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엄마의사생활_들어가며
어릴 적부터 우아한 삶을 탐미해왔다. 그래서인지 ‘우아하다’는 말의 어감은 언제 들어도 반갑게 확 감기는 맛이 있다. 학창 시절 선생님이 써 주신 통지표에 ‘이 학생은 용모가 단정하고, 품행이 방정하여‘라는 문구가 보이면 하루 종일 기분이 들뜨던 아이, 그게 나였다. 마치 우아함의 새싹이라도 틔운 것처럼 말이다. 나만 그런가? 나이가 들수록 다른 것은 제치고, 일단 우아해지고 싶다. 품위와 고상함에 목마르다. 세상에 존재하는 멋진 형용사들은 왠지 우아하다는 말로 수렴될 것만 같다.
언젠가부터 나는 이 단어를 온몸에 휘감고 싶었다. 아니, 오장육부 곳곳에 스며들기를 바랐다(뼛속까지 우아한 인간이라니, 어쩐지 그 앞에서는 소화가 안 될 것 같기도 한데). 왜 그랬을까? 어려서부터 내 곁에는 그런 어른들이 늘 존재했던 것 같다. 가만히 있어도 강렬한 아우라를 내뿜는 사람들. 그러나 잔잔한 강물처럼 고요한 그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우아함’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내 자신도 모호했지만, 어린 눈과 마음엔 동경심이 가득 차올랐다.
우리는 언제 '우아하다'는 말을 쓸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것을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고 정의한다. 영어로는 Elegance라고 하며, 점잖고 단정한 말 또는 몸가짐이라 말한다. 디지털한자사전에서는 아름다운 품위와 아취 라고도 표현한다. 주로 이런 분위기의 사람을 묘사할 때 터지는 감탄일까. 세계 패션 시장을 장악하는 소위 명품 회사들도 언제나 ‘우아함’을 최고의 가치로 브랜딩한다. 이런 의미들을 조합해서 우아한 사람을 한번 상상해본다. 과한 장식 없이 클래식한 의상도 세련되게 소화하는 실루엣이 떠오른다. 거기에다 자신만의 속도가 있는 듯 차분한 언행과 품격 있는 태도까지 겸비한다면 뭔가 그럴듯하다. 아, 우아함의 대명사로 불리던 오드리 헵번도 생각난다.
한때는 ‘우아하다’는 말이, 외적으로 고상한 아름다움을 지닌 사람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마치 근거리에서 반짝반짝 빛나면서도 곁을 쉽게 내어주지 않을 것처럼 도도하고, 손에 잡힐 듯 말 듯 승부욕을 자극하는 마성의 단어였다. 또한 이것은 누군가 스스로 '나는 참 우아한 사람이에요.'라고 말하기에도 불완전해 보였다. 결국 타인에 의해 '저 사람은 참 우아하네요.'라고 승인받으면, 그때 아주 잠시 머무르다 떠나버릴 것 같은 말이었다. 그야말로 아주 감질나는 단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우아함을 탐구하는 여정은 쉽사리 끝나지 않았다.
거기에 마치 나의 해방이라도 있는 것처럼, 시절마다 예술에, 혹은 학문의 길에 몰입하며 이상적인 우아함을 찾아 헤맸다. 사실 마음은 빈 깡통처럼 공허하여 견딜 수 없던 날들이었다. 텅 빈 내면을 마주할 때마다 당혹스럽고 민망했다. 뭐라도 채워서 그럴듯한 인생이 되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기대고 있던 세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크래커처럼 바사삭 부서져 버렸다. 탐험가의 마음은 길을 잃고 정처 없이 헤매기 시작했다.
한편 철저한 무신론자였던 나는 그 방황의 막다른 길 끝에서 결국 인생의 창조주를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 스스로를 크리스천이라 고백하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어졌다. 이제 더 이상 내 앞에 주어진 생에서 헤매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앞으로도 지속 가능한 해갈을 느꼈던 날이었다. 아무튼 그 이후로 가치관은 물론 진정한 우아함을 탐구하던 내 시선에도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그때부터는 우아함이라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공통으로 깃들어 있는 인격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서 반짝이는 타인의 우아한 순간들은 이제 현실적으로 실감 나는 것들이었다. 서두에서 말한 사전적 의미의 우아함이 무색해지는, 내면이 성숙한 아름다움이라고 해야 할까.
이를테면 이들은 언어와 삶의 태도가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다정하다. 자신의 자리를 성실하고 묵묵하게 지키는 사람들 이기도 하다. 또한 자신만큼 타인을 소중히 여기고 환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맹렬한 자본주의사회에서도, 미련하게 옆 사람 먼저 생각하다가 결국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러다 곤란한 상황을 만나더라도 위트 한마디로 웃어넘기며 감사를 찾는다. 이들이 사는 풍경에는, 마음으로 무릎 꿇고서 진실하게 용서를 비는 숫기 없는 자의 사과와, 뒤끝 없는 용서로 안아주며 다독이던 품이 있다. 어린 청년에게서 불일 듯 일어나는 혈기를 잠재우던 노인의 미련한 기다림이 있으며, 미운 사람에게도 반드시 예쁜 구석이 있음을 믿어주는 신뢰가 있다. 이 외에도 내면에 충분한 사랑을 머금고 있는 이들에게는 견고한 안정감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자신의 탁월함을 알면서도 적절히 경계하며 겸손을 지키는 신중함과, 신념대로 살고자 하는 투지가 있다. 나는 그들의 삶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하수인 나는 우아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지만, 그들은 이미 삶으로 말한다. 다정한 환대에 위트 한 스푼을 살짝 얹어서. 그들은 공통적으로 우아한 사람들이다.
언젠가 들른 박물관에서 백자달항아리를 만났을 때였다. 그것의 고유한 빛깔과 부드러운 곡선이 만든 우아한 자태에 넋을 잃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조선의 백자를 빚었던 이의 마음이 달처럼 두둥실 떠올랐다. 그는 이렇게 넉넉하고 따스한 사람을 갈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도 그것과 꼭 닮은 사람을 그리워했다. 세 남매의 엄마로 살아오면서, 가장 부러워하게 된 이상형. 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나는 절망과 환희를 동시에 맛보았다.
아이 셋을 데리고 걸어가는 육아의 초행길에서 나는 자주 방향감각을 잃고 헤맸다. 낯선 길을 바짝 긴장하면서 걸으니 금세 진이 빠졌다. 서툰 엄마는 자주 조급해지고 예민해졌다. 뭔가 뒤처지는 느낌에, 아이들의 걸음을 재촉하면서 닦달하고 훈계하느라 마음이 너무 바빴다.
그러나 아이들은 엄마의 염려 따위에 지지 않는다. 자신들이 소화할 수 있는 만큼 천천히 걸으며 내 뒤통수에 대고 ‘엄마~왜 그렇게 빨리 가요? 우리랑 같이 가요!’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깔깔대며 웃는다(아, 비웃는 것일 수도 있다). 애초부터 내가 사는 세상에 길들여질 존재가 아닌 듯했다. 시간 개념 자체가 다르다. 길을 가면서도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사소한 모든 것에게 일일이 인사를 돌렸다. 길가의 이름 모를 생명체들에게 반갑다고 말을 건네고, 통성명을 하고, 긴 대화를 나눈다. 엄마는 빨리 가고 싶어서 환장하지만, 그러면 며칠을 두고 섭섭해한다. 그들 앞에서는 지금 뭐가 더 중요한지 대소사를 따지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다. 아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모험이니까. 도대체 이게 그렇게 웃길 일인가? 하는 일에 뒤로 자빠질 만큼 많이 웃고, 이게 그렇게 울 일인가! 하는 일에는 사력을 다해서 울어댄다. 한 놈, 한 놈, 또 한 놈 응대하면서 뒤치다꺼리하는 동안 하루가 저물어간다. 낮 동안 온몸을 불사른 그들은 밤새 깊은 단잠에 빠진다.
세 남매와 함께 헤매는 길 위에서, 밥을 짓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의 응가를 닦아주고, 씻기고. 잠자리에서 동화책을 읽으며 우스운 이야기에 박장대소하고, 슬픈 이야기에는 함께 눈물을 질질 짰다. 나도 같이 밥을 먹고, 응가를 싸고, 개운하게 씻고, 아이들을 껴안고 만족스럽게 잠이 들었다. 그렇게 십 년 동안 가장 사소하고 중요한 시간을 보냈다. 매일 하지 않으면 티가 나고, 매일 하면 이상하게 티가 안 나는 그런 일들을 배워오면서.
때로는 괴팍하고 때로는 찌질한 인간인 나에게, 아이들은 자기 몫으로 타고난 우아함을 한 숟갈씩 떠서 먹여주었다. 엄마의 부끄러움에도 개의치 않고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준 아이들 덕분에, 일상을 살아가며 시선에 담아둔 우아함을 글로 적어 내려갈 수 있었다. 공통적으로 우아한 사람들은, 가장 가까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목소리와 삶의 태도를 지녔다. 그들은 가장 사소하고 시시한 부분들에서 피어오르는 존엄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서로를 살려 주는 방편이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가장 좋은 편을 택하고 나누는 사람들이다.
'우아하다'는 말은 세월이 갈수록 품이 넓고, 더 우아해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확장되는 세계에서 우아함을 만나고 싶다. 그 때마다 나의 경계가 또 한 번 허물어지길 바란다. 글을 읽어가다 보면, 당신의 일상에도 이미 깃들어있는 우아함을 보물찾기 하듯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모두 누릴 수 있는 말, 기꺼이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말.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우아한 타인이다.