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엄마의사생활
“아, 이제 정말 어떻게 되어도 좋아. 나 진짜 전부를 쏟았거든.”
운전석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평소처럼 무라노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시크한 회색빛에 둥실둥실한 뒤태를 가진 이 아이를 3년 전 캐나다에 와서 처음 만났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중고차 가게로 데려다주는 길에 마지막 인사처럼 남긴 말이었다. 타인 앞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맹약하는 것이 꼭 생색내는 모양 같아 아무 말 않고 견뎌낸 시간. 그 모든 여정의 독백을 껴안아 주던 유일한 친구.
살아오면서 이런 말들을 허공에 내뱉은 적이 몇 번 있었다. 마음을 온전히 쏟아부어서 격렬한 노동을 하고 나면, 지쳐 쓰러지기 직전에 본능적으로 토해내던 말. 정말 최선을 다했다고, 나는 이제 어떻게 되어도 좋다고, 아무렴 괜찮다는 고백을 헐떡거리며 내뱉는 것이다. 실패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그런 상태로 달려온 것마저도 모르는 채 몰입하다가 비로소 깨닫게 된 순간 혹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견디어 낸 후 마침표를 찍게 된 순간 나는 주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 이런게 최선을 다하는 거였구나. 아, 나 이번에 정말 최선을 다했네!’ 하면서.
올해로 마흔이 되었다. 나이가 들수록 효율성을 무척 따지게 된 아주머니 1인. 무엇인가에 최선을 다했던 순간들을 회상해보니, 나의 태도는 청년 시절에 비해 분명 어딘가 많이 변했다.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는 최선일지, 내가 뛰어들어도 되는 일인지 손익을 계산하고 나서 별로 희망이 없어 보이면 애초에 시도하지도 않는다. 이십 대 시절에는 청년의 혈기였는지 몰라도 일단 마음이 동하면 마구 뛰어들었는데. 궂은 장맛비에도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우산도 없이 내달리던 그 시절의 나는 어딘가로 증발해버렸다.
그중에서도 나의 최선에서 가장 멀어진 영역은 아마도 사람을 향한 부분 같다. 누군가는 최선을 다해 사랑하겠다는 용기 같은 것. 이십 대 시절에는 사랑하는 일에도 겁이 없었다. 내 안에 절대 소멸하지 않는 에너지가 있다고 여겼다(체력을 과신한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이상적이고, 모호하면서도 기이한 시절이었다. 젊다는 이유로 자비롭게 주어지는 시간과 기회 앞에서 스스로 한계치를 모르고 마구 달려갔다. 사랑에 질주하는 야생마 한 마리처럼, 열정에 취해 나도 모르게 나르시시즘에 빠지기도 하면서. 그러나 지금 나란 사람은 사랑이란 것에 많은 품이 든다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고, 많이 주저한다. 그럴 때면 씁쓸한 마음으로 그때 그 시절을 뒤적거려보는 것이다.
오늘도 갑자기 한가지 사건이 떠오른다. 아니 내 생애 첫 나비효과를 맛보게 된 거창한 연대기라고 할 수 있겠다.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뉴욕에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을 적용한 사례가 내게도 있다는 말. 첫눈에 반한다는, 그 말도 안 되는 주관적 감정의 파닥거림으로, 현재 내 자신도 감당 안 되는 태풍권에 들어와 있으니까.
시간은 나의 이십 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늦은 밤, 금요예배를 마치고 교회에서 막 나오던 길, 함께 예배드렸던 청년부 친구들과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이었다. 점멸하는 신호등을 신경 쓰느라 잠깐 고개를 돌렸는데, 누군가 내 옆으로 훅 지나갔다. 아, 그 순간 갑작스럽게 눈에 이로운 남자의 형상이 스쳐 간다. 때는 마침, 어스름한 저녁 달빛이 은은하게 비추던 봄밤이었다. 그래, 문해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여기서부터 행간의 의미를 짚고, 상상도 해보면서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사람이라는 실루엣으로도 반하기에 충분한 날, 그리고 나는 여전히 혼자인 날. 이 정도면 때가 찼고, 충분히 기다렸다 싶은 날. 뭔가 들뜨면서도 만족스러운 정체를 모르고, 마음이 먼저 앞서가 버린 날이었다.
예측할 사이도 없이, 알지 못하는 그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나는 당시에도 이 말이 참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더더욱 믿지 않게 되었다. 아니 이 말을 말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무증상으로 흩어지는 공중생활 속 ‘방귀’로 여긴다. 그런데도 인간들이란 곧잘 상황에 따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며, 그때는 아니지만, 지금은 또 괜찮다고 마음대로 말해버리니까. 나도 거기 슬그머니 끼어들어서 야비하게 고백하자면, 정말 그 순간만큼은 첫눈에 반했다. 지금의 그를 보면, 다들 조금 갸우뚱하지만, 아무튼 실화라는 것. 지금도 명징하다, 그 봄날 밤 불어오던 나긋한 바람이 내게 그려준 지도. ‘나를 따라와, 모든 것이 순조롭고 좋을 거야’라고 손짓하던, 감미로운 속삭임(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정장 바지에 하얀 셔츠를 단정하게 소화하는 보통의 체격, 사무 가방을 사선으로 메고 지나가던 그의 첫인상은 성실하고 지적인 교회 오빠 느낌이었다. 뭔가 고된 하루의 끝자락에 피곤함으로 지친 듯,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면서 터덜터덜 귀가하는 발걸음이라니. 무심하게 매력적이다.
“언니! 저분 보여요? 이번에 새로 오신 유년부 전도사님이래요. 훈훈하죠?”
주님은 그때 이미 내 안에 거침없이 울려대는 팡파레를 들으셨을 것이다. 소란스러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후배의 말은 마치 속보와 같았다. 긴급하게 날아든 정보 한 줄에 담긴 키워드를 즉시 뇌 회로에 입력하고, 상황을 분석해본다.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결론을 신속히 내린 다음, 대안을 모색한다.
“응? 누구라고?”
이 말을 던지면서, 시간을 벌었다. ‘이번에 새로 부임한, 유년부 전도사님, 그리고 훈훈하다.’라는 것이 핵심 정보이다. 우리 교회라니! 우리 교회라니~~ 우리는 여기서 스쳐 갈 운명이 아니군요, 아이고 반가워요! 가만있자, 유년부 전도사님이라면 통상 신학교 학생일 것이고… 아차,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정보가 누락되었다. 미혼 혹은 기혼 여부에 체크가 안 되네. 미혼이라면 지금 교제하는 여인이 있는가 없는가의 여부도 역시 모르는 거네. 여기서부터는 조금 초조해졌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평소처럼 시끄럽게 농담하면서 웃어넘기지도 않았다. 고요하게 처리하려는 내 모습을 보니, 이미 여기서부터 나의 최선은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전도사님이라니, 미혼이라도 쉽지 않겠구나. 그러니 더욱 애써야겠다 싶은, 자발적으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래? 난데없다, 난 왜 몰랐지?
(진의: “지금부터 내가 제일 잘 알 테야, 너무 괜찮다, 정보를 준 그대, 너무너무 고마워”)
그 후 날이 밝은 대낮에 교회에서 다시 그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아무도 모르게 앞으로의 행보를 확정 지었다. 누군가는 너무 위험한 외모지상주의라고 하던데, 그러나 조금 솔직하게 생각해보자. 남녀가 서로 유일하게 아름답고, 멋있는 존재로 여겨지기 전에는, 누구든 외모 먼저 보이지 않나?(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상당히 훌륭하다, 인정.) 나도 그랬을 뿐이다. 사실 나중에 어떤 좋은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음, 난 네가 진짜 외모를 밝힌 것 같진 않은데?”
당시에는 기분이 좀 안 좋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 객관적인 눈으로 돌아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많은 순간 친구가 나보다 정확할 수 있다. 그리고 친구의 직언은 오래도록 가치가 있다.
아무튼 그는 ‘당시’ (키워드임) 내가 꽤 선호하던 외모의 소유자였다. 얼굴의 눈코입 선은 제법 굵으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호감형(진짜 주관적이니까 오로지 그대의 상상력에 맡긴다), 거기에 굵은 안경테를 살포시 얹어 지성적 느낌이 슬쩍 비치는 얼굴. 키는 178센티미터 정도면 좋고, 예절이 바르고 몸가짐이 단정해야 한다. 심한 근육질로 신체를 크게 불리는 것은 도가 지나쳐 보여서 좀 그렇고, 겸손하게 다부진 체격을 소유하지만 드러내지 않는 강함이어야 한다. 목소리까지 감미롭고 좋으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거기다 알고 봤더니 인품이 훌륭하고, 착하기도 하며 여우 같지도 늑대 같지도 않은 면모, 그 어려운 면모를 가진 남자. 여기서 더 가볼까? 내 마음에 흡족한 옷차림새도 야무지게 정해놓았다. 계절마다 선호하는 것이 다른데, 주로 겨울에는 견고한 꽈배기선 이 적당히 들어간 아이 보리계열 니트를 자주 입는 남자(한가지 니트를 반복적으로 입으면 곤란함, 미세하게 다른 아이보리계열을 매일 청결하게 바꿔입는 것이 좋겠음), 울 니트여도 그가 입으면 캐시미어처럼 단단하고 부드럽게 귀티가 나야 하며, 청바지와 면바지 모양새가 골고루 자연스럽게 잘 맞는 느낌이면 딱 좋다(그러므로 하체 허벅지가 너무 굵어서도, 홍학처럼 파리하게 얇아서도 안 되는 신체적 조건이 요구됨). 그러면서도 하체가 육중한 편에 속하는 나보다는 굵은 남자여야 조금 다행스러울 것 같다. 뭐 별거 없지만 이 정도이다.
그 시절 삼 공 다이어리에 이 쓸데없는 내용을,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적어놓고 상상하면서 혼자 히죽거렸던 아줌마1인…
남모르는 첩보작전으로, 그는 아직 미혼이라는 것과 교제하는 분은 없다는 것, 나와는 네 살 차이라는 핵심 정보를 기어이 알아냈다. 그러나 작지 않은 교회 안에서 그와 마주치기란, 정말이지 힘든 일이었다. 어느 날엔가, 무심코 화장실을 나오던 길이었다. 세상에! 그 앞에서 딱 마주쳤는데,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인사를 하니 그는 내 얼굴도 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바쁘게 사라지는 뒤태로 수줍음 세포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소문으로도 샤이보이라는 것은 들었지만, 실제상황은 더 난감했다. 정말 쉽지 않은 길이겠구나.
교회 내에서 근무하는 교역자와의 만남은 누구에게나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결혼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면 애초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만큼 교회라는 신앙공동체 안에서는, 구성원들을 배려하여 신중하게 교제해야 한다. 아, 하필 반한 그대가 교회 전도사님이라니. 그 사람과 이렇다 할 대화의 기회조차 얻기 힘들기도 하고, 구조적으로 예상되는 어려움도 많고, 짝사랑을 접어야 할 이유를 생각하면 수십 가지가 넘었다. 그래서 마음이 이내 시들해 지려다가도 멀리서나마 그를 볼 때면, 그 모습이 얼마나 옳게 여겨지는지, 그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청년들 사이에 그에 대한 평판이 들려와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울 때면 ‘좋아하는 마음’이 더욱 모락모락 피어났다. 그러나 자신을 향해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이 여인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이 제일 큰 난관이었다.
짝사랑의 초기 동력은 상대를 향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마음이다. 이렇게 좋은 마음이 계속될 것처럼, 활기찬 자기 자신을 어쩔 줄 모르는 시기이다. 그 간지럽고 설레는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계속 기대하게 된다. 대부분 이때 혼자서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설정해놓고, 망상의 정점을 찍는다. 마침내 서로의 연인이 되는 것만큼 바람직한 결말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경험상 그것은 매우 닫힌 결말이다.
성격이 매우 급한 편이었던 나는, 과거에 밀고 당기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먼저 고백했다가 뻥 차였던 이력이 몇 번이나 있었다. 덕분에 짝사랑에는 어느 정도 개똥철학 같은 것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짝사랑은 나 혼자의 마음에 취하거나, 순간의 의지로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내 인생에 가장 좋은 사람을 만날 타이밍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단순하지만 명백한 진리를 마음에 품고서, 모든 만남을 그 여정 위에서 생각하는 훈련의 시작이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서로 잘 맞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도 있지만,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또한 그 단순한 두 가지 결론을 가지고, 곧바로 인생의 성패나 자존감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서로가 좋다면 고맙고 다행스러운 상황이지만, 그때조차도 다시금 신중한 탐색이 필요하다. 또한 내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상대의 마음에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면 마음은 쓰라리지만, 현실적으로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좋다. ‘아, 나라는 존재가 상대로부터 거부당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서로에게 적절한 상대가 아닌가 보는구나, 타이밍이 아닌가 보다’ 라고.
하지만 그렇게 마음 정리가 쉬우면, 다들 짝사랑에 큰 용기가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미숙한 마음으로, 자신을 끊임없이 비하하거나, 상대를 헐뜯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뭐 그럴 수 있다. 사람이니까 하루, 이틀 정도는 격렬하게 아파하며 끝내 시작되지 못한 사랑을 애도할 수 있다. 그러다가 다시금 우리에게 준비된 단 한 사람, 나의 영원한 짝을 생각하면서 가장 좋은 길을 모색해보는 것이다.
아무튼 짝사랑에도 닳고 닳은 나로서는 목표를 원대하게 잡지 않았다. 우선 훈훈한 전도사님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마음을 전하는 것까지만 해보자. 내가 딱 흥미진진하고 설레는 만큼만. 그다음 결과는 그때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결국 끝내 혼자 말도 둘이 함께 사랑할 수 있을까, 혹은 상처받게 될까, 이런 생각들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지금은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데 어쩌라는 말이야.
아, 좋아하는 마음이 나 자신을 갉아먹지 않으며,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짝사랑이란 얼마나 이상적인 것인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만큼 내 자신을 끊임없이 새삼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이번에야말로 진심으로 잘 되고 싶지만, 내 마음도 소중하게 잘 달래가면서, 건강한 모습으로 고백해보고 싶다. 여기에는 있는 모습 그대로 드러내는 용기 또한 들어간다. 내가 최선을 다했다고 느꼈을 때, 나도 모르게 토해내던 말처럼, 이 짝사랑이 어떻게 되더라도 아무렴 괜찮다는 마음으로 고백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나름의 전략을 세우게 된다. 그에게는 불특정다수 중의 한 명뿐일 나를 과연 어떻게 어필할 수 있을까? (지금부터는 내 개인적인 견해가 아주 강하게 반영되어있으니 참고해주시길 바라며)
첫 단계는, 스며들기 전략이다. 그의 활동반경 속에 최대한 풍경처럼 스며들어야 한다. 그러나 절대 눈치채지 못하게, 마치 길가의 전봇대처럼 시야에 있는 듯 없는 듯 자연스럽게 숨 쉬고 있는 것이 좋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튀어보겠다고 돌발행동을 하면 곤란하다. 아직 내 존재를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조급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임한다. 더구나 철옹성 같은 수줍음으로 무장한 그에게는 무엇보다 안정적인 분위기가 중요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고민해보았다.
그와 내가 한 공간에 있을 수 있는 기회는 예배 시간뿐이었다. 그것도 정말 어쩌다 한 번, 각자 드리는 예배 시간이 달라서 마주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금요 철야 예배 때는 언제나 그의 뒤통수를 볼 수 있었다. 아쉬운 부분이라면 정면에서 그의 시야에 들기란 불가능하다는 것.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 입장에서는 심한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는데, 무모하게도 찬양팀 오디션을 보러 갔다. 찬양팀을 담당하시던 황모 목사님은 내 노래를 한 소절 들으시더니, 신중하고 젠틀하게(그러나 조금 난감한 어조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음… 자매님 꼭 싱어를 해야지만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 다른 파트도 한번 같이 고민해볼까요? 자매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나 “아니오”라고 말하는 내 단호함이, “저는 오직 싱어로만 주님을 찬양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내 간절함이 아마도 그날 오디션을 뚫어버린 것 같다. 나의 노래 실력을 내가 잘 아는데도, 스스로를 뻔뻔스럽게 모른 척하는 것은 솔직히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일은 성사되어야 했다. 목사님의 결국 자격 없는 나에게도 기회를 주셨고, 그 후 긴급 트레이닝을 받으며, 마침내 찬양팀 멤버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 후, 나는 금요 철야 예배팀에서 정말 보람차게 열심히 활동했다(정말 진짜 순수하게,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저의 우선순위였습니다…아, 오해하지 말길 바라요).
사실 그는 지금도 모르지만, 누군가 당시 나의 동선을 카메라로 찍었다면 그가 다니던 거의 모든 시공간에 지나가는 행인 1, 2 처럼 찍혀 있었을 것이다(내가 생각해도 소오름). 아무튼 매우 자연스러운 공기의 흐름처럼, 그의 시야 안에 풍경처럼 스며 들어가는 데 성공은 했다는 이야기. 저 자매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던 의도였는데, 그는 전혀 기억을 못 한다는 이야기. 나는 길가의 전봇대보다도 못한, 진짜 풍경이었다는 이야기. 그는 정말 나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전하게 되어 유감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