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쁨

밋밋하고 슴슴하지만, 감칠맛이 돕니다

by 우조

우리 집 네 살 막내아들이 기습적으로 말한다.

"나 아빠 주아해"

"엄마는?"

"엄마는…. (왜 고민하는 거야) 주아해, 차두 주아하구~"

이후로 끝없이 이어진다.

'주아해, 주아해.'

발음이 아직 어려운지, 좋아한다는 말이 그렇게 나온다.


아이는 어느 곳에서든, 들려오는 말 중 좋은 것을 나름대로 편집하여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이렇게 툭 꺼내 보였다. 그 조그만 마음에, 매일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차올랐다.

어른이 되어, 누군가에게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그 장소가 직장이든, 소개팅이든 그 외의 어디서든지, 대답 속에 뭔가를 어필해야 하는 피로감이 동반된 적이 많았다. 예컨대 직장에서 "근무 시간 빼고는 다 좋아합니다."라고 하던지, 소개팅남에게 "전 일단 잘생기면 너무 좋아요" 라던지 이런 마음의 소리를 결코 입 밖으로 낼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이후 아내와 엄마로 살아오면서는, 그런 질문을 들어본 지도 참 오래되었다. 나 자신도 그런 것은 잠시 옆으로 밀어두고, 나중에 생각하자고 살아온 지도 벌써 십 년이 되었다. 그런데도 아주 가끔, 지인들을 만나면 고맙게도 그런 질문을 해주는 이들이 있다. 그럴 때면 아주 건조하게 말한다.

"뭐 쑥스럽게 그런 걸 물어요, 전 다 좋지요. 뭐, 애들 등원시킨 직후가 제일 좋고."


혼자 있는 시간! 그것만 확보되면, 세 남매 육아에 정신없는 마음에도 왠지 여유가 찾아올 것만 같고, 이것저것 설렘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실현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아이들이 모두 학교와 어린이집에 가 있는 시간, 어쩔 수 없이 살랑살랑 마음이 들뜬다. 좋아하는 글쓰기 시간도 가질 수 있고. 이렇게 된 김에 오늘은, 나도 우리 집 막내처럼 주아하는 것들을 떠올려볼까?

나라는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루틴'이다. 이것은 일상에 미리 그려 넣는 굵은 선과도 같다. 작품으로 완성될 그림의 기초가 되는, 보이지 않아도 가장 중요한 스케치 작업. 지난 한 해 동안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가는 데 꽤 공을 들였다.


우리 집은 총 다섯 명의 서로 다른 인격체가 북적거린다. 인생의 계절도 모두 다른 이들은, 정서와 요구도 아주 다양하다. 동시다발적으로 춥고, 덥고, 화나고, 신나고, 우울하고, 재밌는 상황이 이어진다. 대체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분주한 시장터 느낌. 나는 이곳에서 물리적 시간의 대부분을 아내와 엄마로 산다. 매일 변화무쌍하게 자라나는 세 아이는, 각 나이에 맞게 챙겨줄 것이 달라서 엄마의 손이 꽤 많이 가는 시기이다. 학교와 어린이집 생활을 위해 매일 준비할 것들과, 병원 예약 스케줄 같은 것, 여기에다 누군가 학원이라도 한 군데 다니게 되면, 동선과 일정을 곱하기 3으로 계산해서 다시 짜야 하므로, 본의 아니게 조급한 매니저 마음으로 살게 된다. 이렇게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아이들의 일정에 과몰입하다 보면, 이들의 컨디션과 외부적인 상황에 따라서 나도 금세 휘청거리곤 했다.


이처럼 바쁜 일정을 가지 치듯 쳐내면서, 아이들에 대한 내 마음은 어떨까. 어느 한 명 서운하지 않게 사랑을 주고 싶다. 두루두루 서로를 존중해가면서 조화롭게 잘 자랄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도 가득하다. 다른 무엇보다 성품이 바르고 좋은 친구로 자라가도록, 먼저 좋은 어른의 모습을 삶으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가득하다.


엄마로서의 삶은, 반강제적인 체질 개선의 시간과도 같다. 매일 한 뼘씩 커가는 아이들의 내면에 눈높이를 맞추는 삶. 내 시선은 잠시 내려놓고, 아이들의 이야기에 매 순간 귀 기울이는 삶. 아이들에게는 당연한 이치인 것을, 나는 엄마의 자리에서 새롭게 배워가는 일상.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이상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마음, 예측불가능한 매 순간을 완벽하게 대처하고 싶은 마음들이 공존한다.


그런데 내가 이것을 실현하는 것에, 핵심적인 장애물이 있었으니 바로 저질 체력과 심약한 정신력이다. 이상적인 꿈에 목마른, 현생의 병약한 아줌마. 서툰 엄마의 몸과 마음이, 제대로 해내는 게 없는 것 같아서 나는 매일 좌절하고 자책했다. 일상은 그런 내 바닥을 매 순간 직면해야 하는 형벌처럼 느껴지고, 새벽마다 눈뜨는 것은 얼마나 부담스러웠는지. 오랫동안 그렇게 엄마인 내 자신을 스스로 환영하지 못하고, 자주 미워했던 것 같다.


그런 시간을 보냈던 내가, 일상을 비로소 감사하게 여기게 된 계기가 있었다. 나라는 엄마도 충분히 괜찮다, 그리고 앞으로 더 괜찮아질 것이라고 신뢰하게 된 계기라고 해야 할까. 그것은 나만의 루틴을 조금씩 일구어가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나는 이제 ‘엄마’라는 존재를 새롭게 정의하면서, 좋은 엄마로 회복되어가는 중이다. 별건 없지만 그 루틴을 여기 한번 쭉 적어볼까.

보통 6시에 기상한다. 눈이 떠진다고 몸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대개 마음이 아주 난리 요동을 치면서, 갑자기 '시작도 안 한 하루 미리 포기하자, 잘 수만 있다면 내 하루를 기꺼이 바치리. 이불 밖에 너무 위험해'와 같은 생각으로 침대에 계속 붙어있다. 그렇지만 곤히 자는 세 남매의 숨소리가 들려오면 그것이야말로 본능적인 알람이다. 자발적으로 일어난다. 정말 진심으로, 짧은 시간이라도 혼자 고요하게 있고 싶기 때문이다.


도둑처럼 슬그머니 거실로 나가서 제일 먼저 포트에 물을 넣고 끓인다. 그동안 45도 미온수를 천천히 마시면서 멍하게 서있는다. 어느새 물이 100도까지 끓어오르면, 거기에 찬물을 적당히 섞어서 따뜻해진 작두콩 차를 들이켠다. 그 첫 모금으로, 간밤의 개꿈이나 뭐 이런 찝찝한 것들이 모두 해장 되는 느낌이다. 왠지 그 한 모금으로 오늘 하루 옳은 시작을 한 느낌이다. 싱크대에 기대어 서서 그렇게 홀짝홀짝 몸을 깨운다. 잠시 후 작두콩 차의 효능이 바로 나타나기 시작한다(지금 茶 파는 거 아님). 서늘한 전신이 따뜻하게 데워지면서, 코가 뚫리고 목이 이완된다. 기관지에 좋다고 하더니, 비염에 좋다고 하더니, 혈액순환과 염증 제거에도 좋다고 하더니, 정말 틀린 게 하나도 없네? 매일 마시면서, 매일 신기하다(아 제발 안 마셔본 사람 없게 해주세요.). 그렇게 간밤에 굳어버린 근육도 스르르 풀리면서 뇌도 회전하기 시작한다.


머그잔을 들고 책상으로 가서 앉는다. 아직 밖은 푸른 새벽이다. 여명이 밝아오기 전에, 나의 RITUAL을 시작해볼까, 한 3년 정도, 매일 아침 감사 노트에 적고 있다. 그냥, 노트를 펴고 날짜를 쓰고, 매일 열 가지의 감사기도 제목을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나는 한때 정말 지독하게, 회의적이고 비관적이라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엔가 그런 한결같은 어둠도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날부터 종이에 하나씩 적어보았다. 지극히 실험적으로 시작해본 것인데, 하루, 이틀 써나가니 또 그런대로 쓸만했다. 처음에는 도무지 뭘 적을지 몰라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주님, 오늘 하루를 제게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쓰고, 또 생각이 안 나서 끝.


다음날에는 좀 더 보태어서 인생이야 언제든 밤새 안녕일 수 있지만, 그래도 '오늘 우리 가족을 간밤에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도 쓰고. 그렇게 한 줄 한 줄 당연한 모든 것들을 낯설게, 새삼스럽게 바라보며 시시한 것들도 모두 감사해보았다. 가끔은 말이 마음을 만들어내는지, 그렇게 쓰다 보니 또 안 쓰면 찝찝했다. 그래서 매일 썼다. 그렇게 감사의 시선은 오래도록 내 안에 머무르고, 자연스레 타인을 향하기 시작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일정이라도 그때 만날 사람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그와 시간을 보낼 나의 태도 언행을 생각하면서. 어떤 상황이라도 사람과 사람의 만남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예의와 다정함이 있는 순간이길 바라면서, 내가 먼저 그 순간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미리미리 모든 것에 감사한 노트를 써 내려갔다. 사실 생각해보면 감사가 잘 나오지 않는 상황이 더 많았지만, 싫은 것들이 떠오를수록 나는 더 반전의 문장을 써 내려갔다. 그렇게 미련하게 적어 가다 보면, 신기하게도 위트가 솟아나고, 정말로 주어진 오늘의 삶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가끔 예정된 스케줄을 소화할 때면, 내 앞의 상대방은 내가 아침에 미리 감사했던, 바로 그 사람이어서 좋았다. 만나고 있는 마음의 기저에, 그는 모르는 나만의 애정이 생겨서 좋았다. 그렇게 열 가지 감사기도 제목을 어떤 날은 수월하게, 어떤 날은 쥐어짜 내며 쓴다.


바로 이어서 성경을 읽는다. 이 부분이 내 루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모든 작업 전에, 가장 중요한 일. 성경은 주로 정독과 통독을 하는데, 이른 새벽처럼 시간이 충분할 때는, 한 두어 시간 가까이 계속 읽어 내려가면서 묵상(Meditation)을 하는 것이다. 어떤 날은 성경 말씀 한 문장에 걸려서 '묵상노트'의 필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질 때도 있고, 어떤 날은 주르륵 읽어 내려가면서 결국 만나는 말씀 한 문장과 맞닥뜨린다. 어떤 방식으로 읽어가던지, 이 시간의 핵심은 스스로 성경 말씀 안으로 들어가서 최대한 깊이 헤엄치다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 몰입의 시간을 맛보고 그것이 점차 누적되면, 그때는 이미 '미라클모닝'이라고 하는 아침 루틴을 만들려고 굳이 애쓰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그 시간 거기에 있게 된다.


그렇게 한참을 충분히, 그 세계에 거하다 보면 우리 집 세 남매가 차례대로 일어나 내게 와서 안긴다. 그때의 나는 이미, 일종의 여유를 확보해놓은 상태라 그런지 아주 인자한 어머니상으로 그들을 맞이한다. 그 후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본격적인 등교, 등원 준비를 한다. 나는 학교에 안 가는데, 마음은 벌써 큰 아이의 교실에 있는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 재촉하는 한국 어머니. 그러나 절대 넘어가지 않는, 느긋한 우리 집 딸내미. 남편은 이미 새벽에 출근한 상태이다.


양질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만큼의 체력은 안 되지만, 반드시 단 하나는 제대로 챙겨주려고 하는데 바로 '해독주스'이다(생각해보면 어린애들이 뭐 그리 해독할 게 있을까? 싶네). 아무튼 유기농 야채와 과일 재료로 만든 주스, 시중에서 ABC 주스라고 하는 것을 직접 만들어서 함께 먹는데 이 또한 내가 몇 달 먹어보니, 끊을 수가 없다. 아이들 것은 조금 달달하게(그래야 쭉 들이킨다), 어른 것은 사과와 비트, 익힌 당근과 레몬 한 개, 발효 청국장 가루 등을 넣어서 남편과 나눠마신다. 생각해보면, 이게 내 몸에 가장 좋은 해독이 되었는지 건강 주스를 마신 후에, 면역력이 좋아진 것을 느낀다. 뭔가 체질도 건강하게 변하는 것 같다. 슴슴한 시골 된장국처럼 소박하고 건강한 밥상이 늘 그립다. 거기다 눈에 띄게 좋아진, 감동적인 쾌변 습관(화장실에서 늘 '건강 주스 모르는 사람 없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등원한 이후, 또는 적당한 시간에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러 나간다. 하교, 하원 시간까지 촌각을 다투는 기분으로, 흥미진진하게 일정을 보낸다. 맡겨진 일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거나. 저녁에는 스트레칭 동영상을 틀어놓고, 30분 정도 깊이 호흡하면서 전신 스트레칭을 한 후에 잠에 든다. 동작 하나하나마다 코로 숨을 들이쉬고, 입으로 내쉬면서 30분을 하다 보면 저절로 단잠에 빠진다.

이 루틴이라는 것은 평소에는 잘 깨닫지 못해도, 내가 전혀 지키지 못할 것 같은 날에 그 본색을 드러낸다. 바쁜 일정으로 아침부터 부랴부랴 나오거나, 다른 일에 치여서 시간에 밀려다니다 보면, 미처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몸과 마음이 자기 좀 봐달라고, 질투의 화신이 되어 나를 몰아세운다. 생각보다, 이런 사소한 습관들이 나의 세계를 붙들고 있다는 것에 묘한 경외감이 생긴다. 그 습관들이 나를 애정해주는 시간이 꽤 좋다.


가끔은 이 루틴에 집중하느라, 사람을 놓칠 때도 있다. 그때는 좀 별로라고 생각하며, 과감하게 루틴을 날려버린다. 루틴의 콘텐츠는, 나를 돌보고 나아가 타인을 돌아보는 삶을 위해 존재할 때 가장 양질의 것이 될 수 있다. 좋은 사람으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갈 수 있는 히든카드 같은 것이긴 하지만, 그걸 지키겠다고 너무 목숨 걸지는 않기로 한다.

사람은 루틴으로 살지 않고, 은혜로 산다… 좋은 엄마는 언제나 은혜에 기댄다. 나는 목숨 걸지 않는 선에서, 나를 지키는 이 루틴을 참 좋아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