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살 소녀들과 교실에 누워서.
같은 학교에서 5학년을 연달아 3년을 하며,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과 지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뚱하니 말하지 않고 있어도 화가 난 것이 아니란 것쯤은 알게 된 것이다. 열두 살짜리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이 필요한 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하루에 한 시간은 정말 재밌는 수업이 하나는 있을 것.
우리 반만 하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다면 더 좋다. 선생님과 이야기는 하고 싶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모르니 걱정하는 여자 아이들이 있다. 그러니 일기를 검사한 후 답글은 필수다. 그렇게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연결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욕구를 받아준다. 일주일에 하루는 땀나게 놀아줄 것. 그리고 의외로 수업 시간에 딴 소리하는 걸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았다. 수업 내용은 알차고 적당한 도전적인 과제가 있을 것. 아이들은 자신의 성취도를 알고 싶어 했다.
또 생각나는 것은 아이들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쏟아내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허용되는 상황이 된다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털어놓았다.
나는 상담을 배운 적이 없다. 연수 때 열심히 듣기는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툭 자기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게 하려면 어찌해야 할지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그저 ‘래포’ 형성을 하라.라고만 나온다.
여자 아이들끼리의 갈등이 커져서 반 분위기가 위태위태해졌을 때 나는 충동적으로 여자 아이 모두를 남겼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교실의 책상과 의자를 뒤쪽으로 치웠다. 바닥도 빗자루로 잘 쓸어서 깨끗하게 했다.
우리는 동그랗게 앉았다. 남자애들 없이 우리끼리 이야기하니 좋다며 깔깔댔다.
책가방을 자연스럽게 내려놓은 아이 옆에서 나는 별생각 없이 그 애 가방을 베고 누웠다. 늘 지내는 교실이지만 누워서 천장을 본 적은 없었다. 아이들은 곧 나를 따라 둥그랗게 머리를 맞댄 채로 교실 바닥에 누웠다.
“선생님,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나도 그랬다. 천장을 보고 누워 우리는 특별한 주제 없이 이야기를 했다. 서로 먼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긴 했지만 끼어드는 애 없이 돌아가며 편하게 말했다.
“선생님, 사실 저 은혜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말해도 될까요?”
잠깐의 침묵이 생겼을 때 서진이가 말했다.
“그래, 선생님이 듣고 있을게. 은혜도 서진이 이야기 함께 들어보자.”
“은혜야, 너 전에 지원이에게 내 흉본 적 있지? 나 그 이야기 들었어. 솔직히 그때 엄청 기분이 안 좋았어. 왜 그랬는지 궁금해.”
은혜는 얼굴이 하얗게 됐다. 야무진 서진이의 파고드는 질문에 놀랐나 보다. 즐거웠던 분위기는 갑자기 얼어붙었다. 그런데 의외로 은혜는 서진이에게 자기가 왜 그런 말을 하게 됐는지 설명을 잘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 끝에 사과까지 했다. 나는 은혜가 입 꾹 다물고 말 안 할 줄 알았다. 은혜는 서진이에게 말하고 싶었었나 보다. 미안하다고.
서진이를 시작으로 그다음 아이 또 그다음 아이가 돌아가며 섭섭했던 것을 말하기 시작했다.
맨바닥은 누워만 있기엔 몸이 배겨 아팠다. 우리는 아이들 이야기를 함께 들으며 엎드린 채 팔을 괴고 듣다가 옆으로 누웠다가 했다. 40분이 채 되기 전에 아이들은 속엣말을 다 쏟아냈다. 1시간도 아니고 40분 정도만 충분히 들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랑 함께 말하는 애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랬는데 집에 가는 길에 아이들 표정이 후련해 보였다. 내가 함께 겪은 일인데도 신기했다.
“애들아, 오늘 속 이야기하고 나니까 시원하니?”
“진짜 시원해요. 선생님.”
“우리 그럼 마음 청소 좀 더 해볼까? 오늘 미처 말하지 못한 섭섭함이 있다면 편지에 적어오자. 그리고 그 편지를 태워버리는 거야!”
“좋아요. 좋아요!”
다음 날.
우리는 방과 후에 깡통과 라이터를 들고 운동장 구석으로 갔다.
씨름장의 모래를 파내고 깡통을 넣은 후 아이들이 써 온 편지들을 모았다.
그리고 불을 붙였다. 종이는 삽시간에 타 없어졌다.
타들어가는 편지를 보며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아이도 있었다.
“다 사라져라!”
어떤 아이가 소리를 내자 합창하듯 아이들이 소리 높여 외쳤다.
"다 사라져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