잘만 사는데, 한평생 한번도 평온감을 지속시켜보지 못하고, 혹은 한번도 느껴보지도 못하고, 불안하고 화나는 상태의 디폴트만 경험한 자기자신이 불쌍하단 생각이 든다면요.K 장남, K 장녀로 큰 자신의 과거상황만을 억울해 하지 마시고, 기본값을 바꾸는 노력이 가능함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운동치료를 병행하시고, 행동치료를 병행하시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약이 마법처럼 나를 고쳐주는것이 절대 아니고, 의사가 내 인생 주인도 아니고, 내 인생의 주인인 내가 나아지기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해야합니다. 바르고 풍요롭게 생각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스스로의 상처를 돌보고, 과거의 아픈 지점에 가 다시한번 인사하며 사건과 나의 생각, 감정을 분리시키는 작업을 하고, 과거에 나에게 상처주었던 사람과 상황에 대해 현실적인 재해석을 하고, 양서를 읽으며, 자신을 사람들 사이에서 단절하지 않고 관계를 극복방법을 배우고, 스스로를 사랑해주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다보면, 생각이 좋아지면서 몸도 좋아집니다.


모든 것의 복합이 효과를 만들어내었는지, 비알콜성 지방간을 앓고 있던 남편의 간이 정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커다란 원인 중 하나인 스트레스 요소를 근거부터 캐내어 없애었고, 남편의 부모님의 문제를 정면으로 인식하고, 그 안에서 상처입어 아직도 어린아이같은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였습니다, 거의 매일 일정수준이상 몸을 움직이고, 적절히 먹으니, 침묵의 장기 간또한 은은한 해피바이러스를 만들어내나봅니다. 프로바이오틱스를 먹고, 장이 건강해진 남편을 발견합니다. 모든 장내미생물은 사람의 세로토닌수치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죠. 그렇게 처방약의 도움 없이도, 편안해지고 다른사람을 품을 수 있는 인격으로 바뀐 남편을 발견합니다. 인격, 정말 인격장애라 생각할만큼 성질 더러운 인간이라 생각했던 사람인데, 모두다 미량의 세로토닌 호르몬 부족으로 인한 증상이었던 것입니다.



엄마의 편안한 포옹과 위로, 실수와 단점 수용, 그럼에도 불구하고 껴안아줌으로 몸이 편안하게 이완되는 느낌을 어린시절부터 배웠어야하는데, 이유가 어쨋든(어린아이로서의 권리를 철저히 유린당하고, 자기먹을건 의무적으로 어른들세상에서 노동을 통해 벌어야했던 어린시절, 어린시절의 상처 마주함과 흘려보내기, 포용하기 작업을 거치지 않은 상태의 ,1950년생 한국인 일반 성인) 스스로를 빛내주는 수단으로서만 큰아들을 인식하고, 정작 엄마로서 사랑해줄 줄은 모르는 엄마와의 어린시절경험으로 인해, 세로토닌 결핍상태로 쭉 각박하고 척박하게 살아왔던 남편의 마음밭이 아직도 생각만하면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물론 부모로서 잘잘못을 알려주고 따끔하게 바운더리를 그어주는 것 필요합니다. 하지만, 어린자식의 추후 독립을 위한 건강한 성장에의 목적이 아니라, 철저히 능력과 성과위주로, 남의 눈 위주로 잘잘못을 판단하고, 정작 혼내야할 기본소양에 대해서는 인내심을 여간 필요로아닌지라, 부모로서 모범을 보일 수가 없거니와 귀찮으니 니 알아서 해라 하며 방관하는 부분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나는 왜 상대의 문제점이나 아픔에 집착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던지 말던지 알아서하게 놔두지, 괴로우면 헤어지면 될 것이지, 상대의 문제점이 내게 영향을 주도록 스스로를 왜 상대에게 노출시키며 기회주는가...


이민생활중에는 부부가 서로 붙어있는 시간이 한국에서보다 몇배가 많습니다. 당연히 물리적 거리가 가깝고 시간이 기니 서로의 성격은 곧 서로의 삶의 질로 이어집니다. 또, 혼자만 손 부득부득 닦고, 또 스스로가 정한 손닦기 과정안에 실수나 실패가 있다면 조금전 비눗칠이 무색해도 또 닦고 하면 되는데, 자신에 대한 기준이 상대에게도 직간접적으로 이어지니 결벽증으로 의한 상대 배우자의 고통이라는거 진짜 안당해본사람은 모릅니다. 제가 컨디션이 괜찮을때에는 대충 무시하고 지나갈 수 있지만, 나도 컨디션이 별로 또는 그 이하일 때 상대방의 불편한 감정, 표정, 자기혐오적 발언을 마주하고 있으면, 나도 살아야겠으니 그런 불편한 상태의 남편에게 지적과 비난을 따발총으로 퍼부으며 나를 방어하겠죠.


상대에게 내 몸은 어떤 의미 일까, 혹시 내 몸 자체가, 내 존재 자체가 상대에게 박테리아덩어리로 보이는 것일까?쓰레기통 또는 쓰레기더미 취급받고 살고 있는데 혼자 모른채로 버티고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스스로에 대한 생각이 왜곡되는 느낌이 듭니다. 저 사람과의 결혼생활에서 상대의 결벽증에 맞춰진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정작  자신의기본적 존엄성은 지켜지고 있는가 의심스럽습니다. 자정기능이 부족하거나 본디 위태한 자존감을 갖고 있다면, 아니 내가 지금보다 쪼금만 더 용감했다면, 진즉 같이 못살겠다고 뛰쳐나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마음도 뭉개졌으면서, 내 밑으로 딸린, 아직도 어렸던, 내가 보호해주어야하는 저희 아이들 귀를 막으려고 이상한 연극으로 말다툼 상황을 마무리하는거 진짜 피곤합니다.  절대적으로 상대방 성향 잘 보고 같이 이민이 가능할지 결정하세요. 정작 결벽증을 앓고 있는 스스로는 어릴때부터의 디폴트값이라 그저그렇게 스스로를 버티고 있지만, 이런사람이 처음인 저는 결혼식날 부터 치료 때까지, 치료가 두렵다면 결혼지속내내 절대로 절대로 병적 증세에 대해 적응되고 익숙해지는게 없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겠지라는 방임을 할랑 마시구요.


에너지 질량 보존법칙, 총량 법칙에 의해, 내 마음속 저장창고의 상처가 엔극이 되고(N) 남편의 증세가 에스극(S)이 되어, 서로가 서로를 자동적으로 땡겼으니 어떡합니까. 가족구성원 각각의 문제를 이겨내려 늘 참고 이겨내려하며, 모든 가족구성원의 책임까지도 내가 짊어지려하던 나의 자세에, 의무는 무시하고 정작 권리는 남의 것까지 빼앗으려하는 사람이 짝꿍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봅니다. 별로 특별히 나을 것도 없을 것같은데, 무던하고 성실한 남편 만나서 이민생활을 편안하게 하는 주변 여자들을 보면 오히려 본인의 삶의 무게와 행복도가 상관관계가 없는 것을 보며 이건 상대도 상대지만, 내 삶의 자세에 조절기능이 고장난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대의 정신과적 증세를 참아주면 참아줄수록 나의 감정과 기분, 생각, 나의 권리는 묵살되는것이 당연해져, 바깥사람과의 상호작용또한 결혼 전의 쫄깃했던 내 모습과 달라진, 어딘지 모르게 쳐지고, 어딘지모르게 다 용인해주고, 어딘지 모르게 다.. 받아주고, 져주고 앉아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며, 상대방이 거울되어 내 작동 스위치가 고장난채 과부하가 걸려 오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책임감 없이 애같이 주변사람들이 차려주는 밥상 받아먹고 밥도 안해주고,  애는 가족에게 맡기고,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면서 월급은 고스란히 지가 다 뺏는, 그저 애 같이 사는 주변 여자들에게 향하는 분노, 정확히는 자신의 노모가 돌아가시기직전까지의 시어머니의 삶에 대한 저의 분노는, 나의 책임과 의무 스위치의 고장과 외부 사람에게로의 투사를 뜻하는 것임을 알게되었죠.


내가 뭔데 남들의 사는 방식을 비난하지?



카운셀러를 만나 내 경험과 마음을 분석하고, 행동으로 이전과 다름을 실천했습니다. 남편이 강박을 고치듯, 나의 책임과 권리 스위치의 오작동을 고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의무를 남편과 정확히 나누고, 남편이 내게 상처주는 것 뿐만 아니라, 잘해 주는 것에 대해서도 철저히 반영하는 삶을 살기 시작했고,  정확하게 내가 기분 나쁜 지점이 어디인지를 관계안에서 명확하게 스스로 인지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좋은 카운셀러를 만난 것도 있겠지만, 그에 더해 내 스스로를 탐독하려고 적극적으로 상담과 글쓰기에 임했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참고하면 좋을 도서들도 닥치는대로 마시며 세계의 기법들을 배웠고요. 망가진 레버때문에 외부 사람들 속에서 받을 수 있는 상처를 집에 있는 남편에게 받고, 적용하고 연습할 수 있으니 얼마나 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5년간의 노력끝에, 남편과 저는 책임과 권리에 균형을 찾았고, 부부관계 만족도 100점만점에 0점이 아닌 마이너스 40점에서 현재는 누가보든 말든 솔직히 플러스 85점정도는 되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 죽다 살아날만큼 노력해서 이만큼 끌어올린겁니다.


확실한건 내가 바뀌어야 상대가 바뀔 기회를 줄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바뀌지 않는 것은 상대에게 바뀔 기회를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5년간 별짓을 다했습니다. 실용적이고 도움되는 노력도 분명있었지만, 쓸데없이 상처주는 방향으로 관계를 끌고가기도 했었어요. 뻘짓거리말예요.


내 남편은 자폐스팩트럼일것이다.

내 남편은 나르시시스트일 것이다.

내 남편은 사이코패스일것이다.

내 남편은 일부러 권리를 강탈하려 일부러 어린여자랑 결혼한 것이다.

내 남편은 철저한 J다. 그럼에도 허술하고, 거기에 말도 안되는 집착이 있기에 이건 분명 자폐스펙트럼중에 속할것이다. 뭐 하나 잘하는 건 없기에 고기능은 아닐것이다.


뭐 이런식의 가정은, 처음엔 상대의 모호한 상태를 한 단어로  정의내릴 수 있는 것처럼 보여 명쾌함을 주는 것 같지만, 마치 어린시절 고급 종이 인형놀이의 여리한 곡선이 무색하게도 단칼로 한박에 직선으로 뽝! 형태도 공간도 무시한채 기면기고 미면 미다. 하는것이 서로에게 상처만 주고, 문제를 키워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문가도 아니면서 맘대로 정의내리고 상대를 병명으로 대하는 것도, 사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상처주는 일이라는 철저한 반성단계를 거쳤습니다. 무례했음을 인지했고, 상대를 더욱 엇나가게 하는 미련한 짓이었습니다. 사려깊지 못하고 무감한 행동이었음을 인정합니다.



다른분들의 글들을 읽다보면, 브런치 작가님들중에도, 헤어진 남편의 이별통보에 대해 남편이 혹시나 특정 병명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이었을까? 하는 글들이 보이던데, 같은 행위를 했던 사람으로서 절대로 사람을 상대로 하면 안되는 짓이라는 깨달음이 있었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물론, 아이를 잉태하고 양육해야하는 젊은 여자의 원천적 불안에 의한 행위임을 인지하며, 상대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닌 이해하고 싶은 동기임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나 때문에 상대가 얼마나 억울했을지, 정신과 전문의들 조차도 처방과 목적을 두어야하기에 하는 어쩔 수 없는 기능적 행위이지만, 절대로 그것이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전인적으로 살펴보아야하는 관점에의 반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만 생각하면, 미련한 마누라때문에 맘고생했을 여린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 뿐 입니다.




시간을 들여 내면을 치료하고 어린시절 상처를 졸업하니, 몸도 어른임을 받아들이게 되는지, 남편과의 생활이 가장 먼저 긍정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솔직히 입으로만 쌕드립 치고 다녔지, 거의 무감증에 가까웠었던 긴 권태롭고 따분했던 결혼생활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기도하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해주기도하고, 사실 결혼생활 15년차이고, 연애까지합하면 약 20년에 걸친 관계이지만, 저희 부부는 매일매일이 새롭고 파도파도 그칠 줄 모르는 관계의 묘미안에서 서로를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물론 여러가지형태로 결혼생활을 끝낼 수 있었고, 다 지난 얘기 굳이 어린시절 내면을 드러내고 마음아파하지 않고 그냥 덮고 없는 척, 돈벌이나 자기발전에 치중하며 또는 후세로 갚아주리라 하며 육아와 교육에 나 자신을 불살라가며 살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 수록, 누굴 만나도 같은 패턴을 반복해 같은 종류의 상처를 받을 나를 감당하는 것보다는, 원인을 캐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했고 나는 그 힘든 과정을 이민을 와서야 10여년에 걸쳐 비로소 해 내었네요.  


내면의 상처를 직면하고 졸업하고 거듭나며 보는 세상은 이전과 다른 빛깔이고 다른 온도입니다. 사람의 진심이 보이고 상처가 보입니다. 정말로 나쁜 사람은 극소수이고, 미숙하거나 상처 입은 사람들이었을 뿐이며, 그 중에서도 인종, 종교, 문화, 말투나 행동, 차림이나 직업, 사는 모양새에 상관없이 남과 자신을 진심으로 포용하고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눈에 띕니다.


건강하고 탄력적인 내 안의 스위치와 함께, 나도 그 아름답고 따뜻한 사람들 중 하나가 되진심으로 묵상하며 기도합니다.


*써놓고보니 하고싶은 말을 자세히 적으려면 정말 이 주제로 10편이 넘는 글을 써야하는데,  이 브런치 한 화안에 해당주제로 여러가지 이벤트를 마구 꾸겨넣은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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