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엄마의사생활
이어 두 번째 나의 전략은, 차별화이다.
다른 이들과의 차별성으로 어필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약간의 모험심을 발휘하여 나만의 특별한 스타일을 창조하던지, 아니면 그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뭔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과 달리 특별하다고 느끼게끔 하는 것이다.
그가 어떤 스타일(예컨대, 외모, 품행, 성품 같은 면)을 좋아하는지, 취향에 대해 도무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교회 내에 아름답기로 소문난 자매들을 먼저 관찰하고 모방했다. 그들에게는 뭔가 다른 것이 있겠지, 생각하면서. 한 명 한 명 자세히 보니 자매마다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러나 각자 매력이 다양하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예쁘니까, 공통적인 뭔가를 찾기는 어려웠다. 따라 해보아도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늘 어색하고, 나 자신이 우스꽝스러운 느낌. 그래서 결국 제일 자연스러운 편을 택하고 만다.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 가장 절대적인 우선순위니까, 일단 삶의 일 순위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도 저것도 다 잃어버릴 것 같아서. 덕분에 차선의 일들에도 비로소 확신이 드는 결정을 할 수 있었다. 내 모습 그대로 오롯이 드러날 공동체 안에서 가장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보자. 그러면 언젠가는 그 사람 앞에서도 좋은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인사할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그냥 평소처럼 후드티나 입고 다녔다. 나만의 시시하고 특별한 캐주얼 스타일로.
그리고 나는 그에게 유난히 적극적인 자매였다. 조금 부담스럽다 싶을 정도로 인사도 크게 하고, 가끔은 용기 내서 카톡과 문자도 보냈다(대부분 읽고 그대로 잡수셨지만). 오직 그에게만 그렇게 했다(여러 사람과 동시에 애정이 어린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임).
그러나 몇 달 동안 그렇게 성실하게 어필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반응도, 진전도 없었다. 철옹성 같은 수줍음으로 담을 쌓은 그는, 교회 내에서도 두더지처럼 조용히 다니느라 얼굴을 자주 볼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 선교 시즌(대부분 교회 청년부에서는 여름과 겨울 등 방학과 직장 휴가 일정에 맞춰서 선교팀을 모집, 선교 준비를 한 후에 해외나 국내 낙도 지역으로 선교하러 간다. 그곳에서 일정 기간 체류하며 복음을 전한다)이 돌아왔고, 그때 책임을 맡은 담당 교역자 중에 그가 합류하게 되면서, 우리는 드디어 대면하였다. 그리고 남쪽지방 낙도로 떠난 선교지에서 역사적인 첫 대화를 나누게 된다.
선교지에 가서도 형제들은 집짓기 등 노동의 현장에서 섬기고, 자매들은 어르신들을 방문하거나 다른 일정으로 섬기게 되어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유일하게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는, 하루 사역을 다 마친 후 저녁 식사 시간뿐이다. 그때도 모두 분주하게 저녁 준비를 하면서, 나 또한 테이블을 세팅하던 중이었다.
그때 그가 나에게, 나에게만 개인적으로 첫 마디를 건넸던 것이다.
“저… 자매님 거기 앞에 숟가락 좀 주실래요?”
“??!”
그렇게 고대하던 첫 대화인데, 지금 숟가락 타령이 웬 말인가, 나는 그동안 상상해왔던 모든 문장을 빗나간 그 한마디에 심히 당황스러웠다. 아, 허무하다.
“여기요…”
숟가락을 힘없이 건네드리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음식을 날랐다.
그런데 그가 내게 이렇게 묻는 것이다.
”저 가은자매님은 무슨 일을 하세요?“
“???”
숟가락을 건네드리니 갑자기 제 직업이 궁금하시다고요? 뭔가 한 줄기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도사님도 지금만큼은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 속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소소하지만, 정성껏 공들였던 수고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밥 차리느라 다들 분주한 식당에서 나는 친절하고 다정하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그 외에 그가 묻지 않은 정보들도 차분하게 알려드렸다.
안색을 살펴보니 나쁘진 않다. 내 말에 수줍게 웃기도 하고, 반응도 해주시는 것을 보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것 같던 저녁. 나는 흥얼거리면서 대충 배를 채웠다. 바로 이어진 휴식 시간, 나는 숙소 바로 앞으로 길게 난 부둣가에 홀로 나가서 앉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름날의 해 질 무렵, 바닷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힌다. 수평선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나는 조용히 나이스를 외쳤다. 갈매기가 끼룩끼룩- 요란하게 외치며 저 높은 하늘 위로 비상한다. 겉으로는 고요했으나, 내적 환호로 덩실거리는 나를 향해서 마치 축하 메시지라도 보내는 것 같다.
그 대화의 결실이라면, 이제 전도사님은 나에게 먼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 고마움이 동력이 되어 나는 그 이후에도 꾸준하게 짝사랑을 이어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한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며 쏟아낸 마음과 소소한 전략을 실행해오던 나의 태도가 결과적으로는 평판으로 작용한 것 같다. 전도사님이 당시 가장 신뢰하던 황 목사님(찬양팀에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신 그 분이다)이 지나가면서 나에 대해 말씀하신 결정적 한 마디로 인해, 그는 내 존재를 생각하게 되었고, 조금 특별하게 여기며 마음에 품게 되었다고 한다.
급한 결말로 마무리하기는 좀 그렇지만, ‘마침내’ 나는 그의 고백을 받는 지경까지 이르러... 1년반의 교제 끝에 서른 살 4월 봄에는 하나님 앞에서 결혼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십 년 사이에 그를 심하게 닮은 세 남매를 낳았다. 내 곁에는 나비효과의 주체로서의 그가, 세월의 흐름을 정직하게 관통해버린, 내 최선의 결과로써의 그가 존재하고 있다. 교회가 아닌 여의도 한복판에서, 일대일로 처음 만났던 첫 데이트부터 지금까지 매일 수많은 시트콤과 다큐를 번갈아 찍고 있다. 내 옆의 그는 이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고유하게 잘생겨졌고, 섹시하며, 매력 있고, 참 좋은 사람이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을 하는 우리 집 가장이다(이 정도로 결론 맺으면 모두에게 이로울 것 같다).
삶 속에서 방황하며 걸을 때는 나이를 잊고 산다. 내가 한 시절 뜨겁게 짝사랑했던 그와 함께 그런 날들을 지내오다니, 힘들면서도 좋을 때가 더 많았다. 그래도 마땅히 통과해야 하는 인생의 계절들을 분주하게 맞이하느라,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옷장을 열어보니, 마치 마법처럼 내가 그 시절 좋아했던 그 남자는 뿅 사라지고, 그 남자를 사랑하려 온 생애를 걸었던 그 여자도 사라지고, 첫 데이트 때 그가 입었던 흰색 꽈배기 니트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세월 속에 함께 이리저리 치인 그와 나의 모습이 처량하지는 않다.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다가 남은 몸뚱아리, 그 육체의 노화가 경이로워서, 어느 날은 고이 접어둔 그 니트를 과감히 버렸다. 다만 겨울만 오면, 그를 끌고 니트 사냥을 나서는 병이 생겼다. 아직도 잔잔하게 남은 그리움으로,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그 남자를 찾고 싶어서(이젠 어디에도 없어, 제발 정신 차려).
그러나 언제나 미괄식으로 멋지게 수렴되는 남자가 좋은 것이다. 살아보니 좋은 남자, 그런 사람이 더 좋은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묘한 질투를 일으키는 착하고 손해 보는 성품(장단점 있음)과 우러러보고 싶은 마음(장단점 있음)이 공존하는 사람.
이러한 그를 지금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느냐고 자문해본다. 마흔에 접어든 내 사랑은 이제, 일상의 보이지 않는 미세한 부분에 대한 헌신으로 나타난다. 그가 싫어하는 말을 굳이 하지 않는 것이나, 내가 내키지는 않지만, 그가 좋아하는 것이면 귀찮아하지 않고 기꺼이 해주고 싶은 마음, 남편이 아니라 남의 편인 것 같은 순간이 와도 저변에는 신뢰와 존경을 남겨두는 것, 만사가 귀찮은 날에도 그를 위한 루틴을 소중히 여기는 것, 무엇보다 그의 말을 경청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며 지켜봐 주는 것, 힘들어 보일 때는 홀로 쉬게 해주는 것, 농담으로도 헤어짐을 생각하지 않으며, 내가 심술이 날 때 꼭 내뱉어야 직성이 풀리는 말을 내뱉지 않고 한번 꾹 참는 것, 그에게 불만이 생기면 차라리 나를 한 번 더 안아달라고 말하는 것, 미안할 때는 진솔하고 담담하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체력이 닿는 만큼 소박한 집밥 음식을 차려주는 것 등 자잘한 순간의 결단들이 모여서 그를 향한 최선의 사랑이 된다. 남녀가 만나 한 몸을 이룬 부부 공동체라는 것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자기만의 가치관과 습관 등이 서로 다른 것을 매일 확인하고 어리둥절하게 바라보다가, 결국 맞춰가는 여정이다.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없을 때조차도, 그로 인해 마음을 헤매는 동안 내 사랑의 지경은 더 넓어지며, 태도와 인격이 강제로 성숙해지는 과정이다.
그와 살다 보면, 성경 신약 속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이 생각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 구절들에 가끔 내 이름을 넣어본다. 가은이는 오래 참고, 가은이는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무엇 하나 잘 들어맞지 않아서 세상 민망해진다. 그래도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에, 최선을 다했다는 고백을 기어이 토해내기를 바라면서 이 말씀을 닮아갈 것이다. 자괴감에 오열하면서도, 사랑할 수 있는 오늘에 감사하면서.
뜬금없이 내가 부부의 일원으로 살아가며 화목한 선을 지키는 꿀팁을 적어본다면,
이때까지 쓴 이 모든 추억(오직 나만의)에 대해, 남편에게 “기억나요?”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기억을 못 한다. 그는 아무 생각이 없다. 무념무상이다. 나와 사는 남자는 그것을 생존으로 택하였다. 백번 양보해서 그가 기억난다고 한들, 서로 대부분 하늘과 땅 차이로 왜곡되어 있고, 각자 편의에 따라 얄궂게 편집되어 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무드를 추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 시절 한 곳에 있었지만, 서로 다른 온도로 춥고 더웠다.
그런데도, 기억나? 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는,
“여보, 갑자기 그때 생각이 나네요. 예전에 우리 그런 일이 있었잖아요, 당신은 기억 못 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어쩌고저쩌고, 그때 난 정말 좋았다고요.” 이렇게 운을 띄운다. 그러면 자상한 그가 “아,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당신이 좋다니 기억이 날 것도 같네요. 정확히 그게 언제였죠?” 이렇게 응수한다. 그러면 나는 “아 정말요? 그걸 기억할 수 있다니, 정말 고마워요! 그저 그때 그 시절을 같이 떠올리고 싶었어요!” 하고 마무리하는 대화를 상상한다.
아쉽게도 우리 부부는, 아직 이런 고상한 대화에 이르지 못하였다.
다만 이렇게 말한다.
나 :“여보, 그때 생각나요? 우리 그때 거기서~어쩌고저쩌고~~ 했었잖아요. 아마 기억 못 할 수도 있는데,”
그: “아, 네”
나: “네? 기억한다고요??
그: 네??
나: 기억 못 한다고요??”
그: 네….
나: “아. 그래요. 그럼 그렇죠. 숟가락 들고 마저 식사하세요”
-쿠키영상처럼 고백하자면,
사실 그에게 고백받았던 날, 결론적으로는 짝사랑의 목표를 마침내 달성한 날, 생각보다 설레지도 않고, 가슴이 마구 뛰거나 그런 것도 없었다. 생각보다 아주 당황스러웠고, 숙연해졌다. 뭔가 ‘아, 아직은 아닌데, 나 더 달릴 수 있는데’ 하면서 좀 싱거워졌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 나는 사랑에 질주하는 야생마였지. 이제는 마구간으로 들어갈 때인가. 마음이 복잡해져서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저 먼저 집에 갈게요. 죄송합니다.” 하고는 집으로 급히 돌아갔다.
그때 알았다. 나는 타인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달려왔던 시간 속의 내가,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싶던 내 모습이 좋았던 거구나.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사랑을 배우고 배려를 배우고 예의를 배웠던 내 마음이 참 좋았던 거구나. 용기 내 달리던 작은 몸짓들이 나 스스로 활기가 되었던 것이구나. 그도 나도 윈윈한건가. 본의 아니게 그날 그렇게 퇴장해버린 이후로 힘의 균형이랄까, 우리 사랑의 이해와 판도가 바뀌어버렸다. 그의 마음에 애닳는 무엇, 밀당과 같은 긴장감을 가져다주었다나(결코 의도한 것 아님). 다행스럽게도 우리 안에 사랑의 온도가 아주 적절하게 이글거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