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27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당근과 채찍 3 : 학교생활 편

#초등수학, # 중등수학, #캐나다유학,#캐나다육아, #캐나다이민

by 후루츠캔디 Jan 16. 2025
아래로

1. 선택과 책임의 철학


현대 사회에서는 비혼주의와 비출산주의가 점점 더 흔한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단순 트렌트가 아니라,  개인메타인지능력을 활용해 자신의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 맥락을 객관적으로 평가한 결과라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애초에 문제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 가장 문제 해결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이러한 선택은 주체적이고 책임 있는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반면, 나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했다. 지금은 내 배우자와 함께 고대하며 기다렸던 두 아이와 매일을 캐나다 어느 작은 도시에서 보내고 있다.  이러한 선택이 축복이 될지, 예상치 못한 도전으로 다가올지는 결국 우리, 즉 주체적 선택을 한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에 따라 달라진다. "애는 내 맘대로 안된다"라고 생각하지만, 약 15년여의 육아과정을 지낸 결과, 보호자가 얼마나 자신을 이해하고, 아이를 이해하며, 그에 맞는 방법을 선택해 사회적 요구사항을 수행하는 동시에 아이가 스스로의 색깔을 발현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는 80프로이상이 부모인 우리의 방향성과 전략에 달려있음을 확인했다. 아이의 재질과 상관이 없이, 모두에게 적용된다.


선택을 번복할 수 없는 지금, 현실을 용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며 책임감을 다하는 것이 내게 주어진 과제이다. 





2. 아들과 함께한 6개월간의 변화


나는 지난 6개월 동안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하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삶의 케이크를 아이와 반씩 나누는 결단을 내렸었다. 길지도 않지만, 뭔가 의미있는 프로젝트를 해 봄직한 이 기간은 단순한 육아를 넘어, 아이의 마음에 부모로서의 책임과 성의를 새기고자 한 과정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러한 노력이 우리 둘 모두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아이의 문제해결능력과 인지력은 물론,  자신을 긍정하고 믿는 힘,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사회성이 눈에 띄게 성장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아이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부모로서 내가 아이의 성장 환경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함께 고민하며 꾸준히 대화한 결과였다.


앞선 글들에서 자세히 다뤘던 나의 어린시절에 대한 분석, 그로 인한 파생효과를 완벽히 제거한 후, 있는 그대로의 내 아이를 본 결과 였다.




3. 캐나다 공교육에 대한 재평가


캐나다 이민 초기,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이루어진 내 큰 아들의 킨더가든 입학당시, 나는 캐나다 교육시스템에 대해 상당히 큰 오해를 품고 있었다. '캐나다 교육은 물' 이라는 편견 때문이었다. 이는 한국의 입시 중심 교육 방식에 익숙했던 내가, 내신 중심의 캐나다 교육을 과소평가한 데서 비롯되었다. 


11,12학년 내신성적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캐나다에서, 내 경험에 비춰볼 때, 기본 개념과 연습문제를 위주로 평가하는, 겨우 학교 성적 따위를 못 받을 리 없으며, 변별력을 중심으로 하는 (심화문제) 한국의 입시제도와 비교할 때, 누구도 원하는 학교, 원하는 과에 도착하지 못할 수는 없는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교육의 본질과 방향성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캐나다 공교육의 핵심은 학생의 자율성과 책임감을 길러주는 데 있으며, 이는 단순한 성적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는 것이다.


누가 캐나다는 교육 선진국이라 했던가?


물론 공교육의 한계와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특정 지역과 교사 간 교육 서비스 제공 수준 차이 (표준 교과서가 없으니 더욱 두드러지는 특징이다.), 교육세 차이,  집단 내 소수의 의견 억압, 학생 간 하이어라키와 이너써클의 존재 그리고 은근한 차별과 따돌림 등은 여전히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이래 저래 폭력적이지 않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단점을 인정하면서도, 부모로서 제 역할을 강화함으로써 아이의 교육 환경을 보완할 수 있다고 믿는다.




4. 부모의 역할과 아이의 성장


아이의 학교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다름아닌 부모이다.


사실 공부에 앞서, 이 사회와 커뮤니티를 이해하는 동시에 내 아이의 성향을 잘 이해하는 것이 선행 되어야한다. 내 아이의 경우에는 한정된 주제에 매몰되는 편향적 성격상,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는것에 약했는데, 대화나 뉴스 시청을 통해 관심을 아이 밖으로 끌어내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이 특유의 성향은 어쩔 수 없었다. 부모인 내가 아이의 이러한 특성에 꽂혀 잔소리로 관계를 망치기 보다는,  이 또한 나이를 3040 먹어감에 따라 성숙되는 부분이니 10대 아이에 대해서 상당부분 인정하기로 했다.


아이의 학업과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나는 매일 아이와 함께 과제를 검토하고, 학업진도를 확인하며, 예습과 복습의 중요성을 가르쳤다. 전에 배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오늘 배우는 내용도 이해할 수가 없다. 복습을 해 구멍을 메꾸고, 예습을 해 얼기설기 머릿속에 지식을 구조화해놓고 다음날 수업을 들으면, 집중력 향상을 도울 수 있다. 예습의 경우, 굳이 모든 내용을 처음부터 이해하지 못해도 상관없고, 필요이상의 선행을 하며 공부에 대한 도식이나 이미지를 망칠 필요가 없다.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고, 지식을 구성할 준비가 된 채 학교에 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세상에서 유행하는 각종 약물, 이를 테면, 커피나 ADHD 약물등에 의존하기 보다는 충분한 수면과 규칙적인 학습 습관을 통해 아이의 집중력을 향상시켰다.


무심코 다른 생각을 하는 것도 수정했다. 이를 테면, 교재 귀퉁이에 도그맨이나 캡틴언더팬츠, 졸라맨, 윔피키드 그림을 그리지 않기로 약속했다. 무심코 그렸다면 그리는 즉시 지우게 시켰다. 현재로 집에 과제라 가져오는 종이들을 보면, 종이 측면에 위에서 언급한 캐릭터 중 하나를 그렸다 지운 흔적이 간혹 발견된다. 그러나 현저히 횟수가 줄어든 모양이다.


지각은 금물. 현재는 지각하지 않고 정시에 교실에 들어가는 학생이 되었다. 캐나다 학교는 한국 학교와 달리, 교사가 출결을 신경쓰지 않는다. 학교 선생님에 의해 출결사항에 대해 벌점 또는 운동장 10바퀴 등 강한 교육을 받고 자란 내 세대 또는 그 윗세대 동양 엄마들은 캐나다 학교 선생님들의 출결에 대한 체벌도 모욕도 없기에, 자녀가 지각하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갖지 않는 경우가 있으나, 이것은 엄청난 오해이다. 학세권에 사는 나는, 매일 동양에서 온 아이들이 지각하는 경우를 등교시간 이 후에 내 눈으로 관찰한다. 뭐든지 습관이라고 매일 늦는 아이가 늦는다. 스스로의 자율성을 법이나 규칙 위에 두고, 알아서 가정에서 훈련하길 원하는 캐나다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지, 결코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관계에서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은 기본이다.


영어 작문이나 읽기는 워낙에 태어난 곳에서 살며 학교 다니니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렇지는 않다. 다행히 이 아이는 책을 쉼터로 여기며 글쓰기를 취미로 삼고 있는 아이라 이 부분만큼은 걱정을 놓았지만,  아이의 부부가 원어민이 아니므로 가정안에 두 언어가 공존하는 가운데, 토론 능력 등은 일부러 애를 써서 길려줘야하는 것임을 인지하고, 최대한 다른 아이들과 대화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을 의식적으로 제공해주었다. 영어능력과는 별개로 'Conversation'훈련을 통해 수줍음이 극복되고 환경에 익숙해지며 나도모르는 사이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팀웍기술에 대한 훈련에 적극적인 것 또한 프리젠테이션 기술의 적극 획득과 마찬가지다. 프리라이더가 없고, 자신의 역할이 크던 작던 내 일이 반드시 있다. 이때 한국처럼 선생님 또는 리더가 모든 역할을 배분해주기보다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이 스스로 하고 싶은 역할을 적극적으로 정하고 팀원들에게 공표하는 방식으로 일의 배분이 정해진다. 처음에는 팀원이 되기보다 혼자 팀이 되어 과제를 완수하기 원했던 아이이다. 하지만, 이 과제에서 대박이 났고, 감사한 선생님은 내 아이를 학급안에서 드높여주셨다. 이런 경험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자, 아이는 제발 속해달라며 애원하는 아이들 속에서 어디에 속할지 팀을 고를 수 있는 밸류맴버가 되었다.



수학의 경우, 아이 학교의 학년별 진도보다는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아이 개인의 인지사고력을 바탕으로 공부진도계획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


수학공부는 논리적 사고력을 증가시킨다. 수학학습을 통해 습득한 개념과 연습풀이로 강화된 뉴런은 처음엔 삐뚤빼뚤 오솔길이지만, 반복학습을 통해 고속도로가 되는 것을 내가 학교다니며 경험했었고, 또 내 아이를 가르치며 내 눈으로 직접, 즉 2회 보았다. 수학에서 생긴 구멍이 모두 메워지니, 학교 생활에 자신감이 생긴 아이를 본다. 지각이 없어진 이유 중 하나라 생각한다. 수학을 잘하면 아이들 사이에서 왠지 모르게 비범하다 여겨지는 것은 캐나다나 한국이나 마찬가지이다.


수학 학습에서 개념 이해와 반복 연습을 강조하며, 초등 1학년 부터 중등 과정까지의 모든 단계를 꼼꼼히 점검했다. 그 결과, 수학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아이는 학교 생활 전반에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아이의 작은 성공이 모여 큰 자신감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며, 부모로서의 보람을 느꼈다.






5. 공교육의 한계와 가능성


캐나다 공교육은 완벽하지 않지만, 부모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이 있다면 아이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캐나다의 공교육은 프리젠테이션과 팀워크 기술을 강조하며, 학생들이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장려한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에도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하지만, 부모가 아이와 함께 대화하며 이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대처하는 능력을 기른다면, 아이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가진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전문가의 진단이나 사회적 편견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의 잠재력을 믿는 부모가 되고자 했다. 이러한 노력이 결국 아이의 자신감과 학업 성취를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6. 부모로서의 성장


부모는 아이와 함께 성장한다. 나는 아이의 양육을 통해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며, 삶의 주체성과 책임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내 글을 읽는 독자들 또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이끌어가는 주체적인 존재가 되길 바란다. 삶은 타인의 동의가 아닌, 스스로의 신념으로 채워야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






덮어놓고 캐나다를, 외국인 교사를 대단한 선진국의 선진시민으로만 여기며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자동으로 해결될 것이라 믿는 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나라에 속하기만 하면 시민의식이 저절로 생기고, 교육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는 정말 위험하다.


같은 상황을 두고도 누군가는 천재성을 말하고, 누군가는 학습장애를 지적한다. 학교 학습에 흥미를 갖지 않는 아이에게 '더 어려운 문제를 줘 보라'는 의사가 있는가 하면, '약 줄테니 더 이상 찾아 오지 말라'는 의사도 존재한다. 그들은 모두 한 나라안에 있다. 


어떤 부모는 아이가 자신을 닮은 것이 아니라 상대방 가족의 유전적 영향을 받았다며 문제를 부정한다. 아이와 상대 배우자의 인격을 모독하며 감정을 착취하는 것에 죄의식이 없다. 그런 부모들 뒤에는 늘 자신들을 불편하게 여기는 무의식적 감정과 그를 잘못된 방향으로 통솔한 부모님의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다. 반면, 구체적으로  문제를 분석하고, 가정교육 계획을 세워 실천하며 아이에 대해 하나라도 더 배우려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주체적 사고라는 것을 애초에 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의 눈은 오직'표준'에만 익숙해서, 표준을 쫓는대만 급급해서, 그 기준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이는 단일 기준이 존재하는 한국뿐이 아니라, 캐나다도 다르지 않다. 캐나다를 깨인 선진국으로만 생각하는 것도 결국 편견이다.


아인슈타인과 에디슨처럼,  초등 2학년 때 학습장애로 오인받았던 내 아이와 함께 공부하면서 나는 그 아이가 3D 도형을 인식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공간지각능력은 내가 학창시절 상위권이었던 수준을 한층 업그레이드된 버전이었다. 아이는 대칭점을 정확하게 찾아냈고, 그 속도가 아주 빨랐다. 전개도를 보고 도형을 예측하는 것, 그리고 도형을 보고 전개도를 그리는 작업을 쉽게 해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흥미와 즐거움을 느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것이 단순 시간과 돈, 육체적 에너지 뿐만 아니라 부모의 정신적 스테미너라는 점이다. 아이는 절대로 스스로 잘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이고, 피양육자이다. 부모의 세심한 관심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부모의 정신적 고뇌와 세상적 어려움은 결국 아이에게 어떤 형태로든 드러난다. 그리고 잔인하게도, 양육의 주체자인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그 인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타인은 나와 아이의 문제를 나 자신보다 더욱 명확히 포착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조각칼로 작품을 다듬는 과정과 같다. 열 살이 넘으면 말귀를 알아 듣는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 혼내는 것을 주저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부모 스스로 자신의 아픔에 매몰되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자기 문제에 갇혀 있는 부모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것은 아이를 위한 일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 되고 만다. 자신을 깨고 나온 부모만이 비로소 진정한 부모의 역할을 할 준비가 된 것이다.


주변사람들의 엇갈리는 의견들로 인해 스스로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던 아이는 본인이 달성해야하는 목표와 함께 적극적으로 뛰어주는 엄마, 훈련과정, 피 땀 눈물의 목표달성을 위한 노력을 겪으며, 스스로를 돌파했고, 결국 학교생활 9년만에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괜찮은 사람이다.' 라는 자기확신을 얻게 되었다. 자기자신과 생활방식에 대한 혼란을 극복하는 법을 맨몸으로 익히게 되었다. 아이의 이 자기극복 경험은 평생 스스로를 위한 자신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물론 아이가 제 발로 세상에 딛고 나올 무렵에 부모로서 하는 말들은 많은 구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지만, 중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의 부모로서의 생생한 의견과 생각도 나름대로 가치를 갖고 있다 자부합니다. 모두 열린 태도로 생각을 교환한다면 우리아이들과 세상이 조금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전 16화 당근과 채찍 2 : 부부관계와 자녀양육 편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