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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과 채찍 1 : 일상생활 편

육아책의 오류, 세상을 향한 맷집 기르기

by 후루츠캔디 Jan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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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아닌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난 일,  트라우마 치료 과정은 내가 솔직하고 깊게 임한 만큼 강렬했다. 확실히 사람은 차갑고 냉정한 '이성'적 수용단계에서 더 나아가, 더욱 연약해 금방이라도 생채기가 날, 꽃잎 같이 부드러운 가슴을 내고 상처와 마주해야것이 극복되는 것임을 알게되었다.


이제 그 고통은 인식되지 못해 나도 모르게 계속되는, 인생 속 줄줄이 연결된 막연한 괴로움이 아니라 내 인생의 한 스팟, 치료 과정의 특정 "단계"로 정의되며 일단락되었다.


카운셀러 선생님은, 나의 인지적 에너지를 신뢰하셔서, 나의 감정과 생각을 드라이빙 할 수 있는 질문만 던지셨고, 내 스스로 질문에 답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만 보셨다. 나에게 뚜렷한 인사이트를 제공해주지 않고, 스스로 답을 찾아 돌아오라고 무자비하게 야생에 나를 마구 풀어 던져놓는 선생님의 상담방법이 맘에 들었다. 다행히도 내게 아직 남은 인간에 대한 강력한 신뢰가 선생님에게도 닿아 우리 서로를 신뢰하기에 누릴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은 상담과정 중 어떠한 반작용도, 저항도 불러오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감정과 생각을 직면할 기회가 되었기에, 충분히 아파한 후에는 일상으로의 복귀가 자연스럽고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다.


실로 나는 사고 에너지가 강한, 회복탄력성 좋고, 명랑한 여자였다.







나의 부모 그러니까 내 이시대가 한국이 지독히도 가난한 때에 수많은 형제 속에서 성차별, 전쟁 직후 가난으로 인한 육체적 결핍을 경험한 세대라면, 모두가 눈코뜰 새 없이 바빴던 1980-90년대에 부모님의 맞벌이 속에서 성장한 우리들은 열심히 피땀흘려 수고하신 웃어른들 덕분에 사실 국가적 배고픔에서는 상당부분 자유로워졌지만, 그만큼 부모님의 시간과 정성이 고픈채로 어른이 된 부분이 있다.


바쁜 부모님의 삶의 모습에 익숙한 우리 8090들은,  딸, 열 아들 부럽지 않게 길러졌지만, 정작 자식을 낳으면 산후조리원이나 어린이집 등 많은 것을 아웃소싱하며, 아이와의 관계에 시간과 정성을 쏟는 데 '자동적으로' 인색한 경향이 있다. 이는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 개인의 무심함보다는 경제발전 속 바쁜 사회 분위기에서 성장한 환경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아웃소싱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자녀교육에 대한 주도권을 아웃소싱 문화에 빼앗긴 것에 누구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호갱님이나 갑질을 하자는 뜻이 아니다. 큰 목표에서부터 세부조정까지 전반을 조율하기 위해 부모와 자녀가 교육의 주체 즉, 인생 최종 책임자가 되어, 시간과 에너지 투입 당위성을 회복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교실이라는 자신의 영역에서 반 아이들에 대한 나름대로 의무를 다하고 계시는 선생님께 부모로서의 책임마저 전가할 것이 아니라, 가정교육, 자녀교육의 주체는 부모임을 인정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의무를 수행해야함을 말하고 싶다.  평소, 약간은 우리아이에게 무심한 듯한 아이의 선생님을 만나러 교실에 가기 전에 나 자신에게 먼저 묻자.


나는
가정에서 나의 아이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다했는가





60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은 노력한 만큼 돈이 되던 나라였다. 서울 중심의 집약적 경제발전 속에서, 가난을 벗어나 부를 쌓기 위해 밤낮으로 희생했던 부모 세대와 그들의 자녀인 우리 세대는, 경제적 풍요와 함께 심리적·정서적 결핍을 겪었다. 그 결과, 우리 아이들 역시 우리를 통해 이러한 결핍과 경제적 풍요의 부작용을 고스란히 물려받고 있다. 


캐나다라는 다민족국가에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출신 국가별 양육에 임하는 방향을 본다. 한국에 있을 때와 달리 의외로 부모 개개인의 차이라 여겨지는 것들이 잘 테가 나지 않으며, 국가별 부모의 아이에 대한 태도 그리고 부모의 교사에 대한 태도로 가름될 수 있음을 나 자신의 경험 그리고 아이의 킨더담임샘과 내가 지금까지 내 아이 둘을 9년 여간 캐나다 학교에 보내보며 생각한다.


 한국엄마들은 다른 나라 엄마들과 달리, 선생님께 아주 달콤하다. 캐나다에서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뿐만 아니라 각종 기념일 및 상담날에는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챙긴다. 이 부분에 대해 선생님들은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한편, 교권침해라 여기기도 한다. 폼은 달콤하다만 '내 아이를 잘 부탁드린다' 라는 교사를 컨트롤하고자 하는 마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양적 사고방식안에서는 개인의 한정된 에너지 상, 내 아이를 잘 봐달라는 말은 다른 아이에게로 갈 에너지를 내 아이에게 덧부어달라는 뜻으로 읽히는 데, 이는 교사의 자기결정권은 물론 타 어린이의 사랑받을 권한을 침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주는 사람은 가볍고 즐거운 마음의 선행이겠지만, 부모가 다른 문화권에서 살았거나, 아이를 '특별히' 챙겨주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경우에는 옆집 한국엄마의 극성이 연약한 상대 아이의 사랑받을 암묵적 권리를 빼앗는 결론을 낼 수 있음에 무감각함이 여실히 돋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안전과 보호의 욕구를 위해 타부모의 개입으로부터 거뜬히 나 지신을 지킬 수 있는 아이는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교육과정을 내놓으라며 토의하길 원하는 부모도 있고, 선생님의 질문이 없는 상황에서 다음학년 학급편성에 무작위로 개입하려는 부모도 있다. 물론 초등저학년 아이를 둔 부모로서의 불안과 최대한 내 아이를 지켜내야한다는 외국에서의 방어본능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의 행위들이 내 아이 뿐만 아니라 교실 전반 그리고 커뮤니티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 그리고 그 바탕에는 어떤 자신의 어린시절이 있었는지 들여보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한다고 느낀다.


우리가 어린시절 성장과정 중 겪었던 불안과 경쟁 스트레스가 내 아이의 선생님을 대하는 방식과 전혀 연관없다 볼 수 있을까?...(심지어 이에 숙달되어 '교사 개인을 위한 선물 목록을 미리 써 내는 등' 얌체같아진 동네와 교사도 캐나다 내에 있으니까 말이다)




어릴 때부터 독립적이어야 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여자가,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자신의 일상과 학교생활을 스스로 책임졌던 경험을 가진 채 엄마가 되어 그녀의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다면, 자연스럽게 아이들 역시 자율성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여타 부모의 도움 없이, 알아서 잘 해낼 것"이라 무의식중에 미루어 짐작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개인의 경험에 깊이 의존한 본능적인 반응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캔디는 뭐든 알아서 척척 잘해!


엄마가 내게 매일같이 뿜던 어구가 어린 나를 얼마나 불안하게 했는지, 내 삶을 무겁게 했는지, 엄마에 대한 원망을 키웠는지...다른사람은 몰라도 당사자인 나는 안다.


아빠로부터, 선생님들로부터 받은 사랑과 수용을 자칫 빼앗길까 울트라초특급 스피드로 어른처럼 살아야 했던 '으른아이' 캔디의 삶에서 설정된 디폴트값은, 그저 아이답게 행동하는 정상적인 어린 아이에 대해 어딘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끼도록 만들고 있었다. 잘못 지정된 이 디폴트값은 괴물이 되어 내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순수함을 가치를 파악하기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거시적 관점에서 사회적 배경과 그에 따른 문제를 인식하고, 미시적 관점에서 내 문제를 풀어나가기 시작하자, 초등 고학년을 막 지난 내 아이가 성장할수록 막연하게 나를 덮고 있던 육아의 구름이 홍해 갈리듯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내 안의 '내면아이', 가슴에 늘 품고 다니던 큰 딸을 어느정도 독립시키니 곧장 얼굴을 내밀며 '엄마, 메롱' 하며 아들들이 나타났다.


아직 저 두 녀석들이 내게 있다. 삶은 굴곡의 연속이라 했다. 그러니 누구나 어느시점에든 당면한 과제 속에서 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며, 우리가 흔히 기준점으로 삼는 '평온한, 무난한'상태의 삶이라는 건, 삶의 문제와 문제 사이에 있는 일종의 쉼표일 뿐, 지향점이 될 필요까지는 없는 것같다.


내가 현실에서 책임져야 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마음의 에너지가 생겼다.



그 전에는 내 아이를 방임했다는 것이 아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미처 보지 못한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무의식적으로 감춰둔 부분에 대한 자기발견을 토대로 내 아이안에 존재했던 그리고 우리의 관계 안에 존재했던 미지의 영역까지 발견할 힘을 얻었다.


내 아이를 직접 14년간 키워보며, 그리고 교육기관, 상담기관 등에서 많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해 보며 느낀 바, 세상을 상대하는 아이들은 행동방식에 따라 2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첫번째는, 스스로 잘 해내는 타입이다. 같은 환경에서도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고, 트라우마가 있던 없던 놓여진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크건 작건 불안을 누가 볼까 가슴에 숨긴 채 주변을 보며 스스로를 사회적 기준에 맞춰가고, 일상생활이나 학교생활을 누구의 도움도 마다하고 스스로 잘 해내는 타입이다. 바로 나와 같은 여자아이들, 그리고 자기자신보다 부모나 동생들을 생각하는 남자아이들이다.


두번째는, 부모의 구멍을 여실히 여과없이 가정에 교실에 사회에 보여주는 아이이다.


전자는 부모로서 고맙지만, 아무리 즐거워보여도 그 시절 마음에 박힌 부담이 특정 시점까지 삶에서 댓가를 치루게 되고, 후자는 당장에 몸과 마음을 써야하지만 그래서 비교적 이른 시기에 부모로서의 인식 및 성숙을 돕는다. 


전자는 티가 나지 않지만 후에 복리 이자가 반드시 붙어 처리해야 할 심리적 부담이 커지고, 후자는 그때 그때 단타에 끝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나의 디폴트 값에 의해 아이가 느꼈을 결핍을 인정하고, 복리이자가 생기기전에, 내 아이에게 생긴 양육 구멍을 먼저 막기로 했다. 어린시절에는 어른스러운 척 하다가 한참의 시간이 지나 복구할 수 없을 때 '엄마 나 그동안 아팠어'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투명하게 구멍을 드러내어 주어, 내 자식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


아이를 위한 캐나다 양육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다 깨달은 것이 있다 : 그건 바로, 예전엔 부모의 유기, 방임 vs. 지나친 간섭이나 지시를 육아 스펙트럼 선상에서 양극단이라 인식했으니, 그 둘 사이에 적당한 지점안에서 시소를 타는 것이 옳은 육아라 생각했다는 점이다 (각종 육아서, 아동교육이나 심리전공책 들에 첨부된 그림들은 모두 수정이 필요하다. 참된 양육은 지나친 간섭과 방임 그 중간이라는 잘못된 이미지를 초보 부모나 교사나 상담가에게 각인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생활에서 보건데, 방임과 지나친 간섭, 이 둘은 양극단이 아닌,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친한 친구였다. 방임하는 사람이 지나친 간섭이나 지시로 쉽게 방향을 틀 수 있으며, 또 다시 지나친 간섭이나 지시가 먹히지 않으면, '에라 모르겠다'며 방임으로 몸을 돌리는 것을 쉽게 본다. 사실 그 둘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의미 상의 차이는 없었다. 현명한 육아라는 건 위의  둘 사이 어딘가에 존재 하는 것이 아닌, 그 둘과 독립된 혹은 차원이 다른,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 나 자신과 아이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한 진짜 육아 작업이었다.


내 자신을 청소하고, 세상을 보자 진짜 육아가 보이기 시작했다.



다가가 맞서자.

평소 '아이 특유의 문제 특성'이 라 뭉퉁그려 여기던 것들을,


 1)아이의 취향이나 좋아하는 것 으로서 '인정'해 줄 것 2) 성장 발달에 따른 조절 기능 성숙을 '기다려'줄 것 그리고 3) 칼자루를 쥐고 하루 속히 '바꿔야'할 것으로 구분했다.


분류작업을 하며 놀란 점은, 이 글을 쓰고 아이의 문제 행동을 분류하는 이 시점, 그 보다도 훨씬 더 이전에 종결된 문제에 대해, 아직도 끊임 없이 고민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발견이었다. 아이가 더 이상 문제행동을 끝냈으면,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도 종결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해당 문제가 후에 다른 부분에 영향을 주어, 혹여나 아이가 문제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확산적 사고의 왜곡이 있었음을 알게되었다. 


처리되지 않은 트라우마를 갖고 살던 습관이 아이를 보는 차원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음이 인식되는 순간이었다.


어차피 끝난 일에 대해서는
나 자신에게 잘 견뎠다고, 잘 가르쳤다는 뜻에서 문제 행동 종결 시, 별딱지를 선물했다.



[인정해 주어야 할 부분]


특정 캐릭터에 집착하는 것은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라 과감히 인정해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보면 편안해 지는 것이 존재하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다. 그것이 습관만 남은 아집이 되었든, 공감할 친구를 사귀는 매개가 되었든,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되었든, 굳이 나도 아이와 마찬가지로 아집을 갖고 아이의 선호를 빼앗는데에 목적을 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을 좋아하는 아이. 물을 좋아하는 것에는 죄가 없다. 학교나 외부 외출후에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곧장 씻는 아이는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수영운동은 몸에 좋지 않은가! 물을 좋아하는 아이의 특성을 맞추어, 겨울이 긴 캐나다에서 욕조안 반신욕을 하게 했다. 물을 좋아하는 특성을 살려, 수영을 가르쳤더니 습득이 빨랐다. 기대도 안했던 다이빙도 겁없이 잘하고 말이다.


[기다려 줘야 할 부분]


감각통합 즉 촉감의 민감함이라든지, 특정맛에 대한 선호는 기다려주었다. 좋아하는 음식은 다 먹고, 싫어하는 음식은 거부하는데로 두는것이 아니라, 아이 두 세살때처럼 한 개만 두 개만 하는 식으로 먹도록 격려하지만, 아이 스스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스트레스를 줄여주기위해, 즉시 자극의 강도와 빈도를 줄였다.  이는 아이가 눈을 깜박이는 틱 행동을 없애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혹시 모를 질환 여부를 체크하기 위해, 안과에 가서 아이의 눈 검사를 받는 것은 물론이었다.


아이가 싫어하는 언어반복의 프랜치 이머전에서 영어 집중학교로 바꾸고, 학습이 아닌 표현 도구로서의 언어를 마음껏 즐기도록 책을 잔뜩 읽게 해 주었다. 아이와 나는 도서관에 가거나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책은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세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오롯히 흡수해서 재미와 편안함으로 돌려주는 나무쉼터 같은 존재가 우리에겐 책이고, 도서관이나 서점은 숲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운동을 시켜주어 긴장을 풀어주었다. 온몸의 혈액순환을 증가시키주고 몸과 내부 균형을 맞춰주었다. 심심해서 집안을 두리번 두리번 돌아다니는 아이를 위해 가족이 함께 나가 여러가지 스포츠를 즐긴다. 농구, 아이스 스케이트, 수영, 하키, 배구, 베드민턴, 자전거타기, 뛰기. 모두 다 아이가 좋아하는 운동이다. 겨울철이 길어 몸에 남는 에너지가 많은 아이가 집에서 맨손 운동을 즐길 수 있도록, 장치도 설치해주었다.



불안에 의해 기저귀를 초등 2학년때까지 자는동안 착용하기 원했지만, 초등 3학년에 가서는 기저귀를 떼기로 2달전부터 약속하고, 실제 그렇게 했다. 텐트럼을 비롯한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소변에 대해 몇 번의 실수를 그 후 1년간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괜찮았다. 일주일에 약 주 5회 침대보를 갈아줄 때 아이에게 어떠한 부담도 주지 않았다.



[엄격하게 가르쳐야 할 부분]


일찍 잠들게 하고, 충분히 재웠다.


지각은 절대 금물, 3학년부터 7학년까지 매 학년이 올라갈때 마다 지각의 빈도가 반절씩 줄었고, 8학년부터는 지각하지 않고 정시에 도착하는 아이가 되었다.


 안에서 할 일을 주었다. 엄마, 아빠가 장 본 물건을 정리하기라든지, 자신의 이부자리와 책상정리같은 것들 말이다. 베개잎을 걷고, 새 것으로 갈아 끼는 것이라든지, 을 적정수준으로 항상 유지하는 것을 가르쳤다. 밥을 먹고 그릇을 싱크대에 놓는 것, 욕조를 쓰고 나올 때에는 물기를 정리해 다른 사람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것, 분리수거감을 집 밖으로 내놓는 것.


무엇보다도 우리집 애완동물 키우기는 아이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아이는 애완동물을 은근히 바라보며 교감하는 것을 좋아했다. 긴장수준을 낮출수도 있었고, 과학적 연구결과와 같이 세로토닌 수치를 높이는데 도움되었다. 털을 빗긴 후에 간식을 주고, 또 Wet food와 dried food를 용량을 그날그날에 맞춰 배급해주고, 깨끗한 물로 갈아주는 행위를 형제와 함께 하며,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게 했다.




상 '별' 스티커로 아이에 대한 내 안의 묵은 감정 찌꺼기와 안녕했다.


아이를 더욱 면밀히 들여다보며 아이와 내가 눈맞춤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내 욕구가 투사된 니즈 말고, 아이 본연이 나를 향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남자아이인 내 아이가 나를 향한 요구조건과 여자어린이였던 나의 부모를 향한 요구조건이 달랐다. 성별에 의한 분류인지, 개인에 따른 분류인지, 둘 다 인지는 따질 필요가 없다. 나는 부모에게 수용되기를 원했고 사랑 받기를 무의식중에 요구했다면, 내 아이가 원하는 것... ?


그건 바로,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에 대한 인정과
동시에
집단안에서의 인정이었다고 단언한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단계별 목표가 존재해야했으며, 끝판왕이 필요했다.

자아를 대입하기보다 돌진할 명분이 필요했다.


남자아이 육아는 딸 육아와 완벽히 달랐다. 남자는 처음인, 나를 비롯한 많은 엄마들과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학교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당근과 채찍 3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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