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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묵은 때를 벗겨내다.

감정 찌꺼기를 모두 다 청소해 내는데는 공간닦기가 최고

by 후루츠캔디 Jan 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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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3개월에서 6개월이 지나자 감정의 소용돌이가 조금 잔잔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정신이란 놈은, 잔뜩 괴로우려 할수록 먼저 정복할 수 있었고, 덮어두고 도망가려 할수록 평생에 걸쳐 그것에 지배당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내 현재 느낌과 동행하는 동시에, 손과 발을 움직여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동기가 트라우마 때문이라지만 나는 내가 맡은 바 최선을 다했다고 봐...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하잖아...
 
 이런 식의 고민을 자처하는 사람이 흔하지 않아

사는데 별 지장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자발적 사고과정에 죽을 때 까지 단 한번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야.

여기부터 시작이야.

불안 때문에 대학에 들어갔다지만, 누구나 그런 결정을 하는 건 아니야. 노력한다고 그런 성적을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래서 외국에서도 시간이 가고, 적응하고 있는지 몰라. 불안하고 긴장하며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상황이 얽혀 만드는 여러가지 사건사고에서 내 스스로를 보호 할 수도 있었을거야. 날아다니며 일을 벌리지 않고 큰 소비도 하지 않아서 이렇게 온 세계경제가 힘든 때에도 별 타격없지. 비록 동기자체는 어린시절 트라우마가 만든 '미성숙'이었을지몰라도, 그 과정과 결과는 순전히 내 능력이고 노력이었어. a)동기 b)과정과 결과... 그 둘을 섞어 괴로워할 필요는 없는거야...


어린시절이나 성인이 된 후나 삶의 어려움이 있는 상태에서 이 만큼의 노력으로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건, 어려움 없는 상황에서 이 만큼을 만들어 낸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야. 나는 나의 노력의  가치를  억지로 힘을 내서라도 스스로 높이 평가해야해. 상담선생님이 나의 인생과 나 자신을 존경 한다 말씀하셨어. 나의 약점과 아픔 뿐만 아니라 장점도, 내 노력과 결과까지도 온전히 받아들여야해. 그게 바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다면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야.


정신을 차릴 때에는 청소만한 것이 없다. 이민 그 후 계속 되었던 이사와 마찬가지로 모든  삶의 전환점에는 '청소'가 있었다. 역설적으로, 청소라는 행위 자체가 삶의 전환을 불러온 말도 있다.


그동안 잊고 살던, 주방의 팬트리를 먼저 정리했다.그동안 공부하느라 바쁘다며 집안은 챙기지 않는 나의 정리행태에 속으로 불만이었으나 언급하지 않던 남편도 쿵쾅거리는 소리에 주방으로 나와 웬일이냔다.



먼지를 털고 새로 만든 물걸레로 정성스럽게 벽과 선반을 닦았다. 말라붙은 양파 조각도 말끔히 닦았다. 


화장실 벽 그리고 욕조도 깨끗하게 닦았다. 베이킹소다로는 락스넣은 강한 세제로도 안닦이는 욕조의 때가 말끔히 벗겨졌다. 원래 회색으로 변색된 것인 줄 알았던 욕조의 부분이 우윳빛깔로 바뀌는 모습을 관찰했다.


아이의 놀이방으로 갔다.

아이가 킨더때부터 갖고 놀았던 놀잇감이 한방 가득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5학년이 된 작은 아이조차 더이상 호기심조차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미안해, 엄마가 불안해하느라 동안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바라볼 수 없었구나. 답답했지? 고생이 많았다, 부정하거나 흘러가도록 두지 않고 하나 둘 수면위로 떠올라오는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니 네 감정에도 더욱 여유를 갖고 귀 기울일수 있게 된것같아 고마워...스스로 깨달을 때 까지 날 기다려줘서

장장 3일에 걸쳐 집 각 방과 거실, 화장실, 베란다를 모두 털어냈다. 거의 새 집을 만들고자 하는 느낌으로 모두 닦아 냈다. 우리집 애완묘 루비집은 의무감에 1-2주에 한번씩은 새 모래로 갈며 비누거품내어 모두 치워줬었는데 의외로 내가 속한 공간에 대한 현실감이 없었나보다. 집 주인이 현실감을 잊고 사는 집은 어딜봐도 테가 났었을거란 생각에 그동안 창피한 줄 모르고 내 집에 초대했던 손님들이 하나 둘 생각났다.


짝퉁이 삶을 끝내고 내 발로 땅을 딛는 진퉁이 삶이 시작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의 나는 화성이나 목성 또는 달나라에 있었던 걸까. 한 10여년의 삶일까, 20년여의 삶일까... 모두 꿈 같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자, 내 아이의 얼굴이 보였고, 아직 다 크지 않고 귀여운 미소가 남아 있는 상태라는 것을 새삼 다시 발견했다. 나를 앞에 앉혀놓고 까부는 모습을 보며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로부터 약 6개월여의 시간이 지나 카운셀러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기분이 어떠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많이 편안해졌어요,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허전해요' 라고 대답했다. 정말이었다.


확실히 만성적 편두통이 사라졌으며, 무언가를 먹으면 가슴이 팍팍한 채, 체기가 오랜 시간동안 남아있었는데, 근 20년 동안의 만성 질환이 사라졌음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슬퍼하고 화내는 동안의 수 십번의 대찬 구토 끝에 속이 뻥 뚫리고 소화가 잘 된다. 그 전에는 목 끝 저 밑 어딘가에서 음식물이 걸려 있는 것 같아 늘 암덩어리가 아닐까 느꼈던 덩어리도 어디갔는지 모르게 없어졌다. 늘 누렇게 떠 있던 탁한 피부톤이 온데 간데 없어졌으며, 그 자리는 딱히 무얼 바르지 않아도 여름쿨톤 또는 겨울쿨톤의 장밋빛으로 빛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공황장애를 일으킬만한 사건이 없어져서 였을까? 심리적 답답함에서 자유로워졌으며, 피부나 기관지의 알러지도 없어졌다.




그런데... 허전해요...


가슴이 허전했다. 정말이다. 이건 전에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두고 살던 돌덩이가 치워진 느낌과 비슷했다. 생각이나 트라우마라고 하는 '비물질' 에도  물질과 마찬가지로 중력이나 압력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체험했다.


그 동안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을 잘 소화시켜 보내주고나니 정말 가슴이 허전했다.


허무함은 어린시절 불안에 떨던 소녀가 남기고 간 빈 자리였다.


쓸쓸함이 야릿했다. 약 20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내 스스로 보살펴야하는 어린아이라고 매일 안고 다녔나보다, 부정적인 감정이나마 삶의 잣대였고, 동반자였나보다. 그 아이가 없어지니 내 삶의 방향을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정처없이 떠돌아야할 것 같았다. 내 삶에 대해 알맹이가 쏙 빠지고 쭉정이만 남은 것 같은 감정이 들었다. 아이들이 졸업하고 출가하면 나이든 엄마들은 빈둥지증후군을 겪으신다고 하던데, 아니 오랜 애인과 헤어지면 허전하고 슬프다고 하던데 이와 비슷한 느낌일까? 삶의 핵심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미쳤다. 나의 트라우마, 아픔의 크기가 이 만큼 거대한 것이었구나.


반면, 허전함과 동시에 약간의 자유함이 마음속에 솔솔 느껴짐을 보았다. 허전함은 곧 그만큼 자유로워진 나를 느끼고 있다는 뜻이다!


상담이 종료된 지금,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

이제 주변이 보여요, 선생님
꽃에서 풀에서 나는 향기를 맡을 수 있어요.


옆집 개가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모습도 보였다. 내 책상위에서 있는 컵에서 나는 루이보스티의 온기가 내게 전해졌다.


늘 외롭다고 불안하다고 떨던 큰 딸래미를 독립 시킨 바로 그 자리에 이제 내 색깔로 채색할 시간이 남았다. 내 향기로 채울 일만 남았다.


휴, 살았다. 이제 자유다!


다시 생각해봐도 전에 없던 참 신비한 경험이었다.


자세한 성공담은 후루츠캔디의 책(종이, 전자)을 쫓아가 염탐하실수 있습니다.


+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라깡의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맥락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은 문장 한 줄만을 읽고 '타자'를 '타인'으로 해석하지만, 철학자가 원서에서 언급한 '타자'란 .'다른사람이 아니라' 원문의 맥락상 자기자신마저 의식하지 못하며 사는 내면의 무의식을 뜻합니다.)


* 이 글의 저작권은 후루츠캔디에게 있습니다. 인용에는 원글의 의도와 목적을 왜곡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복제 및 인용을 원하실 때에는 꼬옥 원글 작성자인 '후루츠캔디'의 허락을 받으셔야합니다.














지인의 제보를 통해 당신의 글을 접하고 답장을 남깁니다.

10년 이상 먼저 캐나다에 정착해 살고 있는 사람의 행적을 끊임없이 쫓으며, 대상을 자신의 틀에 끼워맞춰 오해하며, 미워하고, 스스로와 비교하여 자괴감을 느끼는 행위는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행위입니다. 당신의 마음 속 괴로움이 제게도 있는 그대로 느껴집니다. 자신의 빛나는 부분을 스스로 발견하고 갈고 닦아 스스로의 인생에서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자신만의 빛깔로 빛나시기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진심입니다. 


당신을 응원하는 만큼, 내 자신의 창작행위를 보호할 권리또한 나 자신에게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응원과 별개로 다음부터 제 글을 자신의 마음대로 왜곡하여 본인의 의도대로 마음껏 난도질 하는행위 (인용권침해입니다.) 적발 시, 당신의 이름과 글 그리고 사이트주소를 이곳에 밝힐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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