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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이민자, 요리로 다시 쓰는 추억

핏자 반죽 위에 얹은 사랑과 치유, 음식이 기억되는 순간...

by 후루츠캔디 Jan 2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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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질 때에는 제대로 먹어야한다.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사람은 허기가 돌면 영혼마저 강탈당한다.  그 허기를 채우기위해 남편과 함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열리는 쿠킹 클래스에 참석했다.


남편은 우리가 캐나다에 이민을 결정했을 때 부터 요리를 배워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고 한다. 보스턴에서 잠시 머물렀던 시절, 그는 북미 지역에서 한국인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하는 직업군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특별한 재주가 없다면 남들이 하는 일 쯤은 알아야 한다는 그의 현실적인 사고방식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안전이나 생존을 위해서 라는 목적에 음식 공부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통음식은 원래 그 문화에서 배워야한다는 고집이 있었다. 아무리 취미생활이라도 말이다.  이민자로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이탈리안 커뮤니티에서 핏자와 파스타를 배우고 싶었다. 요리에 대한 이유는 달랐지만, '함께 배운다' 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우리는 수업료에 재료비를 내고, 나란히 수업에 임했다.


쿠킹 클래스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레스토랑 주인이 설명을 시작하며  데모를 보여줄 때, 도우를 부드럽게 늘리는 손길에 눈이 멈췄다. 고소한 향기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오븐 안에서 점점 구워지는 핏자의 모습이 마치 예술작품처럼 느껴졌다. 그 풍경 속에서 내 손으로 직접 반죽을 굴리고, 토마토 소스와 치즈를 얹는 과정은 낯설지만 매력적이었다. 결과물은 조금 어설펐지만, 그 날의 핏자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만 같았다.


레스토랑의 활기찬 분위기속에서 문득, 내가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혼자서 공부하러 다니던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내 일상과 달리, 남편과 함께 이민자로서 문화생활이라는 새로운 장을 열고 있는 나 자신이 뿌듯했다.


순간, 20년 의 기억이 선명히 떠올랐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 그 날도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덜덜 떨며 파스타를 접시에 집어주던 그와 앞에 앉아 수줍은 20년전의 나. 따뜻한 조명 아래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던 우리. 시간은 흐르고, 이제는 나와 투닥거리다 다시 내 웃음을 보고 멋쩍게 고개를 돌리는 남편이 내 앞에 앉아 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공간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다. 이 매거진을 쓰기로 마음 먹은 것도,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면서였다. 음식과 장소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추억이자 치료제이자 사랑이다.


핏자의 고소한 향처럼, 오늘의 기억도 오래도록 내 삶의 풍미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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