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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Nov 02. 2024

서울을 처음 벗어난 건, 캐나다 이민 입니다.

서울 강남에 산다고 해도 부자는 언제나 극소수인데

미국에 사는 누군가는 자신이 '미국 가장 남단의 대도시'에 살고 있다고 '대도시'임을 강조한다만, 누군가가 내게 캐나다 어디에 살고 있다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캐나다 중부의 중소도시에 거주한다고 대답한다. 캐나다나 미국 아니 지구상 그 어떤 나라에 가봐도 서울과 같은 메가시티가 존재하지 않고, 특정 도시의 크기가 그 곳에 속한 인간의 삶의 질을 '양의 상관 또는 음의 상관 관계로 정의할 수 없기에'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십여년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나는, 도시 간 우열이 없고, 각자 자신이 편한 곳에서 편안하게 살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캐나다로 이민 온 한국의 모든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나와 같이 생각하며 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와서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왕왕 있어 놀란다. 아마도 한국에서 '서울'을 전국적으로 편력하는 한국 사람으로서의 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도 발현되기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그도 그럴것이 한국은 너무 서울에 집중 발전을 전략적으로 해놔서 도시 간, 지역 산간 간 차이가 크며, 서울과 비서울권으로 사람들을 나누고, 사람을 등급짓는 듯하는 문화가 있다. 지금은 이전과 달라졌을까 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살 곳을 꼽으라면 단연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 살고 있는 에서 서울로의 이전 즉, "서울"이라고 말한다.


서울 살면 모두 부자일까?그래서 모두 행복할까?

아니다. 서울 안에서도 특정 부자 동네가 있고, 특정 부자동네 안에 들어가더라도 정말 부자로 사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리고 부자동네가 아닌 서울의 다른 동네에도 부자가 존재하며, 서울이 아니라 지방 곳곳의 도시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은 단연 공존한다. 더 나아가, 지방 곳곳의 도서산간 지역에서도 모두 서울 강남의 부자보다 가난하기 때문에 그 곳에 산다고 할 수 없다.


모든 서울인이 모든 비서울인보다 가진 것이 많고, 행복하다 라는 정의는 틀렸다. 다만, 특정 시기에서부터 시작된, 대중들에게 서울을 향한 무한 존경과 선망의, 메스컴을 이용한 정치적 세뇌 없이는 지금 '서울'과 같은 무한 매가 시티는 만들어지지 않았을거라 확신한다.


단지 서울에 사는 것이 우선순위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딱 2가지 이다. 서울에 살고 싶지만, 직업이나 일자리 등 여타 사정으로 서울에 살지 않아서, 서울이라는 도시와 서울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 즉 과잉일반화를 깨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첫번째이고, 두번째로는 서울에 살지만 극소수의 부자들과 허세남녀들이 연출한 부자"모습"들 틈에서 버티며 사는 것에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비서울권에 사는 사람에게 투사시켜 자신의 열등의식을 전가하는 사람들 말이다.


서울에 속해있으면 중간 이상은 간다는, 세상에 매스컴에 의해 세뇌된 사고방식을 사실이라 믿은 채 상대적 빈곤을 면하지 못하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부정일 뿐이다.




캐나다에서도 아직 한국인의 사고방식, 살갗의 때 또는 테, 티라 표현한다, 을 벗지 못한 한인 이민자들 사이에서 비슷한 현상이 벌어진다. 예를 들어, 인도나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해 자신보다 낮게 생각하면서 막연히 백인에 대해 갖고 있는 환상 또한 그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인도나 아프리카 사람도 각양각색이고 캐나다 문화적응도가 모두 다르다.


물론, 그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국가에서 입은 때를 채 탈피하지 못하고 영국인을 섬기고 비영국인을 본인들 발끝도 못따라가는 사람들처럼 생각하는, 즉 자신 나라에서 입은 때를 못 벗은 경우의 한편, 기존 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 안에서도 무작정 색안경을 끼고 인도 아프리카는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라며 차별하는 한국인의 테를 띄는 경우도 있다.


이와 반대로, 모든 유러피안 백인 또한 원래 캐나다에 정착하고 사는 정보많고 언어가 능숙하며 정치력 탁월한 사람들이라 볼 수 없는데, 무작정 과잉일반화의 오류를 저질러 무작정 얼굴색이 하얀 그들을 무작정 경외하는건 모두다 한국인의 때를 벗지 못한, 모두다 평등하게 존중하고 받는 캐나다에서의 ""적응상태라는 뜻이다.


우리나 인도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 러시아 등 동서유럽이나 그 어떤 곳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오더라도, 각자 자신 국가에서 입은 특정 인종이나 민족에 대한 선입견을 인식하지 못한 채, 캐나다 생활을 하는 이민자 1세대들이 아주 많으며, 소도시보다는 인구유입이 빈번한 곳에 대거 몰린다. 대도시 거주자의 피셜이다.


캐나다에 산다는 건, 한 나라가 아니라 온 세계가 모여 있는 느낌이다.

온 세계에서 입고 온 태 대로 사는 사람들이 즐비한 곳이 캐나다 이민자 1세대의 모습이다.


모두 단 한번이라도 나 외의 다른 민족인 그들과 의미있는 관계를 맺고, 그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 그리고 나 이외에 다른 아시안을 대하는 방식, 얼굴색이 모두 다른 사람간에 대하는 방식을 유심히 관찰하고 반복적으로 지켜본다면, 대상이 누구이든 상대가 아니라 정작 자기자신이 과잉일반화라는 사고의 오류에 속해있음을 깨닫게 될거라는 생각이다. 선입관에서 언제쯤 벗어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깊이 있는 경험을 부지런히 많이 하고, 지능과 사고력, 공감능력이 높은 순으로 한국 티, 선입관, 과잉일반화 등에서 자유로워진다 확신하며, 대부분의 경우 이민 1세대보다는 2세대 그 이후가 되어야 '선입관 탈피'라는 목적을 획득하더라는 것이다.


"나는 선입견 없이 사람을 대해" 라는 말은 자신의 선입견을 부정하는 것일 뿐이다. 선입견으로부터의 진정한 탈피는, 본인의 선입견을 있는 그대로 '인식' 하는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까지 무의식적으로 스스로에게 한 짓이 부끄럽고 챙피해 낯짝조차 한참동안 벌겋게 달아오를정도로 쪽팔리고 화끈거리는것에서 깨달음의 시작 즉, 진짜 변태가 시작된다.


다양한 사람 사이에 섞여 경험을 하려면 언어가 통해야하는데, 언어가 섞이지 못하면, 깊이있는 경험을 할 수 없으니, 한국적 과잉 일반화, 한국인의 태, 티, 때에서 벗어나는 체험을 할 수가 없다. 국적이 바뀌어도 방안퉁수로 사는 것 이외엔 대안책이 없어진다. 소규모 영세사업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한국 사람 이외의 사람들과 깊이 있는 교류를 맺지 못하니 이민을 온지 한 참 후라도 변하지 않는 편향된 사고관, 선입견이 그대로 다음세대에 자연스레 전가되는 모습까지 띈다.


점점 좁아지는 인간관계, 나를 지지해줄 자원들, 풍성한 대인관계로 인한 서포트그룹을 갖지 못한채로 침체되어버린다. 대세에 몰리게 되면 정신건강과 육체건강을 잃게되는건 시간문제이며 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선입견이 문제이유는, 말과 생각 그리고 행동에는 힘이 있는지라, 사람은 자신이 사고하는 대로 주변에 사람이 모인다는 것이다. 나의 편협한 사고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좋아하는 사고방식일 테고, 자연스럽게 인종차별주의자들과 그 들의 편협한 행위들을 내 주변에 수용하게 되며, 그로 인해 내 인생은 점점 지지를 받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침몰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며, 심지어는 나의 사고방식이 자신들에게 독이 될 수 있다 판단한 같은 한국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든다. 모두를 공정하게 대하기에 나의 노력과 실력을 존경해줄 나를 위한 지지자들을 모두 떨구고, 나를 자신들보다 밑에 두기 원하는, 자신이 관계안에서 생득적 이유 하나만으로도 편안하게 특권을 누리기 원하는 사람들만을 주변에 모으게 되며, 그로 인해 내 인생은 참혹해 진다는 뜻이다. 스스로가 만든 인과 응보인 셈이다.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목을 직접 조르고 사는 셈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자신의 생각에 따른 독소 효과'가  스스로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과잉 일반화가 애먼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언어의 장벽이 되었든 여타 장벽이 되었든, 한국사람으로서의 편견에 사로잡혀 상대를 대하는 것에서 넘어서 판에 갇힌 일반화로 인해 같은 한국사람에게 천적이 되어버리는 결과를 말한다. 예를 들면, 자신의 한국산 백인우월주의에 찌들어있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무심코 백인은 동양인보다 위라고 생각하며, 한 자리에 있는 동양인을 오직 자신과 같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경외하는 백인 앞에서 참담히 밟아버리는 경우가 있다. 행위자는 정작 자신의 행위가 자신이 마실 물에 독을 타는 행위인 줄도 모른다. 한국에서 배워온 인종차별적 사고 방식과 행동이 정작 모두가 평등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며 어릴때부터 세뇌당하고 배우는 모든 인종의 캐네디언들에게 독을 껴얹는다. 그로 인해 기존에 평화롭던 다양한 인종안의 위계질서를 만들고, 자신이 뿌리고 다니는 똥으로 인해 정작 동양인인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는 참담한 결론을 낳는다.



과잉일반화는 피해의식의 핵이다.

피해의식의 핵심에는 언제나 과잉일반화가 숨어있다. 겉에서 판단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막상 안에 조금이라도 들어가보면 겉에서 보았을 때 들었던 나의 인식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데, 선무당이 사람잡는다고 안에 있는 사람은 정작 아무말 하지 않는데, 들어오지 못하고 주변만 서성히며 겉에 있는 사람들이 참 말들이 많다. 인터넷 이민 커뮤니티는 그런 사람들이 판을 친다.


내 삶의 목표가 뚜렷한 입장에서, 잡다한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것이 싫어 그런 곳에 자주 가지 않고 가끔가지만, 그곳에서 이슈가 되는 기사들, 떠도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역이든 종교든 인종이든 한 사회 자체이든, 그 어느 경우에건 막상 안에 들어와 보면 나의 예전 생각이 단순 편견에 지나지 않았음을, "아님"을 발견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캐나다 이민이 아니었더라면, 몰랐을거다.

성인이 된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와 내 부모님처럼 서울에 사는 것만이 정답이었다고 생각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대도시에 사는 것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선진국, 대도시, 부자동네, 명예로운 직업, 프레티지어스한 이웃들. 즉, 과잉 일반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 위한 불행을 참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특정 집단에 속하는 것이 답인 듯 맹목적으로 대상을 추종해서 얻는 것은 상대적 박탈감 뿐이라는 것이다. 스스로를 인정하는것이 의미없는 상대를 추앙해야할만큼, 베울점있는 상대를 찾아나서야할만큼, 그리 불편하고 고단한 일인가, 끝이 허무할 뿐이다.


이 매거진 제목처럼 좋은 동네 부자동네 속하면 자연스럽게 인생 에스컬레이터 탄다 생각하는 유형이 있다. 오류가 있다. 선망하는 동네 안에서 나만 발전하고 나만 계산하고 나만 얻는 것이 아니라, 내 쪽만 입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관계는 상대성이고 윈윈이어야 오랜기간 의미 있게 성립되고 유지된다는 사실 말이다. 내가 상대에게 줄 것이 없으면서, 무한한 기버의 아낌없는 원조를 바라는 근성은 상대가 먼저 눈치채고 역으로 유린할 뿐이다.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의 동정심을 얻는 것이 뭐 그리 좋은가. 설사 상대의 순수한 베품이라 할지라도 나는 자존심이 세서인지 그런식의 도움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속에 뭍혀 산다고 두루뭉술 동급이 되지 않는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왜냐하면, 바로 나와 같은 사람들은 매의 눈으로 그런 사람들을 판별하고 솎아내고 안팎으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정말 아낌없이 상대가 필요한 것들을 위해 순수하게 베풀더라도 상대가 나 또는 우리 집단의 선행이나 베품을 상습적으로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면 가차없이 마음을 자르기 때문이다.


까다롭다 생각할 수 있지만,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바라지 않고 나의 자존심과 부족한 나 그대로에 대한 긍지를 지키는 것이 눈에 보이는 상대의 호의를 얻는것보다 백만배 귀하다. 적어도 나에겐.


내게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고, 생각하고 변화될 기회를 끊임없이 주고, 자아와 사회적 성취가 발전할 수 있게 한 캐나다 이민에 대해 나는 현재 감사로 무장하고 있다.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하시기 위해 내려주시는 실패의 결과나 나를 사용함으로서 그의 뜻을 이루고자하는 성공의 순간 모두 결과의 색깔과 상관없이 공평하게 신의 가호가 함께 하였음을 가슴깊이 느낀다.


각국에서 입었던 옷을 그대로 걸친 사람들로 가득한, 정신없는 캐나다에서 잡다한 변수들을 이겨나가며, 자신만의 창의적이고 용감한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즐기고 또 극복하며 살고 계신 모든 한인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낸다.


캐나다 대도시에 기반을 두고 있는 대부분의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런 글을 올리면 강등되고 회원삭제되더군요.

결과적으로 이민자의 생활 등 이민 관련 커뮤니티나 카페들에 편향된 부분이 있다는 점을 꼭 어필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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