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을 더 이상 구독하지 않고,
새 글 알림도 받아볼 수 없습니다.
부정, 화,허무함,슬픔, 다시 또 분노, 무기력과 우울, 깊은 슬픔
어린시절 상처가 있어도 덮어두고
현재 잘 살면 그만 이다.
캔디님은 제가 보았을 때 긴장도가 높으십니다. 숫자로 표현해볼게요.
네, 맞아요 선생님... 사실 그것 때문에 좀 불편할 때가 있어요. 사람이 불안을 느끼는 건 당연할 것 같은데 저는 좀 지나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어떤 상황에서, 10점 만점에 불안레벨 1-2만 느끼고 남은 8-9에너지는 사고나 느낌에 치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1000이 되어 쇼크를 느끼고 얼어버립니다. 이민을 와 새로운 도시로 갈 때에도 첫 몇 주간 4-5정도의 불안을 느끼지만 집에오면 불안을 누그러뜨릴줄 알아야하는데, 아이를 챙겨줘야해서인지 아직도 불안수준이 3-4이상 되어야합니다. 그런데 3-4가 아닌것 같아요.
어느정도죠?
10점만점에 1000정도 되는 것 같아요.
아까와 같네요.
네, 꼭 큰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요. 심각하게 미친소리같아 입밖으로 꺼낸 적 없지만, 심지어 저는 이민을 올 때에도 전 혹시나 남편이 나를 외딴섬에 팔아버리는 건 아닐 까 하는 생각으로 한동안 전전긍긍 했다구요. 아무것도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없을 정도로 의식이 마비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특히 외부에 나가 정신차려야하는 중요한 상황에서도요.
이민 후에 생긴 습관인가요?
아니오, 한국에서도 그랬어요. 이 모습들이 한국에서는 유교문화가 있어, 웃어른 앞에 예의를 차리는 모습으로 보여져 배려를 받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단 한번도 나의 이러한 성향에 대해 문제 의식이 없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때는 나이도 20대 초중반으로 어렸기 때문에, 사회에서는 선배나 상사를 거쳐 의사결정을 해야했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캐나다에서는 점점 상황이 달라짐을 느껴요. 물론... 내가 본 열 사람중 다섯명이 넘는 사람은 그런 나를 나 자신보다 먼저 알아봐주고 '괜찮다, 위험한 상황이 아니다' 라며 내가 불편해 할 수 있는 팩터들을 줄여주려 최선을 다하고, 미안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사실, 같은 상황안에서 나만큼 불안해하고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왜 나는 사람들의 친절을 받고, 용기를 내어야할까요? 전혀 용기씩이나 필요없는 상황에서도요. 제 남편은 이런 나를 놀리는 것이 제게 스트레스이지만, 그다지 개의치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아요. 선천적으로 나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캔디님의 어린시절로 가봅니다.
고통속에서 울고 있는 아빠가 보여요.
그때 느낌이 어땠나요? 그 느낌과 현재 캔디님이 말하는 불안의 느낌이 어떻게 다를까요?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헉...
제 감정은
아빠의 고통을... 공간을 꽉 메운 울음과 신음의 형태로
맨 몸의 어린 내가 경험한 날...
그 날의 쇼크와 연결되는 듯 해요.
그럼 나와 같은 '불안'의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행복할 자격도 없네? 노력할 자격도 없네? 어차피 트라우마 그 직후부터 사고, 행동, 결정, 느낌 등 모든 도식이 왜곡될테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것이 아까울만큼 의미없는 인생이라는 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