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엄마의사생활
“할머니를 잃어버렸어”
엄마에게 걸려 온 삼촌의 전화였다. 오랜만에 우리 집에 놀러 와 손주 재롱에 한참 웃던 엄마는 내게 이 말을 전하고 주저앉았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침착한 것이 아니라, 벌어진 상황을 가늠할 수 없어서 아득한 것이었다. 내 멘탈이 나간 동안 정신이 먼저 돌아온 엄마는 다시 삼촌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 말이나 쏟아냈다. 서로를 의지할 수 있는 말들은 빈곤했지만, 침묵이 가져오는 최악의 상상보다는 나았으리라.
수년간 치매를 앓으며 이제는 과거의 시공간이 더 편해진 할머니는 가끔 예측할 수 없는 틈에 사라졌다. 그녀의 망상의 속도를 따라잡는 것은 무리였다. 경찰의 도움으로 동네 어딘가에서 떨고 있는 그녀를 겨우 찾으면 어느 세계를 헤맸던 것인지 여쭤볼 수도, 추측할 수도 없었다. 그건 할머니의 유일한 프라이버시 같았다. 당신의 여정이 만족스러웠던 날엔 할머니는 그저 고요한 미소를 지었다.
자식들은 장차 더 부담스러워질 미래를 수습하기 위해 할머니의 외출을 금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죽기 전 형자아줌마는 꼭 만나고 싶다고 온전한 정신으로 말씀하시기에, 삼촌은 그 소원을 따라서 아침부터 일찌감치 나선 길이었다고. 그런데 중간에 볼일이 너무 급해서 남자 화장실 입구에 잠깐만 계시라고 했는데 2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같은 서울인데, 거긴 들어도 아득한 동네였다. 게다가 유동 인구마저도 대단한 곳이라고 했다. 붐비는 지방 휴게소에서 아이를 잃어버린 것처럼, 멍하니 서 있지도 못하고 온 사방으로 찾아 나설 수도 없는 그 막막한 틈으로 절망이 신속하게 파고들었다. ‘이제 정말 끝장일지도 몰라’. 할머니는 그렇게 홀연히 사라졌다.
옛날부터 할머니는 기동력이 뛰어난 여자였다. 작은 발로 빠르게 걸으며, 매사에 민첩하게 주변을 파악하고 신속하게 결정을 내리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흐름이 어린 내 눈에도 보였다. 그것이 언제나 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할머니 특유의 다정한 마음과 당당한 자신감이 묘하게 어우러져서 주변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꽤 특별한 존재였다. 일주일에 두세 번 외출 때마다 걸음이 느리고 어린 내가 동행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경쾌한 목소리로 “오케이! 할미 손 꼭 잡거라”하면, 나는 그날의 여정에 바짝 긴장하면서도 잔뜩 설렜다. 그 빠른 보폭을 따라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지만, 그 시간은 정말 특권이라 여길만했다.
할머니와 나의 주 무대는 호텔과 남대문 옷시장, 목욕탕과 커피숍 등이었는데, 장소보다는 그곳을 누비는 할머니를 관찰하는 게 더 흥미로웠다. 우리는 자주 시청 근처 호텔에 갔다. 고급스러운 대리석 벽을 따라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깊고 진한 초록의 벨벳 소파가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방이 상쾌한 만족감을 주던 곳. 할머니는 그곳을 그렇게 변신시키는 사람이었다. 나는 청소도구를 잔뜩 실은 카트의 원통과 수건 사이에 숨어서 할머니의 야무지고 신속한 청소 기술을 지켜보았다. 그녀도 나도 한껏 몰입하다가 누군가 지나가는 발소리라도 들리면, 할머니의 주특기였던 부지배인 성대모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입을 틀어막고 아슬아슬하게 낄낄거렸다.
그녀의 노동이 끝나면, 우리는 커피숍으로 내려가 비엔나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테이블마다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로 활기가 넘쳤다. 커피 위에 수북하게 올려진 생크림은 온전히 내 차지였다. 거기에 우리의 수다까지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이 달콤하고 만족스러운 날이었다.
할머니가 한시도 노동을 쉴 수 없는, 당신 인생의 만만치 않은 시절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은 조금 더 자란 후에야 눈치챌 수 있었다. 할머니에게선 언제나 넉넉한 여유와 우아함이 뿜어져 나왔으니까. 그건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실마저도 압도하는 아우라였다. 치열한 전쟁통 같은 삶에 얼마든지 후줄근해질 수 있는 순간이 많았지만, 그녀의 태도에는 일정한 품위가 있었다. 언젠가 할머니가 그랬다. 세월은 저 혼자 흘러가지 않고, 응당 자기 몫을 챙기듯 시절마다 우리가 지닌 아름다움도 가져간다고. 억척스럽게 살길을 모색하다 보면, 으레 맞닥뜨리는 방황의 때에 그걸 다 내어주게 된다고. 그렇지만 할머니는 그것을 끝내 고집스럽게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이를테면, 정적을 깨고 부르는 오래된 샹송과, 패션에 대한 안목, 그리고 고상한 말솜씨나 쉽게 체념하지 않는 마음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멘트를 날리지 않았다. 때때로 그녀에게선 슬픔이 흘러나왔지만, 그걸 다루는 방식은 좀 더 명랑하고, 위트 있었다고 할까.
사춘기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그녀를 멀리했다. 왜인지 모르게, 어떤 슬픔에 짓눌려서 아무 말 없이 방안에 틀어박혀 잠만 잤다. 외갓집에는 꽤 오랜 시간 동안 가지 않았다. 나 자신을 마음껏 경멸하던 어느 날엔 유서를 쓰고 죽을 준비를 했다. 이런, 죽을 용기도 없네. 찌질하게 한참을 울다 문득 벌떡 일어나 외갓집으로 뛰어갔다. 할머니에게 라면을 끓여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날도 어김없이, 허겁지겁 라면을 먹는 내 옆에서 ‘네가 나의 첫사랑 첫 손녀란다’하고 개구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시간의 무게를 견딘 후 마침내 패배감을 떨치고 일어난 손녀를 자랑스러워했다. 나도 내가 괜찮고 좋았다. 순간마다 엄습하는 두려움을 헤치고, 결국에 가장 좋은 선택을 하는 할머니를 닮은 것 같아서.
얼마 후 엄마의 전화가 다시 울렸다. 내 생사를 결정할 전화임을 직감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전화일 것임을. 삼촌이 갸우뚱하면서 말했다.
“엄마가 스스로 돌아왔어. 누군가에게 핸드폰을 빌려서 전화번호를 기억하고는 집에 전화하셨대. 옛날 집 전화번호는 또렷하게 기억했던 거야. 당신이 길을 잃어버렸으니, 지금 찾으러 오라고.”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아 피식 웃었다. 우리 할머니는 또 그렇게 홀연히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